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초등학생 아들 녀석과 거실에 나란히 앉아 영어 그림바카라을 함께 읽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이가 특정 페이지의 문장에서 뜻을 유추하지 못하고 한참을 끙끙대더군요.
입술을 비죽이며 단어 하나하나를 노려보는 아이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는데, 제 안의 지독한 '최적화 엔진'이 또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내가 한국어 뜻을 딱 알려주면 1초 만에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데.'
입술을 달싹이며 정답을 불쑥 던져주려던 찰나, 꾹 참고 삼켰습니다.
대신 아이에게 물었죠.
"이 주인공 표정을 보니까 기분이 어떤 것 같아? 왜 숲 속으로 도망쳤을까?"
사실 이런 식의 교육, 저에게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더 어릴 때, 회사 어린이집에 맡기기 전 출근길마다 저는 아이 손을 잡고 근처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이름 모를 유충 집이나 벌레를 발견하면 걸음을 멈추고 서로 묻곤 했죠.
"이건 왜 여기 붙어있을까?"
"이 안에는 뭐가 있을까?"
아이는 자기 나름의 상상으로 답을 지어냈고, 저는 그걸 다시 이야기로 엮어보자고 부추겼습니다.
저는 아이가 주입된 지식보다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갖길 바랐거든요.
그런데... 정작 한글을 뗄 때는 이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입 모양이 어떻게 소리를 만드는지, 이 글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까지 이것저것 설명해주며 원리를 이해시키려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좀처럼 한글을 떼지 못했습니다.
결국 주변의 조언대로 반복해서 읽고 쓰게 하는 주입식 방법으로 바꾸자, 놀랍도록 빠르게 글자를 익혔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아이에게 너무 많은 걸 한꺼번에 알려주려 했던 것 같습니다.
한글처럼 일단 손과 눈에 익혀야 하는 기계적인 기술 앞에서는, 원리를 파고드는 '왜?'보다 그냥 반복하는 것이 더 빠른 길이었던 겁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왜?'를 묻는 훈련을 함께 해왔는데도,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왜냐고 묻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유튜브나 숏폼에서 본 정보를 그대로 흡수해서, 마치 자기 생각인 것처럼 저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게 꽤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패턴을, 성인 수강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똑같이 목격했습니다.
수업에서 저는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왜 이 공식대로 기획했을까요?"
"이 게임의 재미와 목표에 따라 공식과 변수 값이 달라져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제가 왜 이 전투 플로우를 이렇게 설계했을까요?"
경력이 있는 수강생들은 얼추 방향을 맞추고, 서로 토론하며 답을 찾아가려 애씁니다.
그런데 신입 수강생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질문 자체에 답을 못 하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자신이 몇 년씩 플레이해 온 게임이 대체 어떤 목표와 가치를 위해 만들어졌는지조차 한 번도 궁금해한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 두 장면, 그러니까 어느 순간 왜냐고 묻지 않게 된 제 아이와, 자기가 오래 즐긴 게임의 의도조차 물어본 적 없는 신입 수강생들을 나란히 놓고 보다가... 저는 한 가지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사람은 대체 언제 '왜?'를 묻는 걸까요.
저는 그게, 문제가 발생해서 그걸 해결해야만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반드시 '틀 안에서' 풀어야만 할 때, '왜?'는 가장 강력하게 발휘됩니다.
반대로 그 틀을 벗어나 우회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사람은 굳이 질문하지 않고 그냥 밖으로 빠져나가 버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이 소소한 깨달음을 마주하며, 저는 기획자로서 수없이 깎고 다듬었던 게임의 '튜토리얼(Tutorial)'과 '레벨 디자인'을 떠올렸습니다.
신입 기획자들이 튜토리얼을 설계할 때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가 있습니다.
유저가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화면 한가운데에 거대한 화살표와 깜빡이는 텍스트를 띄워놓고 이렇게 지시하는 거죠.
"공격 버튼을 누르세요!"
"상점에 가서 포션을 사세요!"
"이 몬스터는 불 속성에 약합니다!"
유저가 헤매지 않도록 정답을 떠먹여 주는, 겉보기엔 아주 친절하고 쾌적한 UX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설계된 게임을 테스트해 보면 유저들은 금방 하품을 하고 게임을 꺼버립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했다는 카타르시스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정말 위대한 게임들은 유저에게 결코 정답을 먼저 선언하지 않습니다.
대신 유저를 아주 교묘한 '결핍의 상황'에 밀어 넣습니다.
앞에서는 절대로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거대한 방패를 든 적을 툭 던져놓는 식이죠.
유저는 뭣도 모르고 정면에서 칼을 휘두르다 처참하게 게임 오버를 당합니다.
바로 이 순간이, 제가 나중에야 깨달은 그 '틀' 이론이 정확히 들어맞는 지점입니다.
유저는 이 결핍의 상황에서 도망칠 수 없습니다.
게임을 끄지 않는 이상 이 틀 밖으로 우회할 방법이 없죠.
그러니 자연스럽게 하나의 강력한 질문이 떠오릅니다. '왜 내 공격이 안 통했지?'
그 질문을 품고 다시 몬스터를 관찰하다가, 방패가 닿지 않는 등 뒤로 돌아가 공격을 성공시켰을 때의 그 짜릿함. 그것이 바로 플레이어가 시스템의 규칙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마법 같은 순간입니다. 좋은 기획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유저가 빠져나갈 곳 없는 틀 안에 스스로를 던져 넣고 '왜?'를 물을 수밖에 없도록 매력적인 장벽을 세워두는 일입니다.
자, 이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볼까요.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정답이 흔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챗GPT나 클로드 같은 AI 도구들은 우리가 묻기도 전에 화면 가득 완벽하게 요약된 정답을 쏟아냅니다.
그리고 이건 결국, 우리 모두에게 언제든 그 틀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비상구를 하나씩 쥐여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는 대신, 언제든 AI에게 물어 우회할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이렇게 완벽하고 매끄러운 정답의 폭격 속에서, 그리고 언제든 열려있는 그 비상구 앞에서, 우리 뇌의 '생각하는 근육'이 속절없이 퇴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회의실 풍경을 한 번 떠올려 보시죠.
누군가 "요즘 우리 서비스 가입자가 줄고 있는데 어떡하죠?"라고 문제를 제기하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가장 그럴싸한 정답을 먼저 선언하기 위해 앞다투어 입을 엽니다.
"할인 프로모션을 합시다!", "UI를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바꿉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성급한 정답들이 아닙니다.
가입자가 줄고 있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파고드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질문의 시간이죠.
"왜 유저들은 결제 직전에 이탈할까요?"
"우리가 주는 가치가 시대의 흐름과 안 맞게 된 건 아닐까요?"
정답을 선언하는 일은 이제 AI가 훨씬 더 빠르고 논리적으로 잘합니다.
지식 노동자로서 우리의 경쟁력은 '정답의 속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시스템의 틈새를 바라보며 "왜 이런 룰이 만들어졌을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방향성'에 있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엑셀 시트 위에서 완벽한 숫자를 찾아 헤매는 삶을 살았습니다.
동료들에게 1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밸런스(정답)를 내놓는, 빈틈없는 '최강의 기획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세월이 흘러 수많은 프로젝트가 무너지고 세워지는 것을 지켜보며, 그리고 제 아이가 어느 순간 질문을 놓아버리는 걸 지켜보며 깨달았습니다. 모든 정답을 쥐고 있는 무결점의 최강자가 되려 할수록, 오히려 변화하는 유저의 마음과 시대의 흐름 앞에서는 쉽게 부러져버린다는 것을요.
모든 것을 안다고 자만하는 순간 질문은 멈추고, 질문이 멈추면 시스템은 고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의 '왜?'를 다시 살려낼 방법을 저도 아직 다 찾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질문이 자라나려면, 도망칠 구멍이 없는 틀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 언제든 우회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아무리 좋은 질문을 던져줘도 아이도, 우리도, 결국 그 틈으로 빠져나가 버리고 만다는 것을요.
정답을 꾹 참고 '왜'를 묻는 훈련. 그것은 아이가 스스로 유추할 때까지 입을 다물고 기다려주는 것만큼이나 답답하고 비효율적인 일입니다. 당장 눈앞의 성과가 급한 3050 온라인 게임인들에게는 그 잠깐의 침묵이 견디기 힘든 불안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스템에 잡아먹힌 수동적인 플레이어가 아니라, 삶이라는 무대를 직접 설계하는 밸런스 기획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불편한 '사유의 마찰'을 견뎌내야 합니다. 누군가 떠먹여 준 정답으로 쌓아 올린 세계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하는 순간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니까요.
오늘 하루, 당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업무와 정보들 앞에서 당장 결론을 내리는 대신 딱 3초만 멈춰 서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나지막이 질문을 던져보는 겁니다.
"왜 시스템은 나에게 이런 행동을 요구하고 있을까?"
다음 화에서는 이렇게 '왜'를 묻는 훈련이 쌓였을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한 차원 높은 시야, 바로 '구조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파편화된 현상들 사이의 숨겨진 룰을 읽어내는 기획자의 렌즈를 함께 장착해 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