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것과 사라지는 것들 사이
봄에는 머리카락이 잘 자란다는데 나는 왜 빠질까
머리를 감았다. 긴 머리카락일수록 더 쉽게 빠진다. 샴푸를 묻혀 거품을 내고,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로 천천히 헹궈낸다. 그때마다 머리카락이 몇 가닥씩 손에 감긴다. 계절이 바뀌면 사람도 털갈이를 하듯 머리가 빠진다는 말을 떠올렸다.
수챗구멍에는 이미 빠진 머리카락들이 엉켜 있었다. 손으로 모아 한 번에 걷어내자 생각보다 많은 양이 손안에 잡혔다. 잠시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그대로 버린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샤워를 마치고 나와 엄마의 휴대폰을 켠다. 이제 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광고나 스팸 문자뿐이다. 더 이상 새로 남겨지는 것은 없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휴대폰을 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남아 있는 것들을 확인하듯, 끝난 시간을 더듬듯, 화면을 천천히 넘겨본다.
사진이 생각보다 많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들여다 보지 못한 시간이 그 안에는 남아 있었다. 꽃 앞에서, 건물 앞에서, 동료들 사이에서 엄마는 늘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맑게 웃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표정이었고, 그래서 더 오래 보게 되었다. 사진 속의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사진을 뒤로 넘길수록 엄마의 얼굴이 조금씩 달라진다. 통통했던 볼살이 서서히 꺼지고, 어깨를 넘기던 머리카락은 점점 짧아지다 민머리를 보였다. 마지막쯤에는 꽃 장식이 달린 챙모자를 쓰고 방긋 웃음을 띄었다. 빠진 머리를 가리기 위해,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 별다른 설명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엄마는 웃고 있었다. 정확히는, 웃으려는 얼굴이었다. 눈을 크게 뜬 채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지만, 그 표정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괜찮다고, 다시 잘 지내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하던 엄마의 밝은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엄마의 부고 이후, 나는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자라는 만큼 시간이 쌓인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잘라내지 않으면, 무언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어깨에 닿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길 때마다, 엄마를 생각했던 시간들이 손끝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의 마지막 사진은 셀카였다. 누가 찍어준 것이 아니라, 엄마가 직접 남긴 얼굴. 꽃 장식이 달린 모자를 쓴 채,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그 표정은 무엇을 감추기 위해서라기보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계절처럼 보였다. 지금 겪고있는 힘든 시간들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드라이기를 켜자 젖은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흩어진다. 몇 가닥은 그대로 떨어져 바닥에 남는다. 나는 그것을 치우지 않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빠진 자리에는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날 것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떨어지는 순간이 눈에 밟혀 오래동안 눈동자에 담았다.
봄이 되면, 나는 엄마의 사진을 떠올린다. 머리카락이 빠지던 계절, 모자를 쓰고 웃던 얼굴, 괜찮다고 말하던 낭랑하고 밝은 표정들을 말이다.
나는 여전히 매일 머리를 감고, 빠진 머리카락을 흘려보낸다.
언제 그랬냐는 듯 거울 속에 비친 머리카락은 그 새 자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