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조트 끝자락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2층짜리 리셉션 빌딩.
사방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불타오르는 에메랄드 풀장의 지옥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으로,
윤서와 타리크는 간신히 몸을 숨겼다.
문을 걸어 잠그자 유리창을 피로 물들이며 감염자들이 쾅쾅거렸지만, 다행히 두꺼운 강화유리는 쉽게 깨지지 않았다.
"하아, 하아······ 타리크.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나가는 길은 다 막혔어요."
윤서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묻자, 타리크는 리셉션 데스크 안쪽의 벽면을 더듬었다.
"이 리셉션 빌딩은 일반 투숙객들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VIP들이 은밀하게 '특별 프로그램' 안내를 받던 곳이죠. 분명 지하와 연결되는 통로가 있을 겁니다."
타리크가 벽면에 걸린 대형 르몽산의 풍경화 액자를 거칠게 떼어내자, 그 뒤로 정밀한 디지털 도어록이 나타났다. 타리크는 품에서 리조트 마스터키와 함께 실종된 가이드들이 사용하던 관리자 보안 카드를 꺼내 리더기에 댔다.
‘아니 이 사람 뭐지? 마스터 키와 관리자 보안카드는 또 어떻게 갖고 있는 거야?’
치익-
무거운 기계음과 함께 데스크 뒤편의 대리석 바닥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아래로 향하는 차가운 스테인리스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리조트 안내 지도 그 어디에도 표기되지 않은, 철저히 은폐된 지하 구역이었다.
두 사람은 프레온 가스 냄새와 냉기가 흐르는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 끝에 마주한 거대한 방화문 위에는 불길하게 점멸하는 LED 문자가 박혀 있었다.
[W.E.L.: Wellness Enhancement Lab]
실험실 내부는 지상의 화려한 파스텔톤 낙원과 완벽하게 대비되는, 기괴하고도 삭막한 회색 빛 공간이었다.
최첨단 의료 장비들과 수많은 약품 병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메인 홀의 한 테이블 위. 윤서의 눈에 익숙한 물건 하나가 들어왔다.
"이건······ 민호 씨 카메라예요!"
윤서는 떨리는 손으로 남편의 캐논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다행히 전원은 켜졌고, 렌즈 주변에 핏자국이 묻은 메모리카드 안에는 민호가 실종되기 직전 촬영한 마지막 영상 파일이 남아 있었다.
녹화 버튼을 누르자, 거칠게 흔들리는 화면과 함께 민호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건 단순한 리조트가 아니야. 직원들이, 손님들이······ 전부 실험체야."
화면이 전환되며 실험실 유리창 너머의 광경이 비쳤다. 그곳은 인간의 존엄성이 완벽히 말살된 사육장이었다.
‘행복을 극대화한다’는 명목 아래, 수십 명의 사람들이 수술대에 결박되어 있었다.
의사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그들의 두개골에 직접 관을 꽂고 정체 모를 초록색 약물을 주입하고 있었다.
약물이 주입되는 순간, 실험체들의 눈동자가 뒤집히며 온몸의 관절이 꺾였다.
기괴한 것은 그들의 입가였다. 살이 찢어지고 피가 솟구치는 고통 속에서도, 그들은 눈물이 범벅된 채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카메라가 실험실 중앙의 대형 모니터를 클로즈업했다. 그 위로 차갑게 점멸하는 문장 하나.
[행복은 통제될 수 있다. Happiness can be engineered.]
영상이 툭 끊어지자, 윤서는 입을 틀어막은 채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지상에서 보았던 투숙객들의 그 기이할 정도로 밝은 미소와 몽롱한 눈빛은, 모두 이 지하에서 설계된 ‘조작된 행복’의 결과물이었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짓이죠?"
윤서가 경악하며 테이블 위의 연구 로그 파일들을 미친 듯이 뒤적였다.
타리크 역시 곁에서 모니터의 데이터를 분석하며 이 끔찍한 실험의 전말을 밝혀내기 시작했다.
이곳〈파라다이스 웰니스 리조트>는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글로벌 거대 제약 세력의 자본으로 세워진 ‘행복 호르몬 거대 인체 실험장’이었다.
그들은 인류의 슬픔과 고통을 영구적으로 제거하는 '완벽한 행복 약물'을 개발한다는 명분으로
투숙객들에게 웰컴 드링크와 와인을 통해 서서히 약물을 투여해 왔던 것. 하지만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다. 약물이 뇌의 전두엽을 파괴하면서,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과 엔도르핀을 한계치까지 폭발시킨 것이다.
그 결과 실험체들은 이성을 잃고 극도로 폭력적인 향락과 쾌락만을 쫓는 '폭력적 쾌락 좀비'로 변해버렸다.
지상에서 사람들을 물어뜯던 감염자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뇌 속에서 최고의 쾌락을 느끼며 날뛰는 괴물들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지옥을 설계하고 집행한 주체가 있어요."
타리크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화면에는 연구소의 최고 바카라임자와 리조트 총지배인의 사진이 나란히 떠 있었다.
이 실험의 총괄 주체는 베일에 싸인 글로벌 의료 재단이었고, 지상의 총지배인 마르셀은 단순한 호텔리어가 아니었다.
그는 재단의 핵심 간부이자, 이 잔혹한 프로젝트의 실무 바카라임자였다.
완벽한 매너와 부드러운 미소로 손님들을 안심시켜 매년 수천 명의 신선한 '실험체'를 지하로 공급하는 사냥꾼. 그것이 마르셀의 진짜 정체였다. 남편 민호 역시 마르셀의 정체와 지하의 실체를 촬영하다가 붙잡힌 것이 분명했다.
"마르셀······ 그 악마 같은 인간이 내 남편을······."
윤서가 분노로 온몸을 떨며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바로 그 순간, 실험실 깊은 곳, 철저히 격리된 최심부 격리실의 두꺼운 철문 너머에서 무언가 거칠게 문을 긁는 소리와 함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의 것이 아닌 듯 거칠면서도, 어딘가 슬프도록 익숙한 음성이 윤서의 귓가를 때렸다.
윤서의 시선이 천천히 지하 최심부의 굳게 닫힌 문으로 향했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음습하기 시작했다.
'설마... 아닐 거야... 설마 아닐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