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늬밤 도전기
햇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올해 '보늬밤'을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이 밤을 정성스럽게 손질하고, 설탕에 조려 유리병에 담아두던 장면을 떠올렸다.
올해는 나도 그 기나긴 노동을 기꺼이 견뎌 겨울 내내 두고두고 꺼내 먹어보리라. 그리고 내 아이들의 입 속에 하나씩 쏙쏙 넣어주리라, 야심 찬 기대감을 품고 단단한 햇밤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의욕은 단 몇 개 만에 꺾이고 말았다. 물에 한참을 불렸는데도 겉껍질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고 단단했다. 꽉 잡고 밤에 상처 나지 않게 칼로 살살 벗겨냈다. 진짜 난관은 그다음부터였다.
밤을 둘러싼 얇은 속껍질, '보늬' 때문이다. 이름만큼은 참으로 사랑스러운데, 날것으로 씹으면 혀끝이 마비될 듯 떫고, 굵은 심지나 잔털을 벗겨내지 않으면 제 맛을 내지 못한다.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 베이킹소다를 넣고 몇 번이고 물을 갈아주며 삶고 헹구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지친 손가락으로 밤을 어루만지다 문득 어릴 적 풍경 하나가 생각났다.
어린 시절의 나는 밤을 혼자 까본 적이 없다. 그저 엄마 곁에 아기새처럼 붙어 앉아 있으면, 엄마는 삶은 밤을 칼끝이 닳도록 껍질을 벗겨 노랗게 잘 익은 밤알맹이만 내 입에 쏙쏙 넣어 주었다. 엄마 손에 비해 먹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기다리며 칭얼거리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단단하고 강한 껍질을 베어내기 위해 엄마의 손마디가 얼마나 굵어졌었는지. 떫고 거친 것은 혼자 견뎌내고, 자식에게는 오직 달콤한 부분만 내어주려 얼마나 많은 애를 써왔는지.
냄비 속에서 밤이 몽글몽글 끓어오르며 단 향을 풍겨왔다. 떫기만 했던 속껍질은 긴 시간 설탕과 함께 졸여지면서 비로소 보늬밤의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강하고 떫은 순간들도 시간이라는 불 위에 올리고 다정함이라는 설탕을 추가해 오래도록 졸여내면, 나중엔 나를 지탱하는 가장 깊은 맛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달콤한 냄새를 맡고 식탁 옆으로 다가온 아이들의 입에 정성껏 만든 보늬밤을 한 알씩 쏙 넣어주었다. 오물오물 씹던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십 년 전 엄마가 내게 주었던 그 달콤함이, 오늘은 내 손을 거쳐 다시 나의 아이들에게로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