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그린 그림’으로 유명한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1938~2026)의 회고전이 세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가 지난 4월 말 별세하면서 이번 전시가 회고전이 되었는데, 작가의 60여 년에 걸친 작업을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다.
전시명 : 게오르그 바젤리츠
전시 기간 : 2026.08.13. ~ 12.27.
전시 장소 : 세화미술관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압도되는 면이 있는 거장의 작품들이었는데, 오늘은 5가지 키워드를 통해 바젤리츠의 작품에 좀더 다가가 보려 한다. 5가지 키워드는 신표현주의, 반영웅, 거꾸로 그린 그림, 목조각, 리믹스이다.
바젤리츠는 독일 작센 지방의 도이치바젤리츠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한스게오르크 케른(Hans-Georg Kern)으로, 1961년 고향의 이름을 따서 ‘바젤리츠’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치 집권기에 태어나 어린 시절 전쟁을 겪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동독이 된 지역에서 성장했다. 그가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한 시대에는 전쟁의 폐허뿐 아니라, 독일의 분단과 서로 다른 이념이 일상의 조건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바젤리츠는 동베를린에서 미술을 공부했지만, 1957년 ‘슬롯정치적 미성숙’을 이유로 학교에서 제적되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제적 이유이긴 하다. 바젤리츠는 이후 서베를린으로 옮겨 공부를 이어갔다. 동독에서도 슬롯주의 리얼리즘을 따르지 않았던 그는 서구의 추상미술 역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미 성취된 양식을 뒤따르기보다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그릴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고 전해진다.
이 지점에서 먼저 ‘표현주의’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초 독일의 ‘다리파’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 표현주의는 눈앞의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 강렬한 색채와 왜곡된 형태를 통해 감정과 긴장을 드러냈다. 바젤리츠의 거친 인체와 강한 색채 역시 이러한 전통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 잠깐! 다리파(Die Brücke)란?
20세기 초 독일에서 결성된 대표적인 표현주의 미술 단체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혁명적인 정신과 회화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자 한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다. 빠른 붓질, 강렬하고 선명한 원색, 단순화된 형태를 사용했고, 인간의 불안, 공포, 소외감, 원시적인 열정을 날것의 형태로 형상화했다.
그렇다면 ‘신표현주의’는 무엇일까? 이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걸쳐 국제적으로 주목받은 회화의 흐름을 가리킨다.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등이 미술의 중요한 방향으로 자리한 상황에서, 인물과 이야기, 신화와 기억을 강렬한 회화적 표현으로 다루는 작업들이 다시 부상한 것이다. 독일 표현주의를 비롯한 과거의 미술을 참조했지만, 이전 양식을 그대로 복원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시대의 이미지와 개인적·역사적 경험을 새롭게 결합했다. 이런 맥락에서 바젤리츠는 신표현주의를 설명할 때 중요하게 거론된다.
다만 바젤리츠가 신표현주의의 유행과 함께 작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이미 1960년대부터 이러한 작품 경향을 보여주었기 때문인데, 따라서 그를 이해할 때는 ‘1980년대 신표현주의 화가’라는 설명에 앞서, 그보다 이른 시기부터 형상회화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이후의 회화에 영향을 미친 작가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바젤리츠 자신 또한 이러한 분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신표현주의 화가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 예술가를 특정 유파에 넣는 일이 예술가의 작업을 고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표현주의든 추상표현주의든 이미 존재하는 방향을 그대로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을 단순히 격렬한 감정의 표출로만 읽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친 붓질과 왜곡된 형상은 감정을 전달하면서도, 동시에 기존의 그림과 다른 그림을 만들기 위한 의식적인 선택이었다. 그렇기에 이 첫 번째 키워드는 미술사적 흐름으로 참고하되, 바젤리츠 스스로는 받아들이지 않은 분류라고 이해할 수 있다.
바젤리츠의 초기 작품세계를 이해할 때 중요한 또 다른 작업은 1965~1966년에 제작한 〈영웅들(Helden)〉 연작이다. 〈새로운 유형들(Neue Typen)〉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이 시리즈는 인간의 형상을 화면 중심에 크게 배치한다.
그런데 ‘영웅’이라는 제목과 실제 인물의 모습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인물들은 찢어진 옷을 입고 상처를 드러내며, 불안정한 자세로 서 있다. 화면을 압도하는 커다란 몸을 가졌지만, 그 크기가 곧 힘이나 자신감을 뜻하지는 않는 것이다.
바젤리츠는 1965년 피렌체에 체류하면서 16세기 매너리즘 판화에 관심을 가졌다. 매너리즘 판화는 르네상스의 완벽한 비례나 균형을 거부하고,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진 인체 비례나 극단적으로 뒤틀린 포즈를 정밀한 선으로 표현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는 과거의 미술에서 발견한 비례와 형태를 참조하면서, 당대의 인간을 표현할 새로운 회화 언어를 찾은 것이다.
‘반영웅’이라는 관점은 이 연작이 제작된 시기의 전후 독일 상황과도 연결된다. 나치 군인들은 공동체가 따라야 할 인간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처 입고 자신의 위치를 되묻는 영웅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반영웅’은 여기서 영웅과 대립하는 악인을 뜻하기보다, 기존의 영웅적 이상과 어긋나는 인간상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다.
〈영웅들〉 시리즈의 중요한 특징은 인물의 강렬한 존재감과 취약함이 동시에 드러난다는 점이다. 바젤리츠는 인간을 화면의 중심에 세우면서도, 그 인간을 완전하고 이상적인 존재로 제시하지 않았다. 영웅적인 크기와 자세를 빌리되 그 안에 불안정함과 실패의 흔적을 남긴 것이다. 이후 그는 1966년부터 인체를 가로로 나누고 재배치하는 ‘파편화 회화’를 전개했고, 1969년에는 형상을 거꾸로 그리기 시작했다. 무엇을 인간의 모습으로 제시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점차 그 형상을 어떻게 구성하고 보여줄 것인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바젤리츠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바로 이 ‘거꾸로 그린 그림’이다. 세화미술관 전시장에선 두 번째 섹션부터 본격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처음에는 강렬한 이미지라고만 생각했는데, 계속 보다보면 그림을 바로 돌려놓고 싶다는 충동도 느껴진다. 바로 놓고 보면 인물의 표정이나 자세를 더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젤리츠가 바꾸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처럼 그림 속 대상을 알아보고 그 의미를 읽어내는 익숙한 방식이었다. 그는 1969년부터 모티프의 위아래를 뒤집어 그리는 ‘전도’를 통해, 무엇을 그렸는가에 집중하던 시선을 그림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로 옮기고자 했다.
이러한 전환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앞서 두 번째 키워드에서 살펴본 〈영웅들〉 이후, 바젤리츠는 인물과 풍경을 여러 구획으로 나누고 어긋나게 배치하는 ‘골절 그림(Frakturbilder)’을 제작했다. 실제 캔버스를 잘라 붙였다는 뜻이 아니라, 화면 속 형상의 연결을 끊어놓았다는 의미다. 인물의 몸이 수평의 띠를 따라 분절되거나 옆으로 기울어지면서, 그림을 하나의 자연스러운 장면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형상을 없애지는 않으면서도 그것을 온전하게 읽는 일을 방해하는 이러한 실험은, 모티프 전체를 거꾸로 그리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그 전환점에 놓인 작품이 〈거꾸로 된 숲〉이다. 바젤리츠는 19세기 독일 화가 페르디난트 폰 라이스키의 〈베름스도르프 숲〉(1859년경)을 바탕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학창 시절 학교에 걸린 복제화로도 접했던 익숙한 풍경이, 그의 화면에서는 위아래가 뒤집힌 채 나타난 것이다. 새로운 회화의 출발점이 전혀 낯선 소재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그림이었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새로운 것을 그리는 대신, 익숙한 것을 그리는 방식을 바꾸면서 자신의 길을 찾았던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완성된 그림을 전시장에 거꾸로 걸어놓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꾸로’의 방식은 그림을 제작하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같은 해 제작한 〈50년대 초상–M. W.〉의 경우, 바젤리츠는 갤러리스트 미하엘 베르너의 사진을 처음부터 거꾸로 놓고 그렸다. 뒤집힌 이미지 속 색과 형태의 관계를 따라 화면을 구성한 것이다. 관객에게 낯선 그림을 보여주는 동시에, 작가 자신에게 익숙한 재현 방식에서도 거리를 두는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그림을 거꾸로 그렸을 때 무엇이 달라질까? 보통 초상화를 보면 우리는 누구를 그렸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본다. 얼굴을 이루는 물감과 붓질은 그 사람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뒤로 물러나기 쉽다. 그러나 얼굴이 거꾸로 놓이면 이러한 읽기가 잠시 주춤한다. 눈과 코를 알아보면서도, 그것을 이루는 선의 방향과 색의 대비를 함께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바젤리츠의 전도는 대상을 알아보는 시선을 완전히 차단하기보다, 그 시선이 그림의 표면에도 머물도록 만드는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거꾸로 그린 그림’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방향이 특이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화면을 형상과 물감 사이에서 거듭 바라보게 한다는 데 있다.
바젤리츠의 실험은 캔버스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1979년부터 조각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1980년 베니스 비엔날레 서독관에서 첫 조각인 〈조각을 위한 모델〉(1979–1980)을 선보였다. 거칠게 깎은 나무에 채색한 이 작품은 이후 그의 조각을 특징짓는 제작 방식을 보여준다. 회화에서 인체의 형상을 분절하고 뒤집었던 작가는, 이제 나무를 직접 깎아내며 인물을 만드는 문제에 접근한 것이다.
그는 도끼와 전기톱 등을 사용해 나무에서 인물의 형태를 끌어냈다.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기보다 도구가 지나간 자국과 갈라진 틈, 나무의 옹이를 남겨두었다. 이는 단순히 투박한 분위기를 내기 위한 선택만은 아니었다. 바젤리츠는 톱질을 드로잉에 견주며, 목조각을 통해 능숙한 솜씨나 예술적 우아함에서 벗어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완성된 인체뿐 아니라, 그것을 깎아낸 행위까지 작품에서 드러나도록 한 셈이다.
이러한 조각에는 미술사적 참조도 담겨 있다. 바젤리츠는 아프리카 조각을 수집했으며, 그의 목조각은 독일의 오랜 목각 전통과 이를 새롭게 탐구했던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같은 표현주의 작가들의 작업과도 연결된다. 따라서 거친 형태를 단순히 즉흥적인 감정 표현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서로 다른 조각 전통을 참조하면서, 정교한 비례와 매끈한 마감이 아니어도 인체가 강한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지를 탐구한 작업으로 읽을 수 있다.
개인과 집단의 기억 역시 조각 안으로 들어왔다. 1989년 시작한 〈드레스덴의 여성들〉은 1945년 드레스덴의 파괴와 전쟁의 기억을 환기하는 커다란 두상 연작이다. 깊게 패인 표면과 강렬한 색채는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그 형상이 주는 인상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바젤리츠에게 조각은 회화와 동떨어진 작업이 아니라, 인물과 역사를 다루던 자신의 질문을 다른 재료와 공간 속에서 이어가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세화미술관 전시에서도 곳곳에서 그의 목조각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건물 입구에 커다란 목조각이 놓여있으니 놓치지 말고 감상해보시길 권한다.
바젤리츠는 자신의 대표적인 표현 방식을 확립한 뒤에도, 이미 완성한 작품을 다시 작업의 대상으로 삼았다. 2005년 시작한 〈리믹스〉 연작이 그 예다. 리믹스는 음악에서 익숙한 곡을 새롭게 편집하는 방식을 뜻한다. 작가는 젊은 문화에서 나온 ‘리믹스’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과거 작품에 등장했던 인물과 구도를 다른 색채와 붓질로 다시 그리며 ‘리믹스’라는 제목을 붙였다.
바젤리츠는 자신의 대표적인 초기 작업을 가져오면서, 그 안의 인물과 반복적으로 사용했던 모티프를 새로운 화면으로 옮겼다. 그러나 원작을 똑같이 복제하거나 당시의 화풍을 복원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수십 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이미지를 다시 다루는 것이 중요했다. 이미 그려본 대상이었기에,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릴 여지도 생겼던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색채와 붓질이다. 1960년대 〈영웅들〉에서 두터운 몸과 흙빛 색조로 나타났던 인물들은 리믹스에서 밝고 투명한 색채, 빠르고 유연한 선으로 다시 등장한다. 흰 캔버스가 드러나는 부분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묵직하게 화면을 차지하던 형상은 한층 가볍고 유동적인 모습이 된다. 같은 인물이나 구도를 가져왔는데도 그림이 주는 인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 차이를 살펴보면, 회화에서 중요한 것이 소재만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화면이 밝아진 만큼 과거의 무게까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리믹스에는 여전히 독일의 역사와 작가 자신의 기억이 남아 있다. 다만 그 기억을 그리는 사람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겠다. 젊은 시절의 바젤리츠가 그렸던 인물을 노년의 바젤리츠가 다시 마주하는 것이다. 나는 이 연작을 과거의 성과를 재확인하는 작업보다는, 한때 자신에게 절실했던 이미지를 시간이 흐른 뒤 어떻게 다시 그릴 수 있는지 묻는 작업으로 읽고 싶다. 익숙한 형상 안에서 달라진 것은 붓질뿐 아니라,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는 거리이기도 할 것이다.
현재 세화미술관 회고전에서도 리믹스 연작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다. 전시에서는 초기 작업과 리믹스 사이에서 인체의 윤곽이나 색채, 화면을 채우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면 좋겠다. 바젤리츠를 ‘거꾸로 그리는 화가’로만 기억했다면, 같은 모티프를 두고도 이처럼 다른 그림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올 수 있다. 한 가지 방법을 발견한 작가가 그 방법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그림까지 다시 검토했다는 점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현재 바젤리츠 전시는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손끝에서(Per Mano)》(2026.09.01. ~ 11.14.)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곳 갤러리에서는 생애 후반 인간의 유한함을 탐구한 작업을 만나볼 수 있다. 한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이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동시에 열린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깊다는 생각이 든다.
와이아트에서는 여러 전시를 추천하고 있지만,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전시는 한 번쯤 감상해보길 권한다. 나는 사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작품이 주는 강렬한 인상에 놀랐다. 5가지 키워드로 감상 포인트를 짚긴 했지만, 실제 작품을 마주하는 경험은 설명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 같다.
물론 바젤리츠를 이야기하면서 논란을 빼놓을 수는 없다. 특히 2013년 여성 예술가의 역량을 폄하한 발언은 비판을 받았다. 작품의 성취가 그러한 발언을 정당화하지는 않지만, 그에 대한 비판과 작품 앞에서 느끼는 감탄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는 것이 그 사람의 모든 생각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 그의 발언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림 앞에서 느꼈던 놀라움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명성이나 논란만으로 판단을 끝내기보다, 작품을 직접 보고 무엇에 끌렸으며 어떤 부분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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