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이 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비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출근하는 날이면 옷이 젖어서 찝찝한 데다 빨래도 잘 마르지 않는다.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건 또 어찌나 불편한지. 습한 온도는 덤이다. 지인 중 어떤 이는 비 오는 소리가 좋다고 감성적이다 낭만적이라고 말하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맑고 쾌청한 날 바람이 적당히 부는 걸 좋아하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카페 알바를 하게 되면서 은근히 비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핸드폰 기상예보를 들여다보며 한 번쯤 비가 와주길 기대하게 된다고 해야 할까.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은 특수매장이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비가 오면 전에 두 배 세배 왔던 손님도 반의 반으로 뚝 떨어진다.
사람도 많이 있을 필요가 없어 아르바이트생인 나는 나올 필요가 없다. 우천으로 야구경기가 취소되는 것처럼 비가 내리면 나가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런 마음이 이상했다. 장사가 안 되면 우울해야 하는 거 아닌가. 돈을 못 벌면 불안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매장 식구들은 비 예보가 뜨면 은근히 표정이 밝아진다.
“오늘은 좀 한가하려나”
“비 진탕 왔으면 좋겠네”
웃음 섞인 농담조로 말하지만 반은 진심이 섞여있다. 누군가는 비를 피해 뛰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참으로 이상한 풍경이다.
이곳은 해가 좋으면 사람이 몰리고, 주말이면 정신없이 바빠진다. 메뉴만 주면 되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서 손님들이 부르는 소리에 하나하나 응대해야 한다. 반복적으로 말하기가 귀찮아 목소리에 힘을 싣는데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즐거워할수록 우리는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쉬는 시간은 줄어들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진다. 그러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살기 위해 일하는 걸까, 일하기 위해 살아가는 걸까. 그래서 한 번씩 오는 휴식 같은 비가 반가울 뿐이다. 비가 오면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가고, 매장 안은 조금 조용해진다. 가끔 오는 사람들은 있지만 홀 안은 호수처럼 잔잔해진다.
비를 핑계 삼아 쉬는 날 뭘 할까를 떠올렸다. 밀린 집안일을 할까. 강아지랑 놀아줄까.
최근 나는 병원 가는 일이 많아져서 오전에 병원에 갔다가 오후에 일터에 가는 편이다. 함께 일하는 매니저님이 말하길 매일 아침 물 떠놓고 비오라고 기우제를 지낸다며 우스갯소리로 말한 적이 있었다.
비가 오는 오늘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쉬는 날이라 지나가는 시간들이 아쉬워해야 할게 수두룩 빽빽하다.
비를 핑계 삼아 쉬려는데 더 바빠진 셈이다. 뉴스에서는 최대 80mm가 온다는데 그래도 적당히 왔으면 좋겠다.
비 오는 날은 잠깐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 날씨를 핑계 삼아 겨우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비 예보를 슬쩍 확인한다. 누군가에게는 우울한 날씨겠지만 내겐 잠깐 숨을 돌릴 수 있는 하루일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