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 1화. 정거장처럼 들렀던 그날

불임의 시작

by동녀

30살에 결혼하고, 아이를 품에 안기까지 꼬박 6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가볍게 발을 들였던 병원 방문이, 내 인생에서 가장 깊고 어두운 터널의 입구가 될 줄은 그땐 정말 몰랐다.

처음엔 그저 잠시 확인만 하고 지나가려던, 평범한 정거장일 뿐이었다.


이상하리만치 어두운 표정들

유명하다는 불임 클리닉을 찾았던 건 정말 가벼운 해프닝 같은 마음이었다.

주변에서 하도 말을 얹길래 "체크나 한번 해볼까?" 했던 것이고, 솔직히 말하면 ‘정상’이라는 깔끔한 판정을 받아 내 몸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곳은 내가 알던 일반 병원과 달랐다.

널찍한 대기실은 고급스러운 거실처럼 꾸며져 있었고, 부드러운 조명 아래 따뜻한 웰컴티까지 내어주었다.

꽤나 아늑하고 다정하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아늑하고 부드러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여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무거웠다.

그 누구도 서로의 눈을 맞추지 않은 채, 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깊은 침묵 속에 갇혀 있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침묵의 의미를 몰랐다.

내 몸에 어떠한 비극이 숨어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허리가 꺾인 채 걸었던 길

가볍게 시작된 문진과 기초 검사.

하지만 이상하게도 진행이 지체되기 시작하더니, 받아야 할 검사의 가짓수가 하나둘 늘어났다.

그 순간부터 몸이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서늘한 불안감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정확한 검사 이름조차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날의 고통이 너무나 잔인했기에 내 뇌가 일부러 지워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검사를 마치고 병원 문을 나설 때, 나는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허리를 펴지 못한 채 구부정한 성인 남자의 그림자처럼 터덜터덜 걸었다.

찌르는 듯한 아랫배의 통증.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일 자체가 속으로 비명을 삼켜내는 고문이었다.


그때, 길을 지나가던 낯선 차 한 대가 내 옆에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차창이 내려가더니 운전자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저기... 너무 힘들어 보이시는데, 태워다 드릴까요?"

길 가던 모르는 타인이 보기에도 얼마나 처참하고 안쓰러웠으면 선뜻 차를 태워주겠다고 했을까.


하지만 내 곁에 서 있던 남편은 끝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정말, 단 한마디의 다정한 물음조차 건네지 않았다.

나는 괜찮다고 고개를 거듭 저으며 다시 핏기 없는 걸음을 옮겼다.

타인의 호의를 거절할수록 허리는 더 굽어졌고,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접혀 들어갔다.


그날 남편 역시 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표준 테두리 안’. 턱걸이로 겨우 통과한 주제에 그는 마치 거대한 승리라도 거머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정작 옆에서 아파서 헐떡이는 아내의 고통에는 그 어떤 아량도, 한 뼘의 공감도 내어주지 않았다.


툭— 떨어진 진주 목걸이

다음 날, 병원에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보호자님, 추가 검사를 받으러 오셔야 합니다."

마치 시험에 낙제한 불합격자가 된 기분으로,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듯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다소 아플 수 있습니다. 당황스러우실 수 있으니 마음을 편안히 드세요."


의사의 친절하고 정돈된 설명이 이어졌지만, 정작 내 몸을 뚫고 들어온 진짜 아픔은 말보다 훨씬 더 무자비하고 생경했다.

몸속 깊은 곳으로 차가운 물체가 파고드는 느낌.

그것은 단순히 신체적인 통증이 아니었다.

나의 존엄과 마지막 자존심을 난도질하는 서늘한 생채기였다.

구토가 솟구쳤고, 온몸에 차가운 식은땀이 흘렀으며 가슴이 미친 듯이 떨려왔다.


검사가 끝나고 침대에서 내려왔을 때, 나는 영혼까지 기진맥진해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입술을 깨물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수신기 너머로 돌아온 그의 목소리는 늘 그랬듯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창가 너머로는 따스한 햇살이 비쳐 들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에 보이는 병원 전체는 잿빛 회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내 귀에 박힌 남편의 냉랭한 한마디가 목구멍을 지나 심장 언저리에 닿을 때,

그 화려했던 병원 대기실엔 빛이 아니라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툭—

진주 목걸이가 끊어져 바닥으로 알알이 흩어져 내리듯,

내 마음도 그렇게 깨어져 바닥으로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예감했다.

내 삶에 비극이라는 긴 어둠이, 드디어 찾아왔음을.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