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이 날아오면

by정아라

누군가 나 또는 우리의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이 있었다.

우리는 정보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주었다고 해서 열매가 되어 돌아올 지는 알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있다.


대처를 여러 가지 방향으로 할 수 있다.

우리는 원하는 도움을 줄 수 없다고 거절할 수도 있다.

함께 하게 될 가능성이 낮으니 그냥 일회성 지원을 할 수도 있다.

당장 성과가 되어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전략적으로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필요로 하는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이 생기면 어떤 방향으로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좋을까.


씨앗 하나가 날아와 손등에 앉았다.


그냥 모기 잡듯이 툭 쳐서 생명을 끊어 버릴 수도 있다.

그냥 후, 불어 날려 보낼 수도 있다.

그런데 앞마당에 한번 심어볼 수도 있다.


어떤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씨앗인지는 알지 못한다.


심었으니 열매까지 맺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상상을 할 수는 있다.

그 모습을 그려 보면 아무래도 더 정성껏 심게 된다.

열매를 맺으면 아마 엄청 기쁠 것이다.


그러나 1개를 심었으니 1개가 나야 하고 2개를 심었으니 2개가 '나야 한다'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성장이나 열매가, 어떤 일의 결과가,

일대일 대응으로, 1차 방정식 그래프처럼 일직선으로 수확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심었다고 해서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씨앗에게 의무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씨앗이 심어 달라고 한 게 아니라 내가 심었을 뿐이니까.


작은 씨앗이 손등에 앉았으니 그저 정성을 다해 심어 본다.

우연히 씨앗이 손에 왔으니 기왕 생긴 씨앗, 썩기 전에 심으려는 것뿐이다.

그냥 주어지는 모든 사람과 모든 일에 진심을 다하려고 하는 것일 뿐이다.


씨앗이 새싹으로 피어날지 아닐지는 모른다.

그러나 씨앗을 심으면 최소한 가능성은 생긴다. 가능성이 0는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씨앗을 심지 않으면 아무 것도 나지 않는다. 그건 가능성 0인 것이다.

심지도 않았는데 날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후, 불었는데 날 수도 있다 ^^)


그러니 내 손에 날아온 씨앗은 일단 정성껏 심는다.

현재 주어진 것에 충실하게 집중한다.


감사하게도 싹이 난다면 물을 줄 것이다.



어떤 날씨에서든, 낮이나 밤이나 어떤 시간이든 나는 시간을 잘 활용하려고 애썼고 그 결과를 막대기에 새겨놓으려 했다. 두 영원, 즉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현재라는 지점을 굳건히 딛고 서서, 충실히 원칙을 따라가려 했다. (주1)


주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시민 불복종>, 현대지성, 2021.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