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 차는 94년식소나타입니다

오래된 차에는 오래된 사랑이 산다

by최물결

봄은 늘 어딘가 어설프다.

따뜻해진 줄 알았다가도, 금세 바람이 식는다.

지난주에는 등에 땀범벅이 될 정도로 더웠는데 이번 주에는 비온 뒤 꽃샘추위가 찾아왔단다.

덜컹덜컹.


아빠의 차를 탈 때면 승차감이 몸으로 먼저 전해진다. 친구들 차에서 느끼던 묵직함과는 다르다.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는 있는데, 어딘가 헐거운 느낌이 남는다.

이모는 엄마가 돌아가신 뒤, 보험금으로 차부터 바꾸라고 했다.

“너희 아빠 차만 타면 머리가 지끈거려.”

그 말을 들은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쓴소리를 삼키며 이모를 집까지 태워줬다. 우리집까지 찾아온 사람을 혼자 보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도 이모는 아빠가 들으라는 듯이 구두쇠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화가 나면서도, 이상하게 부정하지 못했다.

아빠의 차가, 우리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를 결정하는 것 같았다.


아빠 차는 94년도 식 소나타였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껴지는 게 있었다. 뒤처진다는 느낌. 오래됐다는 사실이 아니라, 남들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같은 것.

요즘은 오래된 차를 다시 손봐 타는 것이 유행이라는데, 아빠의 시간은 아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창밖을 보며 차 탓을 했다. 에어컨이 시원하지 않은 것도, 다른 차들이 앞으로 끼어드는 것도,

신호가 바뀌기 전에 출발하지 못하는 것도. 모든 것이 이 차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모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구질구질하다는 말.


얼마 전부터 우리 부녀는 새 차를 알아보고 있다.

아빠는 카탈로그를 몇 장씩 받아와 식탁 위에 펼쳐놓았다. 나는 그걸 넘기며, 내가 운전대를 잡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면허를 딴 지 오래됐으나 운전경력이 없는 장롱면허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룸미러로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잠시 시선을 피하려는 순간, 아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차, 그래도 아빠가 관리 잘했어. 우리 이 차 타고 강원도도 다녀왔잖아.”

그 말이 차 안을 천천히 채운다.


생각해 보면 이 차에는 우리가 많이 타 있었다. 엄마와, 아빠와, 그리고 강아지까지.

여행을 가던 날들, 돌아오던 밤, 별것 아닌 대화들.

주차를 할 때면 엄마가 조수석에서 먼저 내려 “오라이, 오라이”를 외치며 손짓하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아빠는 지금도 여전히 몸을 틀어 뒤돌아 옛날 방식으로 후진을 한다.


카메라도, 센서도 없이 고요하고 썰렁한 차…….

지인들은 이 차를 보고 깨끗하게 관리된 올드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기 위해 사진을 찍은 게 아니었는데. 이 차는 오래된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그대로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 새 차 사면 이 차는 어떻게 해?”

“폐차해야지.”

짧은 대답이었다.

집 앞에 도착해 차를 세운다.


다른 차들 사이에서 아빠의 차가 유독 또렷하게 보였다.

반듯하게 멈춰 선 차 뒤로, 엄마가 손짓하던 장면이 겹쳐 보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 엄마는 없다.

문득, 이 오래된 차가 아빠의 시간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 되면, 오래된 것들이 다시 드러난다.

감추고 있던 것들이 햇빛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이 차는 낡은 것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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