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막: 천국의 문턱

프롤로그: 인도양의 조작된 낙원

인도양의 푸른 수평선 위로 새벽빛이 붉게 번져 나가며

수면을 박차고 떠오르는 태양이 단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을 강렬하게 비추고 있었다.

지상 최후의 낙원이자 세계 최고 권위의 7성급 휴양지

파라다이스 웰니스 리조트(Paradise Wellness Resort)였다.


"웰컴 투 파라다이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완벽하게 대칭을 이룬 직원들이 자로 잰 듯한 각도로 고개를 숙인다.

그들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매끄러웠고,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다.

리조트 도처에는 ‘행복한 천국’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에메랄드빛 배너가 휘날리고,

웰컴 드링크로 제공되는 최고급 샴페인 잔들이 청량한 소리를 내며 부딪힌다.


비현실적일 만큼 눈부신 햇살, 코끝을 스치는 이국적인 꽃향기, 그리고 평화로운 미소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하지만 그 완벽함의 이면에는 어딘가 인위적인 정적이 서려 있었다.

마치 정교하게 짜인 무대 위에서 연출된 연극을 보는 듯한, 기묘하고도 불길한 고요함이랄까.


제1막: 천국의 문턱


1. 기계적인 환대


눈부신 인도양 바다의 일렁임과 하늘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노을.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이국적인 웃음소리와 끊임없이

채워지는 샴페인 잔의 술도 붉게 물들며 일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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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 창문 아래로 포트루이스에 있는 모리셔스의 공항이 보이기 시작했다.

22시간의 긴 비행에 피곤했지만 윤서의 정신만큼은 또렷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남편이 모리셔스로 한 달간의 출장을 떠났고

늘 그랬듯이 통신이 잘 터지지 않는 곳이거나

일이 바빠 자주 연락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그러려니 했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고 정리하는 대로

다시 연락하겠다는 남편의 말에 윤서는 건강하게

일 잘하고 오라고 답변을 하고 잊고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고 열흘이 되는 날

호텔에 연락을 해보니 남편은 객실에 투숙해 있는 건 확인해 줬지만

그 외에는 알 수가 없다는 대답.

결국 윤서는 직접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가보기로 했다.


모리셔스 공항에서 리조트 전용 차량으로 픽업되어 도착한

윤서는 차 문이 열리자마자 숨을 들이켰다.

눈앞에 펼쳐진 리조트의 전경은 그야말로 완벽한 천국 그 자체였다.

하지만 차에서 내려 로비를 걸어 들어가는

그녀의 등 뒤로 원인 모를 오한이 스쳤다.


"안녕하십니까, 윤서 고객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안내를 맡은 리조트 직원이 싱긋 웃었다. 지나치게 밝은 미소였다.

눈 주변의 근육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입꼬리만 정교하게 올라가 있었다.

귀를 타고 흘러드는 웰컴 멘트 역시 친절했지만, 어딘가 감정이 배제된 기계적인 톤이랄까.

단어를 하나하나 인쇄해 내는 인쇄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서는 무거운 마음을 누르며 로비 라운지를 둘러보았다.

그곳에 머무는 투숙객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 ‘기분이 이상할 정도로’ 행복해 보였다.

인공 폭포 아래에서는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웃으며 지치지도 않고 뛰놀고 있고,

야외 수영장의 선베드에 누운 연인들은 몽롱한 눈빛으로

붉은빛이 도는 ‘파라다이스 와인’을 들이켜고 있다.


보통의 휴양지에서 느껴지는 느긋한 휴식과는 결이 다르다.

그들의 웃음과 행복은 지나쳐 보인다는 점?

시선은 그들의 행복한 일상을 스치듯 지나치지 않고, 기괴할 정도로 오랫동안,

아주 천천히 받아 적듯 비추고 있다.

화면에 담긴 완벽함이 길어질수록, 보는 이의 숨통을 조여 오는 불안감은 더욱 짙어진다.


2. 감추어진 흔적


윤서는 가방끈을 꽉 쥐었다.

그녀가 이 머나먼 인도양의 섬까지 홀로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명망 있는 다큐 사진작가이자 그녀의 남편인 민호.

그는 이 리조트의 웰니스 프로그램을 단독 취재하겠다며

모리셔스로 떠난 뒤, 한 달 전 흔적도 없이 실종되었다.

현지 경찰도 적극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윤서가 의지할 것은

남편이 마지막으로 남긴 행적뿐이었다.

데스크로 다가가니 리조트 총지배인인 마르셀이 나와 윤서를 반갑게 맞이한다.


"제 남편인 민호 씨가 한 달 전 여기에 머물렀습니다.

실종되기 직전까지 이 리조트에 체크인했던 기록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 순간, 마르셸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자로 잰 듯한 미소가 다시 입가에 떠올랐다.


"아, 민호 고객님 말씀이시군요. 저희 파라다이스 웰니스 리조트는

투숙객의 완전한 프라이버시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희 리조트의 철학은 '과거의 모든 스트레스와

기억을 잊고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는 것'이지요."


"기록을 보여주는 게 개인정보 보호와 무슨 상관인가요?

사람이 사라졌단 말입니다."


윤서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지만, 직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돌렸다.


"고객님께서도 장거리 비행으로 많이 지치셨을 텐데, 우선 남편 분 객실에 짐을 푸시고

저희 리조트가 자랑하는 스파와 파라다이스 와인을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요?

남편 분에 대한 조사는 저희 보안팀과 현지 경찰이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정중하지만 단 한 걸음도 내주지 않는 완고한 벽.

직원은 윤서가 더 반박할 틈을 주지 않고 교묘하게 시선을 돌리며 룸 키를 건넸다.

질문은 차단되었고, 진실은 미소라는 두꺼운 가면 뒤로 가라앉았다.

뒤를 돌아선 윤서의 귀로 다시 한번 투숙객들의 높은 웃음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이 완벽한 낙원의 문턱에서, 윤서는 자신이 거대한 늪의 입구에 서 있음을 직감했다.

일단 오늘은 객실로 가 남편의 흔적을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윤서는 자신의 짐을 들어준 벨보이를 따라 남편의 객실로 이동했다.

벨보이 역시 지나치게 감정이 응집된 미소가 다소 어색했다.


혹시 뭐라도 알지 않을까 질문하려다 그냥 팁을 주고 혼자 있기로 한다.

암막 커튼을 양쪽으로 펼치니 어느새 인도양의 일몰이 커다란 통창을 붉게 채운다.

남편이 쓰던 노트북은 탁자에 놓여 있고 카메라 장비는 보이지 않는다.

옷장에는 자신이 챙겼던 옷가지들이 가지런히 걸려있었고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한 윤서.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여보'


순간 객실 초인종이 울린다.


"누구세요?"


아무 대답이 없다. 피프홀을 통해 복도를 보니 아무도 없다.

문을 열고 복도 양 옆을 확인해도 인기척이 없다.

다시 문을 닫으려는 순간, 발에 뭔가 걸린다.

뭔가 하고 보니 밀봉된 편지였다.

문을 닫고 탁자 테이블에 앉아 열어보니


'남편 분의 행방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내일 오전 10시에 리조트가 아닌 포트루이스 시내에서 만나 뵙고 싶습니다.

제가 택시를 보내 드릴 테니 로비에 나와 계시면 픽업할 겁니다.

절대 누구에게도 말을 건네지 말고 특히 총지배인이 어디를 가는지 물어보면

바람을 쐬러 나간다고만 하세요.

저는 남편 분의 현지 가이드였던 타리크입니다."


윤서는 내일이면 뭔가 확실하게 남편의 행방에 대해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면서 긴 비행의 여독에 씻지도 못하고 침대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남편은 살아있겠지? 아니 살아있어야 해!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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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객실의 바닥을 청소하는 로봇이 피로 물든 시트를 질질 끌고 이동하고 있고

무표정한 얼굴로 피를 닦고 있는 하우스키퍼가 클로즈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