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복금밥무김치
1998년 3월 27일 금요일
날씨 맑음
제목: 복금밥무김치
오늘 복금밥 먹고 무김치는 엄마가 만들었다. 오늘 누나 손바닥 10개나 맞았다. 누나는 그레서 울었다. 오늘 이모가 오래갑만에 오셨다. 나는 오늘 좋은 날이다. 나는 누나가 일기 짬뽕으로 적는 것 같다. 누나는 먹는 거 그대 맞있는거 안 조서 내가 다 먹었다.
첨삭
오늘은 볶음밥을 먹었다. (볶음밥에 있는) 무김치는 엄마가 만드신 것이다. 오늘 누나는 손바닥을 10대나 맞았다. 누나는 그래서 울었다. 오늘 이모가 오랜만에 오셨다. 나는 오늘 좋은 날이다. (내가 관찰하기에) 누나는 짬뽕 먹었던 걸 일기에 적는 것 같다. 누나는 먹는 거 그대 맞있는거 안 조서 내가 다 먹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오늘은 누나가 손바닥을 열 대나 맞았다. 그런데 이어지는 본인의 하루 평가가 볼만하다. "나는 오늘 좋은 날이다." 누나의 비극과 나의 행복은 별개의 회계로 처리되고 있다. 이모도 오셨고 맛있는 것도 먹었으니 본인 기준으로는 충분히 좋은 날이었던 모양이다. 가족 구성원의 고통까지 연결재무제표로 작성하기에는 아직 어린 여덟 살이다.
1998년에는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든 손바닥을 맞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당시의 나는 누나가 왜 맞았는지는 한 글자도 기록해두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란 독자가 궁금해할 정보를 친절하게 제공하는 글쓰기를 하지 못한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만 쓴다. 누나가 열 대를 맞았다. 울었다. 이상 보고 끝. 사건 경위가 궁금한 2026년의 독자는 알아서 상상하도록 하자.
마지막 두 문장은 지금 읽어도 해독 난도가 상당하다. "누나가 일기 짬뽕으로 적는 것 같다."는 말은 대강 짐작컨대 '누나가 짬뽕 먹었던 것을 일기에 쓴다'는 식으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누나는 먹는 거 그대 맞있는거 안 조서 내가 다 먹었다."는 현직 교사인 나조차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혹시 해석이 가능한 초능력자가 있다면 댓글에 써주면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