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3월 26일 목요일

제목: 비온 것

by스카이쌤 SkySSSam

1998년 3월 26일 목요일

날씨 비옴



오늘 학교 마치니 비가 올 준비를 했다 태권도 가다오니 지 갑작기 바 비가왔다 누나는 우산으로 막고 나는 모자로 막았다 나는 오늘 반성할 게 업 없 엇ㅂ다. 나는 오늘 재능국어 다 풀었다 나는 오늘 만화는 코난하고 딩동댕유치원 보고 만들어볼까요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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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삭

오늘 학교를 마치니 비가 올 준비를 했다. 태권도에 갔다 오니 갑자기 비가 왔다. 누나는 우산으로 막고 나는 모자로 막았다. 나는 오늘 반성할 게 없었다. 나는 오늘 재능국어(주: 학습지)를 다 풀었다. 나는 오늘 만화는 코난을 봤고, TV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과 '만들어 볼까요'를 보았다.



일기 한 장에 1998년 초등학교 1학년의 방과 후가 제법 알차게 들어 있다. IMF 사태 한복판인데도 학교-태권도-학습지 루틴은 멀쩡히 돌아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학교가 끝나면 태권도장에 갔다가 집에 돌아와서 학습지를 풀고 TV를 봤다. 만화는 아마 근처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다 보았을 것이다.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없는 세상에서 '딩동댕 유치원'은 몇 안 되는 어린이 프로그램이었다. 당시의 나는 상당한 말썽꾸러기였는데, 일기에 기록된 학교-태권도-학습지-EBS 루틴은 꽤나 모범생 같다.


글쓰기 상태는 전형적인 1학년이다. 머릿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일단 종이에 쏟아내느라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뒤에서 헐레벌떡 따라온다. '갑자기' 하나를 쓰는 동안에도 여러 차례 사고가 있었던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데 그렇게 글자가 무너지는 와중에도 마지막 자기평가는 단호하다. "나는 오늘 반성할 게 없다." 그날 숙제를 다 끝내고 아무런 부채의식이 없는 채로 놀았을 테니 얼마나 좋았을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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