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야 하는 자리에 많이 가게 된다. 누군가는 할 말도 없는데 거기 가서 왜 앉아 있는지 물을 수도 있다. 굳이 왜 가냐고 물을 수도 있다.
토론 자리에 초대되었다면 말하는 것이 의무이니 그리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자리에서는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고, 어떤 자리에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자리에서는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기 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기 전에, 내가 이미 내린 결론을 꺼내 놓기 전에.
잘 듣는다는 것은 대답을 준비하는 일을 잠시 멈추는 일이다.
포스트잇에 미리 할 말 써 놓고 이야기하는 워크숍을 좋아한다. 그렇게 하면 내가 할 말 생각하느라 남의 말을 놓치는 일이 많이 줄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자주 다음 말을 준비한다. 그건 이렇지 않나, 내 생각은 다른데, 그 문제는 이미 알고 있는데. 상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머릿속에서는 반박과 해석과 해결바카라이 바쁘게 오간다. 귀는 열려 있지만 마음은 벌써 다른 곳에 가 있다.
나 역시 그렇다. 듣는다고 해서 늘 잘 들리지가 않는다. 상대의 말에서 내가 아는 것을 확인하고, 내가 생각한 것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다시 듣고 있는 셈이다.
내게도 할 말이 있고, 내가 아는 것도 있고, 보태고 싶은 의견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이 그것이 아니라면 잠시 미뤄 둔다. 내가 말하지 않는 동안 다른 사람의 말이 조금 더 이어질 수 있으니까. 다 듣고 나서 말해도 늦지 않다.
듣는다는 것은 그분들의 말은 들을 가치가 있고, 그들은 내가 더 알고 싶은 이들이라고 말해 주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해 온 일에 대한 이야기,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어려움, 다른 사람에게는 사소해 보여도 자신에게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경험. 어떤 이야기는 잘 정리되어 있고 어떤 이야기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말하고, 어떤 사람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자신도 잘 모르는 채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럴 때 우리는 듣는 사람의 편의에 맞춰 상대를 판단하기 쉽다. 요점이 무엇인지, 그래서 결론이 무엇인지, 그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쓸모가 있는지 따져 묻는다. 물론 함께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자리라면 결론도 필요하고, 시간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처음부터 결론을 갖추고 우리 앞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충분히 말해 본 뒤에야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누군가가 끝까지 들어 주었기 때문에 비로소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기도 한다. 그러니 듣는 사람은 이야기를 받아 적는 사람만은 아니다. 아직 모양을 갖추지 못한 생각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곁을 내어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게 듣는 자리에 앉아 기꺼이 곁을 내어 주고 싶다.
나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할 이야기에 대해 내가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껏 알고 있다고 여겼던 사건이나 사람에게도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면이 있을 수 있다고 믿는가.
듣기는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다.
이 기다림은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는 경험이 쌓일수록 많은 것을 빨리 알아듣는다. 말 몇 마디만 들어도 대강의 사정을 짐작하고, 비슷한 사례를 떠올리고,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했다고 생각한다. 경험은 분명 귀한 자산이다. 그러나 경험이 많다는 것이 언제나 잘 듣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많이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는 들을 필요가 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세계가 넓어질수록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할 수도 있지만, 이미 알고 있는 세계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끼워 맞출 수도 있다. 그러니 오래 일한 사람에게도,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 온 사람에게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도 다시 들을 일이 남아 있다.
듣는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듣는다고 해서 모든 말에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할 때가 있고, 누군가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권리를 침해한다면 분명하게 짚어야 한다.
듣기는 판단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다만 판단에 앞서 더 알아보는 일, 내가 놓친 맥락이 없는지 살피는 일이다. 제대로 듣고 나서도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어쩌면 끝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듣기 전과 후의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적어도 상대를, 상황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몇 가지 사실만으로 규정하지는 않게 된다.
어쩌면 듣는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내가 하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말을 많이 하지도 않고, 당장 무언가를 결정하지도 않고, 눈에 띄는 결과를 만들어 내지도 않으니까.
그러나 듣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 아니다. 내 안의 서두름을 늦추고, 다른 사람의 말이 들어올 자리를 만들고,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 앞에 머무는 일이다.
그렇게 듣는 것으로부터 다른 사람, 다른 세계를 만나는 일이 시작된다.
내 자리는 '듣는 자리'라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내가 가진 말을 조금 늦게 꺼내는 대신,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우리가 서로의 말을 듣는 동안,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도 조금 더 알게 되겠지. 그렇게 관계 속에서 자신을 다시 세워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