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함이 있는 여자라는 이름표
검사를 마친 지 며칠이 흘렀지만, 내 몸은 여전히 회복을 알리지 않았다.
미세한 통증은 일상 속에 조용히 숨어 있었고, 마음은 더욱 깊은 피로에 잠겨 있었다.
가라앉지 않는 무기력과 슬픔은 마치 계절을 잃은 먹구름처럼, 내 하루하루를 짙게 덮었다.
나는 그저 누군가의 아내이자, '아이를 갖고 싶은 여자'였을 뿐인데, 어느새 ‘무언가 결함이 있는 여자’라는 낯선 이름표가 내게 붙어 있었다.
이 작은 호칭의 차이는 단지 단어 하나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 전체에 거대한 균열을 내는 문장처럼, 나의 존재 의미와 미래의 희망까지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집안은 고요했다.
남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한 일상을 이어갔다.
같은 검사를 받았던 그는 이미 그 기억에서 멀찍이 벗어난 듯했고, 나는 매일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나의 의미를 다시 묻고 또 헤매야 했다.
말을 꺼내려다 삼키는 일이 잦아졌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이제 나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연기가 되어 있었다.
내 안의 고통이 끝내 닿을 수 없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 깊은 침묵은 나를 점점 더 아득한 내면으로 가라앉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무심하게 말을 꺼냈다.
"다음 주에 여행 갈까? 기분 전환 좀 하게."
그 말은 어딘지 낯설고 멀게 느껴졌다.
그의 목소리엔 걱정보다는 습관 같은 가벼움이 실려 있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내게 필요했던 것은 잠깐의 휴식이 아니라, 내 고통을 함께 느껴주는 깊은 이해였지만 그는 그런 감정의 언어를 알지 못했다.
그의 눈빛은 언제나 옅은 수면 같아서, 그 아래 잠긴 내 마음의 심연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저 ‘기분 전환’이라는 표면적인 위로만이 그의 시야에 걸려 있을 뿐이었다.
여행지에서도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도 자꾸만 병원의 서늘한 잔상이 떠올랐다.
햇살 아래에서도 내 시선은 여전히 하얀 시트, 조용한 복도, 차가운 기계음 속에 멍하니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나를 ‘환자’로 바라보던 냉정한 시선들.
"괜찮습니다. 아내분만 조금 더 고생하시면 됩니다."
그 말엔 인간적인 온기나 공감이 단 한 조각도 없었다.
아무도 나를 온전한 ‘나’로서 바라주지 않았다.
나는 단지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몸’이었고, 진단받아야 할 ‘대상’에 불과했다.
자아는 점점 희미해지고, 그저 임신이라는 목적을 위한 도구처럼 느껴지는 잔인한 현실 앞에 나를 가두어야 했다.
남편은 밝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SNS에 올릴 해시태그를 즐겁게 읊조리면서.
#힐링 #자연 #커플여행
그의 환한 표정은 나의 어두운 그림자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사진 속 나는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나조차 낯설었다.
입꼬리는 올려붙였지만 눈빛은 비어 있었고, 그 거짓된 얼굴 뒤에서 나는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남들에게 행복해 보이는 그 사진이, 오히려 내 안의 비명을 더욱 크게 울려 퍼지게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나는 결국 다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더. 마지막으로.
어쩌면 그것은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처절한 발버둥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그 진료실에 ‘이전의 나’를 영원히 두고 나오게 될 줄은.
그 문턱을 넘는 순간, 나는 과거의 나와 완전히 단절되었다.
병원을 나설 때, 나는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껍데기만 남은 채, 낯선 어둠의 입구를 향해 천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