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막:낙원의 균열과 핏빛 에메랄드


1. 은밀한 회동


낯선 천장 아래서 맞이한 모리셔스의 둘째 날 아침.

윤서는 베개 밑에서 발견한 타리크의 거친 필체가 담긴 쪽지를 꽉 쥐었다.


‘리조트 안은 위험합니다. 눈이 너무 많아요. 내일 아침 시내 시계탑 앞으로 오십시오.

절대 총지배인의 눈에 띄지 않게 제가 보낸 택시를 타고 조용히 오세요.’


프런트 직원의 그 기괴한 미소가 떠올라 리조트식 조식은

입에도 대지 않은 채 서둘러 약속시간에 도착한 택시에 몸을 실었다.

포트루이스 시내의 낡은 시계탑 앞, 화려한 리조트와 달리 한적하고

조금은 삭막한 시내 한구석에서 타리크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낯선 사람이라 걱정이 됐지만 남편의 행방을 먼저 얘기해 준 사람이었기에 침착하게 다가갔다.


"타리크 씨인가요? 제 남편의 가이드셨다고요?"


"네. 저는 민호 씨의 가이드였습니다. 먼저 민호 씨의 일은······ 정말 유감입니다."


타리크가 주변을 극도로 경계하며 낮게 읊조렸다. 이제야 그의 얼굴이 순박해 보임을 느꼈지만

깊은 그늘이 져 있었다.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게 무슨 소리죠? 타리크, 내 남편이 어떻게 됐는지 아는 게 있나요?"


"그분은 단순한 실종이 아닙니다. 리조트의 '금기'를 건드렸어요.

그곳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휴양지가 아닙니다.

무언가 거대한 비밀을 숨기기 위해 매일 밤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민호 씨는 그걸 카메라에 담으려다······ 사라진 겁니다."


타리크의 눈빛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윤서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이내 눈빛을 단단히 굳혔다.


"저 혼자서는 그 벽을 깰 수 없어요. 타리크, 제발 도와주세요. 남편을 찾아야 해요."


윤서의 절박한 간청에 타리크는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조트 내부 사정은 제가 잘 압니다. 함께 들어가죠. 대신,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그곳은······ 이미 인간의 상식이 통하는 곳이 아니니까요."


"오늘은 리조트로 돌아가신 후 아무도 접촉하지 마시고 객실로 들어가세요.

제가 내일 객실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낙원의 껍질을 벗겨내기 위한 위험한 동행을 함께 하기로 했다.


2. 일상의 이상 신호


하지만 균열은 윤서가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리조트 내부에서부터 기괴하게 갑자기 터지기 시작했다.

그날 새벽,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객실 복도로 나온 윤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가던 자율주행 청소 로봇의 카트.

그 위에는 정체 모를 검붉은 피로 흥건하게 젖은 시트들이 무더기로 실려 있었다.


"어머, 고객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정적을 깨고 나타난 리조트 매니저가 앞을 막아섰다.

그의 얼굴엔 여전히 자를 댄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저 시트의 피는 뭐죠?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윤서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매니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부드럽게 웃었다.


"아, 이것 말씀이십니까? 어제 최고급 파라다이스 와인을 쏟은 방이 있어서요.

그저 '와인 얼룩'일뿐입니다, 고객님.

방역과 청소는 저희 리조트의 자랑이니 안심하시고 들어가 쉬십시오."


눈은 전혀 웃지 않는 그 기만적인 미소. 윤서는 소름이 돋는 팔을 감싸며

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상 신호는 아침 식당에서도 이어졌다.

뷔페 테이블에 신선한 식자재를 나르는 젊은 직원의 걷어붙인 소매 사이로

끔찍한 피멍과 무언가에 격렬하게 뜯긴 듯한 상처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직원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기계적으로 미소를 지으며 음식을 가득 채워 넣고 있었다.

그때, 옆 테이블에서 샴페인 잔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며 날카로운 파편이 튀었다.

백인 외국인 투숙객이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여기 사람들, 다 약 먹고 있는 거라고!

저 미소들이 진짜 같아?! 다 조작된 거야!"


그가 광기 어린 비명을 지르자마자, 구석에 대기하고 있던 건장한 보안요원 대여섯 명이 달려들어

그의 사지를 붙잡았다. 사람들은 그 끔찍한 소동을 보고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마치 감정이 거세된 인형처럼 서로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식사를 계속 이어갈 뿐이었다.

윤서는 도저히 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의 기괴스럽고 숨 막히는 광경에

입맛이 싹 달아나 식사를 할 수 없었다.

객실로 돌아가 타리크의 방문을 기다리며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3. 핏빛 에메랄드와 지옥의 서막


그날 오후,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던 리조트 중앙의 ‘에메랄드 풀 파티’에서 마침내 파국이 시작되었다.

쿵쾅거리는 강렬한 EDM 비트가 야외 수영장을 가득 채우고, 사방에서 비눗방울과 화려한 폭죽이 터졌다.

투숙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수영장 위에서 ‘파라다이스 와인’을 들이켰다.

한여름 낮의 열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수영장 한가운데서 춤을 추던 한 남자가 갑자기 뻣뻣하게 굳어지더니 칵테일 잔을 떨어뜨렸다.

그의 입에서 거품과 함께 검붉은 피가 울컥 토해져 나왔다.

주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서기도 전, 뒤집힌 눈을 한 남자가 야수 같은 비명과 함께 곁에 있던

여자의 목덜미를 잔혹하게 물어뜯었다.


"아아악! 사람 살려! 으아악!"


환호성은 단 1초 만에 처절한 비명으로 뒤바뀌었다.

물어뜯긴 여자가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기괴하게 관절을 꺾으며 일어섰고,

또 다른 사람의 얼굴을 향해 돌진했다.

감염은 돔 페리뇽 거품처럼 순식간에 풀사이드 전체로 번져나갔다.


[리조트 곳곳에서 터지는 균열]


DJ 부스의 비극

신나는 하우스 음악을 틀던 풀사이드 DJ 부스 뒤로, 붉은 피를 뒤집어쓴 좀비들이 무더기로 난입한다.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는 경쾌한 EDM 비트 위로 인간들의 찢어지는 비명과 살점이 뜯겨 나가는 끔찍한 파쇄음이 기괴하게 믹싱 된다.

붉은 수영장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려는 사람들과 그들을 물어뜯는 감염자들의 사투로 인해, 에메랄드빛 수영장 물이 서서히, 그리고 아주 진하게 핏빛으로 물들어간다.

카메라는 이 광경을 풀사이드에서부터 시작해 천천히 상공으로 상승(하이앵글)하며 비추고, 리조트 전체가 순식간에 거대한 피바다로 변하는 모습을 조망한다.

지옥의 주방

대피하기 위해 뛰어 들어간 고급 레스토랑의 주방. 그곳 역시 이미 지옥이었다.

하얀 위생모를 쓴 셰프가 완벽한 미소를 지은 채, 살아있는 투숙객을 거대한 나무 도마 위에 올리고 무표정하게 식칼을 내리치고 있다.

그의 조리복은 이미 인간의 장기로 얼룩져 있다.

스파룸의 반전

은은한 아로마 향과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프라이빗 스파룸.

한 여성 투숙객이 편안하게 엎드려 마사지를 받던 중, 마사지사의 손길이 지나치게 거칠어지자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다. 그 순간, 이미 좀비화되어 입가에서 침과 피를 흘리는

마사지사의 얼굴이 그녀의 시야를 가득 채우며 덮쳐온다.

천국이라 믿었던 리조트는 단 몇 분 만에 생지옥으로 변해버렸다.


"비켜! 나오라고!"


늦은 오후, 객실 복도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윤서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 초인종이 연달아 울리며 타리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나오세요. 지금 여기서 대피해야 합니다."


사방에서 튀는 피와 살점을 피해 윤서와 타리크는 아비규환이 된 로비로 나와 바깥으로 필사적으로 달렸다.

뒤에서 쫓아오는 감염자의 거친 숨소리가 목덜미까지 닿은 그 절체절명의 순간,

타리크가 능숙하게 감염자를 제압하고 골프카트를 몰고 후문 쪽에 위치한 르몽산(Le Morne mt)을 배경으로 멋지게 위치한 18홀 골프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골프장 끝에 위치한 2층짜리 관리 사무실에 도착해 문을 잠그고 가쁜 숨을 쉬었다.


"윤서 씨,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상황이 이렇게 급격히 악화될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남편분을 찾을 기회입니다."


윤서는 자신의 손에 피 묻은 파이프가 들려 있음을 뒤늦게 발견하고 땅바닥에 떨어트린다.

머리는 산발에 하늘색 원피스는 핏자국과 흙먼지로 오염되었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불타오르는 리조트를 바라보았다.

남편을 찾기 위한 진짜 사투는 이제부터였다.


'여보 조금만 기다려~그리고 제발 살아있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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