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기획자는 왜 더 중요해질까?

문제 정의의 힘

by루니

지난 5월 무렵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회사에 지원서를 냈습니다.

'프로젝트 오르페우스'. 그 이름 하나에 설레어서, 오랜만에 언리얼 엔진을 다시 설치하고 조작법을 처음부터 다시 익혔습니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위해 액션 게임의 구조를 새로 짜고, 직접 시뮬레이터까지 만들어가며 몇 주를 쏟아부었죠.

솔직히 그때 제 마음은 실력을 증명하겠다는 각오보다는, 조금 더 순수한 쪽에 가까웠습니다.

이 회사와 함께라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즐겁고 행복했던 게임 개발의 꿈을 다시 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그 희망 하나로 밤을 새우면서도 힘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지원한 지 딱 일주일 만에, 탈락 메일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많이 무너졌습니다.

19년을 이 일에 쏟았는데, 겨우 일주일 만에 돌아온 대답이 그거였다는 사실이 한동안 마음에 얹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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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저는 제가 무엇을 놓쳤는지 찬찬히 복기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서류들 속에 정작 19년치의 제 경험은 제대로 나열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요.

돌이켜보면, 저는 그 문서를 쓰는 대부분의 과정을 AI에게 맡기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효율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제가 직접 겪었던 시행착오와 뉘앙스, 그 미묘한 판단의 근거들을 스스로 풀어내는 대신, AI가 뱉어낸 매끄러운 문장에 자꾸만 기대게 되더군요.

결과물은 늘 그럴듯했습니다.

문법도 완벽하고, 흐름도 자연스러웠죠.

그런데 정작 제 눈에는 차지 않았습니다.

몇 번을 다시 써도 어딘가 제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남았습니다.

이 경험을 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AI는 어느 순간부터 저에게 '예스맨'이 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제가 방향을 던지면 AI는 늘 무언가를 만들어 냅니다.

기능은 합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제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그 기획인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조잡하게 기능만 나열된 형태로 나올 때도 많았고요.

제가 원하는 그림이 명확하지 않을 땐 이것저것 되물으며 어떻게든 맞춰주긴 하는데, 그 맞춰주는 과정 자체가 어느 순간 진짜 조언이 아니라 그냥 제 말을 받아 적는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AI가 진짜 강력했던 순간도 분명 있었습니다.

밸런스 시뮬레이터를 짤 때는 정말 편리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엑셀과 VBA를 붙잡고 며칠을 씨름해야 했고, 그렇게 시뮬레이터를 완성해도 실제 게임에 접속해서 몬스터를 만 마리씩 호출해 처치하며 드랍률을 하나하나 확인하거나, 확률형 아이템을 만 번씩 열어보며 검증하는 수작업이 또 따로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과정을 통째로 줄여주고, 곧바로 엑셀로 정리된 데이터까지 뽑아줍니다. 이건 정말이지 부정할 수 없는 도움이었습니다.


반면 간단한 컴퓨터 정리나 그래픽 쪽은 제가 잘 몰라서 그런 건지, 결과물이 나오긴 해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걸 겪으며 가장 선명하게 남은 깨달음은 따로 있습니다.

AI는 제가 무엇을 목적으로 해야 할지, 이 게임의 어떤 지점에서 재미를 끌어내야 할지, 유저의 마음을 붙잡을 심리적 장치를 어디에 심어야 할지... 그런 것들을 스스로 깊게 들여다보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편리하긴 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설계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레이아웃을 먼저 그려주고 방향을 잡아줘야만, 비로소 움직입니다.

19년 차 기획자로서, 이 실패와 그 뒤의 복기를 통해 제가 감히 확신하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AI 시대가 깊어질수록 우리 같은 기획자, 혹은 일상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 사람들의 역할은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례 없이 중요해질 겁니다. 단, 우리의 역할이 '정답을 내는 사람'에서 '문제를 정의하는 사람'으로 완전히 이동한다는 전제 하에 말이죠.


가령, 특정 던전의 보스전에서 유저들이 픽픽 쓰러지며 엄청난 이탈률을 보이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데이터를 AI에게 던져주면 백이면 백, 이런 정답을 내놓을 겁니다.

"현재 유저 평균 스펙 대비 보스의 공격력이 과도하게 높습니다. 보스의 체력을 10%, 공격력을 15% 하향 조정하는 것이 최적의 밸런스입니다."


숫자만 보면 완벽한 정답입니다.

하지만 뛰어난 기획자는 밸런스 패치를 누르기 전에 '질문'을 던집니다.

'유저들은 지금 난이도가 어려워서 화가 난 걸까, 아니면 불합리하다고 느껴서 화가 난 걸까?'

직접 플레이를 해보고 유저들의 심리를 추적해 보면 진짜 원인은 숫자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보스의 공격력이 세서가 아니라, 공격이 들어오기 직전에 유저가 회피할 타이밍을 알려주는 '사전 모션(UI)'이 너무 흐릿해서 직관적이지 않았던 것이죠.


만약 AI의 말대로 공격력만 낮췄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유저들은 여전히 맞으면서 불쾌감을 느끼고, 긴장감마저 사라진 보스전에 하품을 하며 게임을 떠났을 겁니다. 기획자는 숫자를 깎는 대신, 보스가 칼을 휘두르기 전에 붉은색 이펙트를 크고 명확하게 보여주는 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난이도는 여전히 어렵지만, 이제 유저들은 자신의 실수로 맞았다고 인정하며 기꺼이 도전을 반복하죠.


이것이 바로 '문제 정의의 힘'입니다.

그리고 이번 오르페우스의 탈락이 뼈아프게 가르쳐준 것도 결국 같은 지점이었습니다.

제가 AI에게 넘긴 건 단순한 문서 작업이 아니라, '내 19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 그 자체였던 겁니다.

그 질문을 스스로 붙잡고 있었어야 했는데, 저조차 그 순간엔 더 편한 답을 택하고 말았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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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주어진 문제 안에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내는 압도적인 연산 장치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의 영역은 오직 인간의 몫으로 남아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이 슬롯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부작용들이 바로 '질문 없이 정답만 찾는 시스템'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의 매출이 떨어졌을 때, 직원들의 근태를 쪼고 KPI 압박 수치를 높이는 것은 엑셀이 내놓는 가장 빠르고 쉬운 정답입니다.

하지만 진짜 원인이 '조직의 비전 상실'이나 '의미 없는 보고서에 쏟는 피로감'에 있다면, 아무리 KPI를 정교하게 튜닝해 봐야 사람들은 지쳐서 떨어져 나갈 뿐입니다.

질문(Why)의 방향이 틀렸다면, AI가 아무리 완벽하고 빠른 정답(How)을 가져다준들 그것은 '가장 효율적으로 망하는 길'을 달려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탈락 메일을 받은 그날 밤, 다이어리 첫 장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유저들이 겪고 있는 결핍이 무엇인지, 가장 먼저 묻는 사람이 될 것."

그리고 그 옆에 작은 글씨로 한 줄을 더 적었습니다.

"다음엔, 내 이야기부터 내가 직접 쓸 것."

AI가 모든 계산을 대신해 주는 시대의 지식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남들보다 엑셀 단축키를 빨리 누르는 손가락이 아닙니다. 왜 유저는 여기서 짜증을 냈을까? 왜 우리 고객은 결제 직전에 장바구니를 닫았을까? 왜 나는 오늘 퇴근길에 이렇게 허무함을 느낄까?

눈앞에 드러난 숫자(현상) 이면에 숨겨진 사람의 마음(본질)을 짚어내고, 그곳에 정확한 타겟팅으로 질문의 깃발을 꽂는 힘. 그 서툰 덜컹거림 속에서 '진짜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이야말로 우리가 끝까지 쥐고 있어야 할 기획자의 뇌관일 것입니다.


다음 화에서는 이 '문제 정의'의 힘을 일상에서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정답을 단언하는 대신, 멈춰 서서 '왜 그럴까?'라고 묻는 훈련. 어쩌면 조금은 피곤하게 느껴질 이 사유의 과정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방패가 되는지 12화에서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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