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는 회의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리 아는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미리 묻는 사람이 덜 진다.

by시선

회의가 끝나고 십오 분쯤 지나, 나는 복도에서 그 결정을 다시 들었다. 정수기 앞이었다.


"아까 그거, 결국 그렇게 가는 거죠?"


종이컵을 든 사람이 물었고, 맞은편에서 고개가 끄덕였다. 두 사람은 물을 받아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조금 더 서 있었다. 방금 그 회의실에서 두 번째로 길게 말한 사람이 나였다. 그런데 지금 오간 두 마디 어디에도 내가 한 말은 없었다.


그날 아침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장표는 스물두 장이었다. 밤을 새워 표의 선 굵기를 반 포인트 줄이고, 숫자의 자릿수를 맞추고, 마지막 장에 결론 한 줄을 크게 넣었다. 아홉 시 반에 출력해 스테이플러를 찍었다. 종이가 아직 따뜻했다. 준비는 끝났다고 믿었다.


회의는 열한 시였다. 열 시 사십 분에 나는 자리에 앉아 첫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그 시각 팀장 자리는 비어 있었다. 나는 그걸 봤고, 어디 잠깐 갔겠거니 하고 넘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 빈 의자가 그날의 전부였다.


회의는 사십 분 만에 끝났다. 내 차례에서 나는 준비한 대로 말했고,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이 없어서 잘된 줄 알았다. 자리로 돌아와 스테이플러로 묶은 자료를 서랍에 넣었다. 스물두 장 가운데 실제로 넘겨진 장은 네 장이었다. 나머지 열여덟 장은 그날 이후 아무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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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첫 회사에서도 나는 안건표를 받으면 안건만 읽었다. 위에서 세 번째 줄, 내 이름이 붙은 항목에 형광펜을 그었다. 그 종이의 맨 아래에 참석자 이름이 여덟 개 적혀 있다는 것은 몇 년 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종이 한 장이 회의의 설계도라고 믿었다.


몇 해가 지나고, 다른 회사 다른 회의에서 나는 그 빈 의자가 어디에 가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날은 회의 이십 분 전에 자료를 미리 놓아두려고 회의실 문을 열었다. 안에 두 사람이 있었다. 창가에 서서, 한 사람이 손바닥을 폈다 접었다 하며 허공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이번 건은 좀 어렵겠고, 다음 분기에 붙이는 쪽으로." 나는 자료를 문 옆 탁자에 내려놓고 조용히 나왔다. 열한 시에 시작한 회의는 열한 시 사십 분에 끝났다. 결론은 창가에서 들은 그 한 문장과 같았다.


회의가 끝나고는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내려가는 동안, 회의실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던 사람이 처음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일정, 그대로 가면 검수가 안 되는데요." 옆에 선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열리고 각자 흩어졌다. 다음 주 회의의 첫 안건은 일정이었다.


같은 날 회의록에는 그 말이 한 줄도 없다. 회의록은 문이 열려 있던 사십 분만 기록한다. 앞의 이십 분과 뒤의 삼 분은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남지 않을 뿐,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깥 회의라고 다르지 않았다. 제안서를 들고 심사장에 들어간 날, 문을 열자마자 알았다. 앞 순서 팀의 자료가 아직 바카라상 위에 펼쳐져 있었고, 두 사람이 그 장을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 차례가 시작되고도 그 페이지는 한동안 덮이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기울어진 저울 위에서 이십 분을 말했다.


부부 계 모임 날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세 집이 모이는 자리였고, 나는 그 자리에서 다음 약속을 정하는 줄 알았다. 앉자마자 아내가 말했다. "다음은 시월 셋째 주 토요일. 세 집 다 된대." 언제 정했느냐고 물었다. 아내가 젓가락을 뜯으며 대답했다. "지난주에 당신한테도 물어봤잖아. 아무 때나 좋다며."


기억이 났다. 나는 그때 재활용 봉투를 들고 현관을 나서던 참이었고, 아무 때나 좋다고 대답하고 문을 닫았다. 정해지는 자리는 그 몇 초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셈이었다.


무뚝뚝한 목소리였는데 서운하지는 않았다. 서운할 일도 아니었다. 자리는 그때 이미 열려 있었고, 내가 앉지 않았을 뿐이다.


지난달에 정해진 일들을 떠올려 본다. 그 가운데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기울어 있던 것은 몇 개였을까. 그 시간에 우리는 대개 어디에 있었을까.


출근길 지하철 출구를 나오면 모퉁이에 빵집이 있다. 유리 안쪽에서 반죽을 미는 손이 보인다. 오븐은 그 옆에서 소리만 낸다. 신호를 기다리며 그 장면을 한참 보다가 생각했다. 오븐은 익힐 뿐 모양을 바꾸지 않는다. 모양은 그 전에 손에서 다 만들어진다.


회의실은 오븐이었다. 우리가 회의를 준비한다고 말할 때, 사실은 다 구워져 나온 것을 접시에 담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앞의 시간을 반죽 시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반죽 시간이 따로 예약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은 대개 다른 이름으로 지나간다. 커피를 사러 나가는 오 분,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회의실을 잡으러 갔다가 서서 나눈 두 마디. 달력에는 하나도 적히지 않는다.


반죽 시간 — 결정의 모양이 아직 손에 눌리고 있는 동안. 회의실 문이 열리면 이미 끝나 있다.


자리가 바뀌고 나서 알게 된 것도 있다. 결재판을 들고 온 팀원이 문을 두드리기 전에, 나는 이미 그 안건에 대해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을 때가 많다. 아침에 다른 자리에서 한 번 들었기 때문이다. 팀원은 사흘을 준비해서 들어오고, 나는 오 분 만에 답한다. 그 오 분이 야박해 보였을 것이다. 야박한 게 아니라 이미 접혀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언젠가부터 한 문장을 덧붙인다. "이거, 혹시 누구랑 먼저 얘기해 봤어요?" 처음 듣는 사람은 표정이 조금 굳는다. 절차를 확인하는 질문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두어 번 지나면 알아듣는다. 결재판보다 먼저 도착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오해가 생기기 쉽다. 반죽 시간에 가 있으라는 말이 미리 줄을 서라거나 뒤에서 손을 쓰라는 뜻으로 읽히면, 이 글은 실패한다. 나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다. 그런 재주로 오래 버틴 사람도 별로 보지 못했다.


내가 바꾼 것은 두 가지뿐이었다. 회의 전날, 이 안건을 가장 불편해할 만한 한 사람에게 질문 하나를 미리 묻는다. 반대를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반대의 내용을 미리 듣는 쪽에 가깝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면 삼십 초쯤 늦게 일어난다. 서류를 챙기는 척하는 그 삼십 초에, 회의실 안에서는 나오지 않던 말이 나온다. 미리 아는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미리 묻는 사람이 덜 진다.


물어 두면 회의가 짧아진다. 상대의 첫 문장을 이미 들어 봤기 때문에, 그 문장이 나올 때 나는 놀라지 않는다. 놀라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는 조금 낮아진다. 낮은 목소리는 회의실에서 생각보다 멀리 간다.


물론 물어도 소용없는 날이 있다. 이미 접힌 쪽으로 접히는 안건도 있다. 다만 그 뒤로는 억울함의 종류가 달라졌다. 회의에서 진 것이 아니라, 반죽 시간에 없었을 뿐이다. 이 문장은 변명이 아니라 다음 회의의 준비물에 가깝다.


회의실은 방음이 잘 되는 곳이 아니라, 늦게 열리는 곳이다.


오늘도 문 앞에서 한 박자 늦게 일어섰다. 등 뒤에서 의자 미는 소리가 나고, 누군가 낮게 웃으며 한마디를 흘렸다. 나는 그 한마디를 수첩 귀퉁이에 적었다. 다음 주에 그 말이 안건표 두 번째 줄에 올라와 있을 것이다.


회의는 회의실에서 시작해서 복도에서 끝난다. 나는 그 복도를 오래 지나쳐 다녔다.


두 번째 사규 제3조 결정은 회의실에서 발표되고, 회의실 밖에서 만들어진다. 안건을 알면 절반, 동선을 알면 전부다.

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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