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탈 거면, 씽씽

본격적으로 가을 타는 중

by홍가




나이가 드니 좋은 점 하나.
마음이 크게 출렁이지 않는다.


물이 흐르는 대로
별이 뜨고 지는 대로

그렇게 살게 된다.


근데 가을을 타고 있다.

느닷없이.

지독하게.


계절을 저만치 앞서 나가

낙엽이 수북이 쌓인 축축한 빗속 가을을

몽유병 환자가 되어 정처 없이 걷고 있다.


차라리 깊은 굴속으로 들어가
겨울잠이나 자든가
바카라장만 넘기고 싶다.


세상의 냄새를 너무 많이 맡아

코끝이 지친 개처럼
감각들이 자꾸 새어 나간다.

생각은 겹겹이 밀려오는데
저장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다 휘발된다.


마음에 걸린 돌멩이 하나 없고

몸 어디 힘든 곳도 없다.

들여다봐도 별일 없는 하루,
밥은 꼬박꼬박 달고, 이불 속도 포근하다.


근데

가을 탄다.


매일 신던 운동화는 현관에 그대 로고
일본어 교실 내 자리는 두 주째 비어 있다.


치열하게 사는 거 좋아하는데

왜 이러나?


굴속에 숨는다고 가을이 비켜 가 줄까.

문을 닫아걸어도 낙엽은 문틈으로 기어든다.


스키를 타듯, 썰매를 타듯 씽씽,

되는 대로

이 가을을 우선 올라타 보자.


이 나이에도 성장통이 오는구나.
아직 더 클 데가 남았나 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