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밖의 물살, 월 1만 원의 부력

2026 아이치 나고야 아시안게임을 보고

by박 스테파노
- 펜싱 오상욱의 금빛 앞에 있던 월 20만 원
- 장학생이 후원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날
- 카누 첫 2관왕의 날, 화면은 탁구장에
- 금메달을 건 테크볼 이준석, 실업팀은 없다


9월 23일, 도코나메의 경기장에서 오상욱은 선천펑을 15-13으로 꺾었다. 막판에 뒤집은 승부였다. 사흘 뒤 단체전 결승에서는 41-44로 몰린 끝에 일본을 45-44로 따돌렸다. 발목 부상을 안고 치른 대회였다. 검 끝에서 터져 나오는 짧은 비명. 펜싱 선수 오상욱의 런지(lunge)는 번개처럼 짧다. 그 짧음 속에 십수 년이 접혀 있다.


27일 나고야에는 비가 내렸다. 높이뛰기 선수 우상혁은 젖은 트랙에서 2m22를 넘어 동메달을 땄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과 2022년 항저우의 은메달에 이은 세 번째 시상대였다. 5월에 스파이크가 찢어져 발등을 다친 뒤의 복귀전이기도 했다. 동메달을 목에 건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남아 있었다. 메달의 빛깔이 달라도 바의 높이는 같았다.


▲ 조명이 눈부신 곳에는 음지도 깊다. 닳은 스파이크와 물려 입은 경기복이 메달 이전의 시간을 말한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조명이 눈부신 곳에는 음지도 깊다. 엘리트 스포츠의 길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땀과 자본으로 깔린 가시밭이다. 장비 한 벌을 마련하는 일이 가계의 생존을 위협하는 아이들에게 스포츠는 희망의 사다리이기 이전에 까마득한 절벽이다. 2011년 대전 매봉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은 형이 입던 경기복을 물려 입었다고, 운사모 이건표 회장은 전한다. 중학교 2학년이던 우상혁에게 스파이크는 석 달이면 닳는 소모품이었다. 그 소년들의 곁에 한 달에 1만 원씩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운사모(운동을 사랑하는 모임)다. 회원 20명이 모이면 장학생 한 명에게 월 20만 원이 간다. 메달이 걸리기 전의 시간은 누가 비추는가.




받은 자가 주는 자가 될 때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Essai sur le don, 1925)에서 선물이 세 겹의 의무에 묶인다고 썼다. 주고, 받고, 갚는 일이다. 증여(贈與, don)에 공짜는 없다. 갚음이 늦게 올 뿐이다. 선물은 물건을 건네는 일이기 전에 사람을 잇는 일이다.


운사모는 2009년 대전 지역 장학사, 체육 교사와 지도자들이 세웠다. 대회 성적에 따라 건네는 포상금과는 결이 다르다. 한 번 뽑은 장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바카라임진다. 이건표 회장이 장학사 시절에 본 것은 형편 때문에 운동을 접는 아이들이었다. 교사이던 시절에는 합숙하는 선수들을 먹이려 결혼반지를 판 적도 있다고 한다. 70여 명의 장학생 가운데 중도에 갈라선 경우는 세 건뿐이었다. 17년 동안 쌓인 장학금은 6억 원을 넘는다. 이 돈에는 계산서가 붙지 않았다. 그것은 "네 꿈을 우리가 응원하고 있다"는 무명의 시민들이 보내는 타전(打電)이었다.


답신은 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장학생이던 오상욱과 우상혁은 이제 후원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2025년 총회에서 오상욱은 장학생 17명 전원에게 1000만 원어치 체육용품을 건넸다. 답례는 준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다음 소년에게 흘러갔다. 증여가 시장의 교환과 갈라지는 자리가 여기다. 갚음의 주소가 사람이 아니라 사슬이다.


▲ 받은 손이 다시 건네는 손이 될 때, 선물은 사람이 아니라 사슬을 따라 흐른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오상욱의 검 끝에 실린 힘은 한 사람의 악력에서 나오지 않았다. 우상혁이 바를 넘을 때의 가벼움은 그를 떠받치던 무수한 손길들의 부력(浮力) 덕분이었다. 물에 뜨는 몸은 제 힘만으로 뜨지 않는다. 선물을 받은 몸이 선물을 건네는 몸으로 바뀌는 순간, 연대는 구호에서 습관이 된다. 오늘의 승자와 패자의 발밑에도 이름 없는 모임이 있고, 메달 뒤에는 승자보다 훨씬 많은 낙선자의 눈물이 있다.


그러나 부력은 물이 마르면 사라진다. 운사모의 회원은 한때 500명 안팎이었으나 363명으로 줄었다. 장학생을 늘리고 싶어도 늘리지 못하는 사정이 거기 있다. 한 단체의 선의가 한 지역 체육의 복지를 대신하는 일을 우리는 미담이라 부른다. 미담은 구멍을 덮는 이불이기도 하다. 회원 한 사람의 1만 원은 작다. 그 작음이 열일곱 해를 건너 한 소년의 신발이 되었다.




신호가 닿지 않은 물가


9월 24일 미요시호에서 한국 카누는 남자 카약 4인승 500m에서 이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땄다. 이튿날 조광희와 김효빈은 2인승 500m에서 일본을 0.317초 앞서 한국 선수단 첫 2관왕이 됐다. 이 종목의 금메달은 36년 만이었다. 그날 지상파 3사는 신유빈의 탁구와 한일전 3x3 농구를 틀었다. 편성은 선택이다. 선택의 바깥에서 물살은 화면에 닿지 않았다.


이 부재를 방송사의 탓으로만 돌리면 과녁이 흐려진다. 20일 한국 선수단의 첫 금메달인 근대5종 성승민의 경기가 국내 시청자에게 닿지 않은 것은 편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개최국 쪽이 국제방송신호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호가 없으면 방송사는 틀 방법이 없다. 정부가 개막 보름 전에 비인기 종목과 신규 종목의 중계를 늘려 달라고 권고했으나, 권고는 신호보다 먼저 닿지 못했다. 신호를 만드는 쪽과 편성하는 쪽과 권고하는 쪽, 이 세 겹의 사이에서 화면은 비었다. 카누의 침묵에도 조직위의 준비 부족이 있었으리라는 지적이 따른다. 다만 이 대목은 추정으로 남겨 둔다.


자크 랑시에르는 이것을 감성의 분할(感性 分割, partage du sensible)이라 불렀다. 무엇이 보이고 누가 말하는 자로 인정되는지를 미리 나누어 두는 질서다. 중계는 그 질서가 가장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장치다. 화면에 잡히는 자는 서사를 얻고, 잡히지 않는 자는 기록으로만 남는다. 메달이 터진 뒤에야 카메라가 시혜처럼 다가오는 구조 속에서 선수들은 제 땀을 증명하기도 전에 결과로 환산된다.


▲ 신호는 물가 앞에서 멈춘다. 카메라가 다른 곳을 향하는 동안 노는 어둠 속에서 저어진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이번에 처음 정식 종목이 된 테크볼에서 이준석은 20일 이라크 선수를 2-0으로 꺾고 초대 챔피언이 됐다. 그는 축구 선수였고 족구 선수였다. 두 번 문이 닫힌 사람이 세 번째 문을 테이블 위에서 열었다. 세계랭킹 391위의 승부였다. 테이블은 축구장의 1400분의 1 크기였으나 간절함은 줄지 않았다. 그가 쌓은 시간은 중계 화면에 잡히지 않았다.


화면이 몰리는 곳에는 다른 말이 따라붙는다. 28일 야구가 금메달을 따자 병역 혜택을 두고 반발이 일었다. 대표 24명 가운데 16명이 미필이었다. 3일에는 축구가 일본과 결승을 치르고, 이 경기에도 같은 말이 걸려 있다. 형평성을 기계적 평등으로 이해하면 이 반발이 불편하다. 그러나, 야구와 축구의 성원은 모두가 프로스포츠 선수들이다. 그것도 동년배 일반 슬롯인들보다 훨씬 많은 댓가를 받는 전문 직업인이다. 그들의 금메달과 중게방송도 하지 않는 이들의 금메달의 무게를 같은 저울에 다는 것이 과연 평등일까. 금빛이 병역 면제의 열쇠로 읽히는 순간 땀의 서사는 계산서가 된다. 이해의 언어는 조명 아래에서 자란다. 어둠 속의 선수에게는 그런 말조차 건너오지 않는다.




알아주지 않아도, 라는 미덕의 뒷면


『논어』 「학이」에 이런 구절이 있다.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으니 군자가 아니겠느냐는 뜻이다. 이준석과 카누의 선수들, 운사모의 이름 없는 회원들이 이 말을 몸으로 산다.


조광희는 2014년 인천과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에서 카약 1인승 200m를 연달아 제패했다. 2022년 항저우에서는 그의 주 종목이 정식 종목에서 빠졌다. 종목이 사라져도 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다인승으로 방향을 바꿔 세 번째 대회에서 금메달 두 개를 걸었다. 김효빈은 첫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이 됐다. 이름이 불리지 않는 시간에도 물은 흘렀고 노는 저어졌다. 0.255초 차로 중국을 따돌린 4인승의 물살도 그랬다.


이준석은 올해 2월 테크볼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는 소식을 듣고 계약직으로 일하던 대기업을 나왔다. 정규직 전환의 기회도 함께 놓았다. 진천선수촌에는 들어가지 못했고, 사비로 연습장을 빌렸다. 종주국 헝가리로 가는 비행기 삯도 제 주머니에서 나왔다. 금메달을 걸고도 그는 실업팀이 생기지 않으면 다시 생계를 찾아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메달이 걸린 뒤에야 마이크가 다가온다.


덕은 개인의 몫이다. 알아보는 일은 슬롯의 몫이다. 서운해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알아보지 않는 슬롯가 면바카라되지는 않는다. 알아봄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한 경기를 편성하고, 카메라 한 대를 세우고, 실업팀 하나를 만드는 일이다.


▲ 금메달은 걸렸으나 마이크의 그림자만 다가오고, 실업팀의 벤치는 비어 있다. ⓒ Visual Concept & Art Direction: PSTPHNS


아시안게임은 전쟁의 폐허에서 싹튼 평화의 제전이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인도의 구루두트 손디(Guru Dutt Sondhi)가 아시아 고유의 대회를 제안했고, 1949년 아시아경기연맹(AGF)이 세워졌으며, 1951년 뉴델리에서 제1회 대회가 열렸다. 슬로건은 Ever Onward, 영원한 전진이다. 제20회를 맞은 이번 대회가 아직 묻는다. 전진은 앞서 달리는 자의 몫만인가.


내용을 입력하세요.우리는 젊은 영혼들의 꿈을 위해 어떤 바탕이 되어주고 있는가?


경기장의 환호가 닿아야 할 곳은 승자의 가슴만이 아니다. 그 승자를 있게 한 슬롯적 온기와 무명 후원자들의 선의를 향한 찬가여야 한다. 스포츠는 인간 연대의 위대한 합주곡이라 불린다. 합주에는 지휘봉이 닿지 않는 악기도 있다. 0.317초를 만든 것은 화면 밖에서 흐른 수년의 물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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