차 문을 잠그고도

사마천의 사기, 「회음후열전」중에서

by뭉클
信釣於城下,諸母漂,有一母見信飢,飯信,竟漂數十日.
- 『사기』 「회음후열전」 중에



K 교감은 속내를 쉽게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다.

일에는 분명한 기준이 있고 판단은 신중하며, 감정에 휩쓸리는 법이 없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도 어른다운 절제가 배어 있다.

그런 그녀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무렵, K 교감은 첫째를 친정 부모님께 맡기고 한 시간 가까이 떨어진 학교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친정 동네에서 같은 학교 여교사를 우연히 만났다. 평소 교류가 없던 동료였으나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건네다가 그 교사가 같은 동네에 살며 매일 버스로 출퇴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K 교감은 선뜻 카풀을 제안했다.

같은 방향이니 함께 다니면 되겠다 싶었고, 먼 길을 버스로 오가는 일이 마음에 걸리기도 해서였단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동료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출퇴근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동료의 행동은 예상과 달랐다.

언제나 상사처럼 뒷좌석에 앉았고, 출퇴근길 내내 대화는 없었다.

목적지 근처에 이르면 차가 멈추기도 전에 예고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내리는 바람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무렵 다른 동료들에게서 그 교사의 평판을 듣게 되었다.

학교 안팎에서 행동이 남다르기로 알려진 사람이었고,

학생 지도에서도, 동료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었다.

지인들은 당장 카풀을 그만두라 하였고,

일껏 도움 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란 말까지 들었다.

그래도 K 교감은 카풀을 그만두지 않았다.

임신한 몸으로 매일 운전하며, 출산휴가에 들어가는 날까지 말없이 그 동료를 태우고 다녔다.

대신 문제스러웠던 행동에 대해서는 어린아이를 태운 것처럼 차 문을 잠근 채 운전했다.

그게 다였다고 한다.

마지막 날 동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차에 기름을 넣어주었다.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기』 「회음후열전」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信釣於城下,諸母漂,有一母見信飢,飯信,竟漂數十日."

한신이 성 아래에서 낚시하고 있을 때,

물가에서 빨래하던 여인 가운데 한 사람이 자주 굶주리고 있는 그를 보고 밥을 챙겨주었다.

그 일은 수십 일 동안 이어졌다.

이른바 표모반신(漂母飯信)의 고사다.

당시 한신은 변변한 생업도 없이 가난했다.

사람들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고,

빨래하던 여인 역시 그가 훗날 한나라 건국의 일등공신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훗날 반드시 보답하겠다는 한신에게 여인은 오히려 화를 냈다.

"내가 그대를 딱하게 여겨 밥을 준 것이지, 어찌 보답을 바라겠는가?"

표모는 그가 어떤 인물이 될지, 자신에게 무엇을 돌려줄 수 있을지 따지지 않았다.

눈앞의 굶주린 사람을 보았을 뿐이다.


훗날 한신은 천금으로 그 은혜를 갚았다.

K 교감이 돌려받은 것은 기름 한 번이었다.

그러나 표모나 k교감 두 사람 모두 보답의 크기를 헤아리고 건넨 호의는 아니었다.

우리의 호의에는 대개 보이지 않는 셈법이 숨어 있다.

관계를 유지하려는 마음,

언젠가 돌아올 보답에 대한 기대,

적어도 고마움쯤은 알아주리라는 믿음 같은 것들.

누군가를 도울 때조차 그 사람이 도움받을 만한 사람인지 먼저 가늠하곤 한다.

그러나 K 교감은 동료의 사정을 알고 난 뒤에도 처음 내민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참고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배려한다는 이유로 위험까지 감수하거나,

어렵고 불편한 이유로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그녀는 어느 쪽도 택하지 않았다.

위험한 행동에는 차 문을 잠가 대처하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그녀가 앉을 뒷좌석은 비워두었다.

성숙한 다정함이란 무조건 이해하고 감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계를 지키면서도 타인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K 교감은 지금도 그 일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을 태워주었고, 조금 불편한 일이 있었지만 출산휴가에 들어갈 때까지 함께 다녔을 뿐이다.

그녀에게는 그 정도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차 문은 잠갔지만, 사람을 향한 마음까지 닫지는 않았던 사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며 배워야 할 다정함은 그런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