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적인 청춘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기억에 대해 생각하다.
아들이 바카라을 사 왔다. 방학을 맞아 한 권은 읽겠지 기대했지만 결국 내가 읽게 되었다. 울화통이 터져서 그런지 풋풋하고 아픈 사랑 이야기가 별로 와닿지 않았다. 나이 탓일 수도 있다. 바카라을 읽는 독자의 나이나 상황 역시 바카라의 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사랑은 개뿔~
하지만 이 바카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이고 일본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영화로 제작되었다.
주인공 히노 마오리는 선행성 기억 상실증에 걸려 있다. 전날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병이다. 절차 기억이라고 해서 학교 가는 법, 자전거 타는 법 등은 잊지 않고 기억한다. 하지만 전날 만난 사람, 그 사람과 한일이나 대화 내용 등은 다음날 아침이 되면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히노 마오리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 가미야 도루는 일진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돕기 위해 히노 마오리에게 고백을 하게 된다. 친구의 괴롭힘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일진들이 내건 조건을 수행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히노 마오리'에게 고백하기였다. 뜻밖에도 히노 마오리가 그 고백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둘은 사귀게 된다. 하지만 히노 마오리는 세 가지 조건을 건다. 학교에서는 말 걸지 말 것, 연락은 짧게 할 것, 정말로 좋아하지 말 것!
히노 마오리는 가미야 도루와 함께 하는 하루하루를 전부 기록한다. 그리고 아침에 그 기록들을 다시 보고 외우며 데이트를 즐긴다. 결국 둘은 세 번째 조건을 어기고 만다. 당연히 예상했다. 남녀상열지사가 어디 가겠는가? '둘은 정말로 좋아하지 말 것'이라는 세 번째 조건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풋풋한 로맨스로 흘러 가는가 싶던 소설은 급반전을 맞게 된다. 심장이 약했던 남자 주인공 도루가 돌연사하고 만 것이다. 그는 죽음을 예견한 듯 히노 마오리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마오리의 병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와타야 이즈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내가 죽으면 마오리의 노트에 내 이야기를 다 지워줘.'
4년 후 히노 마오리의 기억 상실증은 완치된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가미야 도루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때의 감정은 남아 마오리는 시시 때때 가미야 도루를 느낀다. 결국 친구 이즈미에게서 도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간 느낀 감정의 진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가미야 도루와의 모든 것을 기억해 내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소설은 끝이 난다.
"상실뿐인 세상에서 도루는 분명히 거기 있었다. 마오리 안에서 도루는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 "
도루에 대해 모르고 살아도 무방했지만 사랑했던 감정은 그 결국 꼬리를 끊어내지 못한 것이다.
기억과 망각사이
우리는 많은 것을 기억하고 다시 많은 것을 잊고 산다. 잊고 싶은 기억이 있고, 반대의 기억도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기억도 있고, 잊히는 기억도 있다. 기억은 항상 감정을 동반한다. 그리고 시간과 함께 희미해지기도 하고 잊히기도 한다. 때론 기억의 총량이 있는 건 아니가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반대로 마오리는 도루와의 추억을 기억해 내고자 노력한다. 영원히 도루를 잊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수없이 많은 잊고 싶은 기억을 가지고 살고 있다. 행복한 순간은 찰나 같았고 힘들고 괴롭던 일들은 늘 가슴에 맺혀 있다. 괴롭던 기억을 송두리째 뽑아 버리고 싶은 적도 있다. 아마 소설을 읽으며 전혀 감정 이입이 안 된 모양이다. 난 역시 세상 풍파에 시달려 순수함을 잃은 것이 확실하다.
여하튼 어떤 기억은 잊혀야 살 수 있지만 또 다른 기억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