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빛을 그리다.

19장. 돌벽이 빛에게 길을 열다. 샤르트르 대성당

by김현준

겨울날, 빛으로 들어간 기억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였다. 나는 성당에 들어갔다.

겨울 햇살이 유리창을 통과하고 있었다. 붉고 푸른빛이 바닥에 내려앉고, 벽과 기둥을 물들였다.

평범했던 공간이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날 나는 한참 동안 그 빛을 바라보았다.

바깥은 차가운 겨울이었다. 그런데 유리창을 통과한 빛은 따뜻한 봄날의 색처럼 느껴졌다.

밖은 겨울이었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은 다른 계절이었다.

그때는 그 빛이 왜 그렇게 아름다웠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곳을 떠난 뒤에도 유리창을 통과하던 햇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한참 후에야 그 아름다운 유리창을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색유리를 이용한 장식은 고대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는 성당의 거대한 창문에 성경의 인물과 이야기를 표현하면서 독특한 미술로 발전했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이다.

노트르담 드 샤르트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Chartres)
주소: 16 Cloître Notre-Dame, 28000 Chartres, 프랑스 샤르트르(Chartres) 시내
위치: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90km 떨어진 도시
가는 법: 파리 몽파르나스역에서 기차로 약 1시간,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나는 노트북을 열었다.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800년 전, 이 성당에 들어섰던 사람들도 나처럼 다른 세상에 들어왔다고 느꼈을까?

그들에게는 신앙의 공간이었겠지만, 어린 시절 내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의 공간이었다.

어쩌면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빛을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


마우스를 클릭해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샤르트르로 향했다.

넓은 평야 위로 거대한 성당이 솟아 있다. 하늘을 향한 두 첨탑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상하다.

두 첨탑의 모양이 서로 다르다.


서로 다른 두 첨탑

정면에서 바라보는 오른쪽 첨탑은 단순하고 날렵하다.

반면 왼쪽 첨탑은 복잡하고 화려한 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앞서 시나이 수도원에서 보았던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를 떠올렸다.

그 그림에서도 예수의 얼굴은 좌우가 서로 다른 인상을 주었다.

혹시 샤르트르의 첨탑에도 특별한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일까?

그러나 두 첨탑이 서로 다른 이유는 역사 속에 있었다. 서로 다른 시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오른쪽의 남쪽 첨탑은 1160년경 완성되었다.

로마네스크에서 초기 고딕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건축물로, 절제된 장식과 곧게 뻗은 형태가 특징이다.


반면 왼쪽의 북쪽 첨탑은 1506년 낙뢰로 기존 첨탑이 파괴된 뒤 새롭게 세워졌다.

1513년에 완성된 첨탑에는 불꽃처럼 복잡하고 화려한 후기 고딕, 플랑부아양 양식이 반영되었다. ¹

두 첨탑 사이에는 약 350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hartres_cathedral_(West_fa%C3%A7ade).jpg?utm_source=chatgpt.com

처음에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역사를 알고 나니 오히려 자연스럽게 보였다.


완벽하게 똑같은 두 첨탑이었다면 나는 이 성당을 이렇게 오래 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샤르트르 대성당은 자신의 긴 역사를 감추지 않고 있었다.


무너지고 다시 세워진 성당

샤르트르 대성당의 역사는 약 1,6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곳은 프랑스가 아니라 로마 제국의 갈리아 지역이었다.

기독교가 확산하던 4세기 무렵, 샤르트르에도 초기 성당이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다만 최초 건물의 정확한 건립 시기와 모습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후 로마 제국의 서방 통치가 무너지고 여러 왕국이 등장했다.

전쟁과 침입, 화재가 반복되면서 성당은 여러 차례 파괴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같은 장소에 다시 성당을 세웠다.

1020년에는 큰 화재가 발생했다. 풀베르 주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새로운 성당 건설을 추진했고, 그때 만들어진 거대한 지하 성당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12세기에는 서쪽 정면과 조각으로 장식된 왕의 문, 첨탑 등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²

그렇게 샤르트르는 여러 시대의 흔적을 품게 되었다.

그런데 1194년 6월 10일, 또 한 번의 대화재가 발생했다.

불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불길은 지붕과 건물의 상당 부분을 휩쓸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기도하던 성당이 크게 파괴되었다.

1194년 화재에서도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서쪽 정면과 남쪽 첨탑, 북쪽 탑의 하부가 살아남았다. 11세기의 지하 성당도 불길을 피했다. ³

그리고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건 하나가 남았다.


성모 마리아가 사용했던 천으로 여겨지던 성유물이었다.

당시 샤르트르는 그 성유물을 보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오는 순례자들로 이름난 도시였다.

화재 속에서도 성유물이 살아남자 성직자들은 이를 특별한 신앙적 징표로 받아들였다. ¹

오늘날 우리는 그 천이 실제로 성모 마리아가 사용했던 물건인지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이 그 물건에 부여했던 의미는 분명했다.


나는 불타버린 성당 앞에 서 있었을 사람들을 상상해 보았다.


누군가는 절망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남아 있는 벽을 바라보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다시 건물을 세우자고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곳에서 계속 성당을 세웠을까?

여러 차례 파괴되었다면 다른 장소로 옮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같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오랫동안 사람들이 찾아와 기도하고,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모았던 곳.

그곳은 단순히 돌로 만든 건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재건을 선택했다.

주교와 성직자들은 수입을 내놓았고, 귀족과 여러 후원자가 기부에 참여했다.

석공과 목수, 유리 장인들은 다시 공사 현장으로 모였다.

그들은 옛 건물을 그대로 복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당시 발전하고 있던 고딕 건축 기술을 활용해 이전보다 높고 밝은 성당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 선택이 놀라웠다.

불길은 그들이 세운 건물을 무너뜨렸지만,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돌이 빛에게 길을 열다.

나는 사진을 바꾸어 성당 내부로 들어간다.

높은기둥이 천장을 향해 뻗어 있다. 기둥에서 올라온 돌의 선들이 위에서 서로 만나고, 천장에는 커다란 곡선이 펼쳐진다.

화면으로 바라보는 공간인데도 나도 모르게 고개가 올라간다.


앞서 오툉 대성당에서 보았던 로마네스크 건축과는 사뭇 다르다.

로마네스크 성당은 두꺼운 돌벽과 둥근 아치가 특징이었다.

반면 샤르트르는 높은 천장과 넓은 창문을 갖추고 있다.


중세 장인들은 무거운 돌을 어떻게 이렇게 높이 올렸을까?

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성당의 측면 사진을 검색했다.

높은 벽에서 바깥쪽 지지대로 돌로 만든 아치가 길게 뻗어 있었다.

마치 거대한 팔이 성당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공중부벽.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라고 부르는 구조다.

높은 돌 천장과 아치는 건물의 벽을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힘을 만든다.

공중부벽은 그 힘을 외부 지지대로 전달해 건물이 안정적으로 서 있도록 돕는다.

실내의 뾰족아치와 리브 볼트 역시 천장의 형태를 만들고 하중을 지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기술들이 샤르트르에서 처음 발명된 것은 아니다.

앞선 건축가들이 발전시켜 온 기술을 이곳에서 효과적으로 결합한 것이다. ³

그 결과 벽에 더 큰 창문을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이 흥미로웠다.

중세 장인들은 돌의 무게를 지탱하는 방법을 바꾸었다.

그런데 그 기술이 만들어 낸 결과는 건물의 높이만이 아니었다.

벽에 더 많은 유리를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무겁고 단단한 돌을 다루는 기술이 오히려 빛을 받아들이는 공간을 넓힌 것이다.

돌이 물러난 자리로 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장인들은 그 빛에 색을 입혔다.

아름다움은 때때로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기술을 잊게 한다.

그러나 샤르트르에서는 기술과 아름다움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불길에서 살아남은 푸른 성모

햇살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다. 푸른빛과 붉은빛이 서로 어우러진다.

나는 그중 한 유리창 앞에서 시선을 멈춘다.

〈아름다운 유리창의 성모〉.

프랑스어로 '노트르담 드 라 벨 베리에르(Notre-Dame de la Belle Verrière)'라고 부르는 작품이다.

성모 마리아가 옥좌에 앉아 있다. 무릎에는 어린 예수가 자리하고 있다.

성모는 짙은 푸른 옷을 입고 있으며, 두 사람의 머리 뒤에는 후광이 그려져 있다.

성모와 어린 예수는 신성한 존재의 위엄을 드러낸다.

그런데 나는 무엇보다 푸른색에 시선을 빼앗긴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3ANotre-Dame_de_la_Belle_Verri%C3%A8re.jpg?utm_source=chatgpt.com

흔히 '샤르트르 블루'라고 부르는 색이다.


푸른색은 원래 차가운 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햇살을 받은 유리창의 푸른빛은 이상하게도 차갑지 않다.

고요하면서도 깊다.


시나이의 예수 이콘에서 보았던 금빛 후광이 떠오른다.

그곳에서는 황금빛으로 신성함을 표현했다면,

여기에서는 푸른 유리를 통과한 빛이 성모의 신성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특별한 역사가 숨어 있다.

성모와 어린 예수를 표현한 중심 부분은 12세기에 제작되었다. 1194년 화재 이전의 성당에 있던 유리화다.

그 그림은 살아남았고, 사람들은 새로운 고딕 성당의 창문에 다시 배치했다.

주변에는 13세기에 제작된 유리화가 더해졌다.⁴⁶

건물은 무너졌지만 그림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그림을 새로운 건물로 옮겼다.


누군가의 어머니가 바라보았던 성모를 자식이 다시 바라보고, 그다음 세대가 또 바라보았을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성모의 모습이 모두 12세기의 원형은 아니다.

1906년, 스테인드글라스 장인 고댕(Gaudin)은 복원 과정에서 성모의 머리 부분을 교체하고 옷의 주름을 다시 그렸다. 오늘날 성모의 얼굴이 살짝 기울어진 모습도 이 복원에서 비롯되었다.

원래 로마네스크 시대의 성모는 더욱 정면을 향한 엄숙한 모습이었을 것으로 설명된다. ⁴


12세기의 장인, 13세기의 유리화 제작자, 20세기의 복원가.

서로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하나의 작품에 자신의 시간을 남겼다.

우리는 한 장의 유리화를 바라보지만, 그 안에는 여러 시대의 흔적이 함께 남아 있었다.


유리창 속의 사람들

나는 다른 유리창으로 시선을 옮긴다.

작은 원과 네 잎 모양의 틀 안에 여러 장면이 이어진다.

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난다. 그는 상처를 입고 길가에 쓰러진다.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그를 돕지 않는다. 그러다 한 사마리아인이 멈춰 그를 돌본다.

성경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다.

중세 장인들은 이 이야기를 여러 장면으로 나누어 유리창에 담았다.


그런데 창문의 아래쪽에서 뜻밖의 인물들을 발견했다.

제화공들이다.

어떤 사람은 가죽을 다루고, 어떤 사람은 신발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또 다른 장면에는 여러 제화공이 유리창을 바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⁵

성모와 성인들의 모습으로 가득한 공간에 평범한 사람들의 노동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왕이나 귀족이 아닌,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루하루 신발을 만들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기술을 더 잘 익히려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중세의 직업과 슬롯제도는 오늘날과 달랐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평범한 사람들은 언제부터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을까?


중세 도시에서는 상인과 장인들이 중요한 경제적 역할을 했고, 여러 직업 집단은 종교기관과 관계를 맺었다.

다만 유리창에 직업인이 등장한다고 해서 해당 직업 집단이 모두 직접 제작비를 부담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제화공의 모습은 신성한 이야기를 담은 공간에 평범한 인간의 노동도 함께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다시 신발을 만드는 손을 바라본다. 그들이 만들었던 신발은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신발을 만들던 사람들의 모습은 유리창에 남아 있다.

800년의 시간을 건너, 나는 그들의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일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기억되기를 바랐을까?

나는 문득 우리가 오늘 하는 일도 언젠가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빛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세상.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샤르트르 대성당의 중앙 통로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높은기둥과 뾰족아치가 천장을 받치고 있다.

창문에는 성모와 성인들, 도시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위로 햇살이 들어온다.


하기아 소피아에서는 거대한 돔과 황금 모자이크를 보았다.

시나이 수도원에서는 예수의 얼굴 뒤에 그려진 후광을 만났다.

오툉 대성당에서는 인간의 운명과 신의 심판이 돌에 새겨져 있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빛을 신성함과 연결해 왔다.

하기아 소피아의 건축가들도 돔과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공간을 설계했다.

샤르트르의 장인들은 그 오랜 시도를 또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높은 천장과 공중부벽,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를 결합해 빛이 성당 내부를 물들이도록 했다.

돌이 구조를 만들고, 유리가 이야기를 담고, 빛이 그 그림을 완성했다.


800년 전에도 햇살은 이 유리를 통과했을 것이다.

그때 이곳에 서 있던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누군가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먼 길을 떠난 사람의 무사함을 빌었을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빛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 마음을 모두 알 수는 없다.

다만 아름다운 빛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는 마음만큼은 비슷했을 것이다.


다시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가 떠오른다.

나는 그때 무엇을 빌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유리창을 바라보았을까?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유리창을 통과하던 빛과 그 안에 서 있던 나의 모습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밖은 겨울이었지만, 내가 서 있던 곳은 다른 계절이었다.

내가 기억한 것은 유리창의 색만이 아니었다.
빛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세상이었다.


성당의 사진을 닫으려는 순간, 또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여러 번 모습을 바꾼 건물은 여전히 같은 이름이었다.


테세우스의 배, 무엇이 같아야 같은 존재일까?

나는 다시 샤르트르 대성당의 두 첨탑을 바라본다.

4세기 무렵부터 이어졌다고 전해지는 성당의 역사는 여러 차례의 화재와 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11세기의 로마네스크 지하 성당, 12세기의 서쪽 정면과 남쪽 첨탑,
13세기의 고딕 건축, 16세기의 북쪽 첨탑이 한 장소에 남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건물을 여전히 샤르트르 대성당이라고 부른다.

나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적 질문 하나를 떠올렸다.

테세우스의 배다.

아테네 사람들은 영웅 테세우스가 탔던 배를 오랫동안 보존했다.

배가 낡으면 널빤지를 하나씩 새것으로 바꾸었다.

시간이 흘러 오래된 널빤지가 모두 교체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 배는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일까? 아니면 새로운 배가 된 것일까? ⁶


나는 다시 샤르트르를 바라본다.

테세우스의 배는 부품을 교체한 사례이고, 샤르트르는 건물이 무너지고 재건된 사례다.

완전히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둘은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남아 있어야 같은 존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재료일까, 장소일까, 아니면 이어져 온 역사와 기억일까?


이 질문을 AI 시대로 가져와 본다.

먼 미래에 인간의 기억을 디지털로 복제해 휴머노이드에 옮길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휴머노이드는 내가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에 보았던 푸른빛까지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경험을 하며 새로운 기억을 쌓아 갈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여전히 나일까? 아니면 나의 기억에서 출발한 새로운 존재일까?

기억을 복제한다고 해서 한 사람의 의식과 삶이 그대로 이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건물의 동일성과 인간의 동일성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푸른 성모를 바라본다.

12세기에 제작된 유리화는 13세기의 성당에 옮겨졌고, 1906년에는 머리 부분이 교체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작품을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나 역시 어린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다. 몸도 변했고, 생각도 바뀌었다. 잊어버린 기억도 많다.

그런데도 나는 그 겨울날 유리창 앞에 서 있던 아이를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가 하나의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변하지 않는 모습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도 이어져 온 시간인지도 모른다.

1. Cathédrale de Chartres. “The Cathedral.”

https://www.cathedrale-chartres.org/en/visite/decouvrir/la-cathedrale/?utm_source=chatgpt.com

남쪽 첨탑은 1160년경 완성되었고, 북쪽 첨탑은 1506년 낙뢰로 기존 첨탑이 소실된 후 1513년 후기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2. Cathédrale de Chartres. “Les grandes dates.”

https://www.cathedrale-chartres.org/cathedrale/monument/lhistoire/les-grandes-dates/?utm_source=chatgpt.com

샤르트르 성당의 건축 연혁과 1020년 화재, 12세기 왕의 문 및 남쪽 첨탑의 건설 시기를 확인하는 자료다. 4세기 최초 성당의 정확한 연대는 확정되지 않아 본문에서 추정으로 표현했다.

1194년 화재 당시 성모의 베일로 알려진 성유물이 지하 공간에서 살아남았다. 성당의 기적 기록에는 주교와 참슬롯 성직자들이 재건을 위해 3년간의 수입을 제공했다는 전승이 기록되어 있다.

3. Cathédrale de Chartres. “The 13th Century Cathedral.” 샤르트르 대성당 공식 건축 해설.

https://www.cathedrale-chartres.org/en/cathedrale/monument/architecture/the-13th-century-cathedral/?utm_source=chatgpt.com

1194년 화재로 로마네스크 대성당이 크게 파괴되었으나 서쪽 정면과 남쪽 탑, 북쪽 탑의 일부, 11세기 지하 성당이 보존되었다. 13세기 샤르트르 대성당의 건축 구조와 공중부벽, 1194년 이후 재건 공사의 특징을 설명하는 공식 자료다.

4. Chartres sanctuaire du Monde. “Chronologie des vitraux de la cathédrale de Chartres.”

https://www.chartres-csm.org/fr/la-cathedrale/vitraux-de-cathedrale-de-chartres/chronologie/?utm_source=chatgpt.com

12세기 중반 제작된 〈아름다운 유리창의 성모〉는 1194년 화재에서 살아남은 로마네스크 유리화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이다. 화재 이후 새로운 고딕 성당에 재배치되었다.

1906년 유리화 장인 고댕의 복원으로 성모의 머리 부분이 교체되고 옷의 주름이 다시 표현되었다. 현재의 얼굴이 약간 기울어진 모습도 이 복원과 관련된다는 설명이 명시되어 있다.

5. Harris, Anne F. “Stained Glass Window as Thing: Heidegger, the Shoemaker Panels, and the Commercial and Spiritual Economies of Chartres Cathedral in the Thirteenth Century.” Different Visions: New Perspectives on Medieval Art 1 (2008).

DOI: 10.61302/MGAM3152.

https://differentvisions.org/stained-glass-window-as-thing/?utm_source=chatgpt.com

13세기 샤르트르 대성당 〈선한 사마리아인〉 유리창의 제화공 장면을 분석하며, 중세의 노동과 신앙, 후원 및 도시경제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이다.

6. Plutarch. Life of Theseus, 23.1. In Plutarch's Lives, translated by Bernadotte Perrin.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14.

아테네인들이 테세우스의 배에서 낡은 목재를 교체하면서도 동일한 배로 볼 수 있는지를 논의했다는 기록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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