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결혼 때문에 불안한 이유를 고민하다
시달리다 못해 넌더리가 나는 한 주를 마친 뒤 동료와 함께 회사를 빠져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주말에 계획이 있는지를 묻는 나의 질문에 그는 아내와 함께 이태원에 있는 유명한 식당에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료는 아이와 놀아줘야 하는데 뭘 할지 고민이라고 답한다. 대리님은요? 아, 저는 특별히 일정 없어요. 정류장에서 작별 인사를 한 뒤 각자의 행선지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덜컹덜컹, 정신없이 졸다 보니 어느새 동네에 도착. 여름이라 그런지 아직도 하늘이 밝다. 아, 금요일인데 뭐 하지.
아무런 약속이 없는 금요일, 몸은 동네에 도착했는데 마음은 아직인 것 같다. 누구라도 만나고 싶고, 뭐라고 하고 싶고, 맥주라도 마시며 한 주의 회포를 풀고 싶다. 일주일 동안 쌓인 응어리가 명치쯤에 단단히 뭉쳐있는 느낌이랄까.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 싫어 괜히 카지노톡 친구 목록을 훑기 시작했다.
'얘는 결혼했고, 얘는 너무 멀리 살고, 얘는 맨날 자기 자랑만 해서 재수가 없고….'
혹시 부를 만한 사람이 없나 면밀히 살펴봤지만 그 많은 전화번호 중에 금요일 저녁에 갑작스레 호출할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럼 그렇지, 하며 집에 들어가려는데 문득 순대 트럭이 눈에 띄었다. 순대에 맥주나 한 잔 할까 싶어 사람들 뒤로 줄을 섰다. 내 앞에는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엄마가 서서 포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가, 순대 하나 먹어봐.”
순대 트럭 사장님께서 이쑤시개 끝에 순대를 콕 찍어 아이에게 주었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해야지,라고 말하며 아이 엄마가 순대를 받아 아이에게 건네줬다. 김이 폴폴 나는 순대를 후후 불어먹는 아이의 옆모습이 귀여워 슬며시 웃음이 났다. 이윽고 포장된 순대를 받아 든 엄마는 아이 손을 잡고 사라졌다.
나도 순대를 포장한 뒤 맥주를 한 캔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티브이에 유튜브를 연결해서 영상을 보면서 먹을 텐데, 오늘은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스티로폼 뚜껑에 소금을 대충 쏟은 뒤 수저도 가져오지 않고 손으로 순대를 집어 찍어먹기 시작했다. 허파 한 입, 맥주 한 모금. 간 한 입, 맥주 한 모금.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게 가장 위험하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외로워도 너무 외로웠고 처량해도 너무 처량했다. 고된 한 주의 끝에 나를 기다리는 것이 아무도 없는 집이 아닌 가정이길 바랐다. 내 반려자가, 아이가, 가족이 나를 맞이해 주는 환경을 꿈꾸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큰 사치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평생 혼자인 걸까. 느릿한 두려움이 올라왔다. 이런 종류의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무거워져 드러눕게 된다.
잘 살기 위해 노력했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놀기도 최선을 다해 놀았다.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었고 여행도 많이 다녔다. 남들이 말하는 좋은 삶을 꾸려가기 위해 분투했다는 뜻이다. 애석하게도, 결과는 처량하다. 사랑하는 연인 하나 없고 철저히 혼자라고 느낀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모르겠고 마음이 괴로워 온 세상이 시끌시끌하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어도 외로운데 혼자 있으면 다섯 배로 외롭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망은 전혀 포기가 안되고, 그저 마음을 꾹꾹 누른 채로 매일 실망하며 살아간다.
사랑하고 싶다. 사랑하는 이가 금요일 저녁마다 나를 기다려주었으면 좋겠다.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삶의 그 어떤 성취보다도 가장 어렵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맥주 한 캔을 다 비웠다. 역시나 한 캔은 조금 부족해 맥주를 더 사러 편의점에 가며 아버지를 생각했다. 거의 매일 소주를 한 병씩 드시던 아버지. 혹시 나와 같은 이유로 집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셨던 것일까. 말하지 못한 마음이, 감정이, 생각이, 모두 엉켜서 목구멍에 걸려서, 너무나 철저히 혼자라 술을 마신다. 우선 지금은 내가 혼자인 것이 별일 아니라고 느껴질 때까지 맥주를 들이켜야겠다. 완벽히 혼자인 나를 까마득히 잊고, 깊은 잠에 빠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