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결혼 때문에 불안한 이유를 고민하다
생각을 정리할 때 자주 쓰는 방법이 있다. 빈 종이 가운데에 커다랗게 고민을 적은 뒤, 그와 관련하여 떠오르는 것을 마인드 맵으로 그린다. 연관이 없어 보여도 좋으니 생각나면 무조건 다 적는다. 마구 쓰다 보면 본심이 원하는 답을 알아차리기에 좋다.
이번에는 연습장을 펼쳐 한가운데에 '결혼'이라고 쓰고 동그라미까지 쳤다. 외로움 말고도 결혼하고 싶은 이유가 더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인지 분명치 않아 답답했다. 깊이 숨어있는 생각까지 모두 찾기 위해 마인드 맵을 그리기 시작했다.
'결혼'에서 선을 죽 그어 '외로움'이라고 적은 뒤, 관련하여 떠오르는 것을 모두 썼다.
실존하는 고통
결혼만이 유일한 해결바카라?
애초에 해결 가능한 문제가 맞기는 한가?
외로움이 실제로 느껴지는 고통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 해결바카라으로 결혼을 갈망했는데, 정말 결혼이 영구적으로 외로움을 없애 줄 지 의문이 들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적고 싶었지만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일단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결혼'에서 뻗어 나온 두 번째 선을 그리자마자 '정상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은연중에 나는 결혼하는 것이 정상이고, 미혼으로 살아가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혼해야만 온전한 삶이라는 이 생각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앞서 말했듯 회사에서 오직 나만이 미혼이다. 자주 만나는 친구들도 결혼을 이미 했거나 하고 싶어 한다. 심지어 당장 애인이 없어도, "그래도 언젠가 해야지"라고 말한다. 지인들이 결혼 생활이나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자주 소외되는 느낌을 받았다. 싱글로 남으면 더 이상 그들과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주변 모두 결혼하는데, 나만 안 하겠다고 버티는 게 유별나고 잘못된 행동처럼 보였다. '정상성'은 결국 튀지 않고 무리에 자연스레 섞여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문득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결혼한 삶이 정상이라는 명제는 참인가?
결혼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현상일 뿐, 결혼만이 옳다는 가치판단에는 당위성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 그것이 정답이다'라는 오류에 빠져있었다. 남들을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이토록 강렬한지 스스로도 몰랐다. 무리에서 벗어나기 싫다는 강한 저항이 무의식 속에 존재했다.
다음 가지에서는 또 어떤 것을 알게 될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세 번째 선을 그었다. 무엇을 적을까 고민하다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언젠가 혼자 운전을 하다 갑자기 왈칵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한 적이 있다. 그때 작성한 메모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노력했다. 하지만 잘 안 됐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패배자 딸을 보며 안타까울 내 가족들에게. 패배자가 되어 매일 엉엉 울고 죽고 싶어 하는 딸을 볼 부모님께.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죽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자신의 살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플 것 같다. 패배자여도 행복하게 살려고 계속 노력했는데 잘 안된다. 난 행복한 패배자는 못 될 인간이다.
메모에 정확한 키워드가 있지는 않지만, 당시 내가 스스로를 패배자로 지칭한 이유는 결혼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포기했으면 싱글로 당당하게 살기라도 할 것이지, 자신이 미혼임을 부끄러워하고 죽도록 괴로워하는 딸을 둔 부모에게 미안했다. 이 기억을 떠올리며 세 번째 가지에는 '효도'라고 적었다. 가정을 이뤄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주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뻗은 가지에는 '자녀'를 적었다. 사람들이 결혼 적령기에 집착하는 것은 결국 출산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나는 자녀를 원하는가?
흔히 자녀에 대해 설명할 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라는 말을 쓴다. 내게는 강아지가 한 마리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자녀가 주는 기쁨을 그녀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그녀는 전력을 다해 나를 사랑한다. 그녀가 내게 쏟는 사랑은, 누구에게도 받아 본 적 없는 형태이다. 그런 그녀를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많이 사랑한다. 내 강아지도 이토록 사랑하는데 하물며 내가 낳은 아이는 얼마나 사랑하게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자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라면 궁금하기도 하고 낳고 싶을 것도 같은데, 상대가 없는데 어떻게 아이를 갈망한다는 말인가. 지금의 나는 여생을 함께 할 사이좋은 파트너를 원하는 것이지, 자식 때문에 결혼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좋은 사람을 찾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이에 대한 부담이 한결 가벼워졌다.
외로워서, 무리에 끼지 못해서, 효도를 못해서, 나이가 들어서 불행했다. 이 모든 불행을 단번에 해결해 줄 마법 같은 방법이 바로 결혼이었다. 그런데 노트를 채울수록 결혼만 하면 정말 행복할지 의문이 들었다. 누군가 집에 있으면, 무리에 끼면, 부모님이 안심하면, 아이가 있으면 나는 늘 행복할까?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길이 보였다. 결혼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믿음은 위험해 보였다. 무리에 끼고 싶다는 생각이나 효도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했다가는 더 불행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마인드 맵을 그리며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차차 알아내기로 하고, 우선 현재의 고통을 덜어 줄 방법을 찾아 실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