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말빨에 깨갱

by바담풍



오후의 나른한 공기가 교실에 내려앉은 슬롯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분필을 내려놓으며 교탁을 톡톡 두드렸다.


“자, 오늘은 조금 다르게 해 보자. 교과서만 읽으면 지루하니까 찬반으로 나눠서 짧게 즉석 미니 토론을 해볼 거야.”

교실이 금세 술렁였다.


“오, 토론?”


“주제 뭔데요?”


아이들은 짝꿍과 눈을 맞추며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탰다. 수행평가나 지난 학기 수업에서 몇 차례 디베이트를 해본 터라 정식 경기처럼 빡빡한 형식은 아니어도 찬반으로 나뉘어 의견을 주고받는 데는 제법 익숙했다. 맨 뒷자리에 앉은 선미만 심드렁했다. 바카라상에 턱을 괸 채 통깁스를 한 다리를 까딱거렸다.


“토론은 무슨. 그냥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거지.”


선미에게 싸움은 단순했다. 세게 때리거나, 세게 밀어붙이거나. 배구도 그랬다. 공을 더 높이 띄우고, 더 세게 때리고, 끝까지 버티는 놈이 이겼다. 말에도 굳이 순서를 정하고 규칙을 붙여가며 싸운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싸울 거면 그냥 싸우면 되지. 뭔 룰까지 있어.’ 하며 툴툴거렸다.


선미가 하품을 삼키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려 할 때 선생님이 칠판에 흰 분필로 논제를 적었다.


「학교폭력 방관자도 처벌해야 한다」


선미의 시선이 멈췄다. 며칠 전 점심시간의 일이 불쑥 떠올랐다. 채린에게 맞으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다은, 그 둘을 빙 둘러싸고 구경하던 아이들. 누군가 선생님을 데려오기 전까지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선미 자신도 맨 뒤에 앉아 보고만 있었다.


학교폭력, 방관자, 처벌.


단어 하나하나가 묘하게 거슬렸다. ‘그럼 보고만 있던 애들도 잘못한 건가?’ 조금 전까지 떠들던 아이들도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선미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속삭였다.

‘저런 걸 왜 처벌해? 직접 때린 것도 아닌데.’

괜히 속이 까끌거렸다.

‘가만히 있는 것도 죄면 세상 사람 절반은 전과자겠다.’


토론은 지원자 몇 명이 앞에 나와 주장을 펼치고 나머지 아이들이 뒤에서 의견과 자료를 보태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찬성할 사람?”


손이 몇 개 올라갔다. 그중 가장 먼저 손을 든 것은 소영이었다. 소영은 세 명의 아이와 함께 교단 앞으로 나왔다.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한 얼굴이었다.


“그럼 반대쪽은?”


이번에는 교실이 조용했다. 아이들이 슬금슬금 서로 눈치를 봤다. 선생님의 시선이 교실을 한 바퀴 돌다가 맨 뒤에서 멈췄다.


“선미.”


“네?”


“네가 반대 한번 해봐라.”


선미는 얼굴을 찌푸렸다.


“제가요?”


귀찮았다. 아니, 귀찮아야 했다. 그런데 고개를 들자 찬성 측 맨 앞에 서 있는 소영과 눈이 딱 마주쳤다. 소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웃지도 않았다. 그냥 선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시선이 자꾸 신경 쓰였다. 선미는 슬쩍 자세를 고쳐 앉았다.

‘뭐야, 쟤는.’


소영과 눈이 마주치자, 선미는 며칠 전 통로에서 결국 다리를 비켜 줬던 일이 떠올랐다. 다은이 일에서도 소영은 본 걸 말했을 뿐인데, 선미만 괜히 성질낸 사람처럼 끝나버렸다. 그게 아직도 속에 걸렸다. 소영은 늘 차분한 얼굴로 자기 말이 맞다는 듯 굴었다.


‘아니, 왜 쟤랑 말만 하면 내가 이상한 애가 되냐고.’

이번에도 저렇게 나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토론이든 뭐든, 이번엔 제대로 붙어볼 작정이었다.


“좋아요.”


선미는 목발을 짚고 일어났다. 통깁스한 다리가 묵직하게 당겼지만, 소영 앞에서 망설이는 꼴을 보이기 싫었다. 어깨를 펴고 소영의 맞은편에 섰다.



선생님이 칠판을 탁탁 두드리며 토론의 규칙을 적었다.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킬 것.

정해진 형식을 따를 것.

주장은 반드시 근거를 가지고 말할 것.


칠판을 빤히 보던 선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쌤.”


“왜, 선미야?”


“근거가 뭐예요?”


선생님이 분필을 든 채 돌아봤다.


“네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도 ‘아, 그럴 수 있겠네’ 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받쳐주는 거야.”


“그냥 내 생각이면 되는 거 아니에요?”


“혼자 생각할 때는 그래도 되지. 그런데 토론에서는 상대를 설득해야 하잖아.”


선미는 아직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선생님이 칠판의 논제를 가리켰다.


“넌 반대쪽이니까 물어볼게. 왜 방관자를 처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그야,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을 수도 있잖아요. 괜히 나섰다가 자기도 맞을 수 있고.”


“좋아. 그게 근거야. 거기에 실제로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한 학생이 많다는 조사 결과나 사례까지 붙으면 근거가 더 탄탄해지지.”


선미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그게 근거예요?”


“그렇지. 네 말을 혼자 세워두는 게 아니라 뒤에서 받쳐주는 거야.”


선미는 잠시 칠판을 바라봤다.

주장, 근거.

조금 전까지도 뭔 소린가 싶던 단어가 갑자기 머릿속에 착 달라붙었다.


“아! 말에도 빽이 있어야 되는구나.”


교실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졌다.


“야, 그거 맞는 말인데!”


“근거가 빽이래.”


선생님도 피식 웃었다.


“뭐…… 표현은 좀 그렇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선미는 다시 칠판을 쳐다봤다. 말도 그냥 세게 내지른다고 되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뒤를 봐주는 놈이 있어야 했다. 선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래? 그럼 내 말에도 빽 좀 붙여보지 뭐.”


맞은편에 서 있던 소영이 그런 선미를 가만히 바라봤다.




토론이 어느 정도 무르익자 선생님이 반 전체를 둘러보며 말했다.


“좋아. 이번에는 선미랑 소영이가 교차질의 한번 해볼래?”


선미의 어깨가 움찔했다.

소영은 벌써 노트를 펴놓고 볼펜을 손에 쥔 채 뭔가를 적고 있었다. 저 태연한 얼굴을 보는 순간 선미의 속에서 오기가 왈칵 치밀었다. ‘잘됐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소영을 열두 번쯤 발라버린 뒤였다. 선미는 목발을 짚고 교탁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막상 소영과 마주 보고 서자 이상했다.


쿵! 쿵! 쿵!


심장이 갑자기 배구공처럼 튀기 시작했다. 고작 몇 분이었다. 그런데 30분도 아니고 세 시간은 될 것 같았다. 손바닥에는 축축하게 땀이 배었고, 평소에는 욕도 잘만 튀어나오던 혀가 오늘따라 입천장에 찰싹 들러붙은 것 같았다. 배구 시합을 앞두고도 이 정도로 떨린 적은 없었다.


선생님이 두 사람 사이에 서서 말했다.


“교차질의는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시간이야. 질문하는 사람은 짧고 정확하게, 답변하는 사람은 질문받은 내용에 답하면 됩니다. 그리고 예의 있게 서로 존댓말 쓰고. 토론은 싸움이 아닙니다.”


선미가 속으로 툴툴댔다. ‘싸우면서 뭔 존댓말이야.’


“토론은 자기주장만 하는 게 아니야.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듣는 것도 중요해. 알겠지?”


“네.”


소영이 먼저 대답했다.


선미도 입을 삐죽이며 따라 했다.


“네에.”


“시작.”


선미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말했다. 선공이었다.


“방관했다고 왜 처벌합니까? 지가…… 아니, 자기가 직접 때린 것도 아닌데요.”


교실 여기저기에서 킥킥 웃음이 새어 나왔다. 소영은 웃지 않았다.


“그럼 친구가 계속 맞고 있는 걸 눈앞에서 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요?”


“아니…… 무서우면 가만히 있을 수도 있잖아요.”


“무서워서 직접 말리지 못할 수는 있어요. 그러면 선생님에게 알리는 것도 못 하나요?”


“그…… 들키면…… 아니, 그러니까…….”


두 마디가 오가기도 전에 선미의 머릿속이 꼬이기 시작했다. 긴장만 하면 말을 더듬는 버릇은 여지없이 튀어나왔다. 소영은 침착하게 수위를 높여갔다.


“그럼 보복이 무서우면 피해자가 계속 맞고 있어도 아무 행동 안 해도 된다는 뜻인가요?”


선미는 점점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머릿속에 가득한데, 정작 입 밖으로 나갈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요. 자꾸…… 자꾸 그렇게…….”


분명하고 싶은 말은 있었다. 겁이 나서 꼼짝 못 한 애까지 가해자처럼 벌주는 건 억울하다는 말. 그런데 소영이 질문을 하나씩 던질 때마다 그 간단했던 생각이 자꾸 갈라졌다.


말리지 못한 것과 신고하지 않은 것은 같은가?

겁먹은 사람에게 어디까지 바카라임을 물어야 하나?

한 번 못 본 척한 것과 계속 못 본 척한 것은 다른가?


머릿속에 없던 질문들이 자꾸 튀어나왔다. 소영이 다시 물었다.


“그럼 선미 학생은 방관자가 어느 정도까지 바카라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뭐를…… 어느 정도요?”


“바카라임의 기준이요. 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서부터 잘못이라고 생각하세요?”


선미의 눈썹이 꿈틀 했다. 바카라임의 기준이라니. 그런 건 누가 알려 준 적도 없었다. 그 질문은 중학교 2학년인 선미에게 너무나 추상적이고 어려웠다.


“아니, 나는 그냥…… 안 때렸으면…….”


“직접 때리지만 않으면 아무 바카라임도 없다는 건가요?”


“아 씨…… 아니 그게……”


선미가 이를 악물었다.


“그게 아니라니까요.”


“그럼 어떻게 다른데요?”


또 막혔다. 선미는 입을 벌린 채 소영을 노려봤다. 말하고 싶었다. 분명 뭔가 할 말이 있었다. 그런데 그 ‘뭔가’가 어디 있는지 도무지 잡히질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수십 명이 한꺼번에 떠드는데, 정작 대표로 나가 말할 놈이 없는 꼴이었다.


‘아, 뭐라고 해야 되는데.’


소영은 기다렸다. 재촉하지도 않았고, 비웃지도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약 올랐다. 선미는 지금껏 ‘겁먹은 애까지 왜 벌을 줘?’라는 느낌만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소영은 그 느낌을 자꾸 잘게 쪼갰다.


겁이 났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바카라임이 없어지는가?

도와주지 못한 것과 신고조차 하지 않은 것은 같은가?

방관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는가?


선미는 괜히 입술을 삐죽였다. 좀 전까지만 해도 분명 자기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소영이 꼬치꼬치 묻기 시작하자 대답할수록 이상하게 자기 말이 꼬였다. ‘아, 씨. 뭐라고 해야 되지?’ 틀린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맞다고 설명할 수도 없었다. 소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또?’ 선미의 관자놀이가 씰룩거렸다.


“만약 선미 학생의 가장 친한 친구가 계속 맞고 있는데, 반 친구들이 전부 무서워서 모른 척한다면요?”


선미의 눈빛이 순간 멈췄다. 소영이 재차 물었다.


“그때도 그 친구들은 아무 바카라임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주먹싸움이라면 벌써 세 번은 끝났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싸움은 이상했다. 맞은 데는 하나도 없는데, 자꾸 아팠다.

집요하게 답을 요구하는 소영의 또렷한 목소리에 결국 선미의 이성이 툭 끊어졌다. 존댓말을 붙들고 있던 마지막 끈도 함께 끊어졌다.


“아니…… 씨, 자꾸…….”


“선미 학생?”


“아니, 너는 왜 자자… 자꾸 사람 말을 꼬아!”


선미가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곧장 날아왔다.


“강선미. 존댓말.”


순간 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꽂혔다. 선미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창피한 티를 내기 싫어 고개를 비딱하게 꺾고 다시 말했다.


“……왜 자꾸 사람 말을 꼬는데요.”


존댓말은 붙였지만 표정은 하나도 공손하지 않았다. 교실 여기저기서 킥킥 웃음이 새어 나왔다. 소영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말을 꼰 게 아니라 질문한 건데요.”


“아니, 그 질문을 왜 자꾸 하냐고요!”


“아직 대답을 안 했으니까요.”


선미의 관자놀이가 또다시 씰룩거렸다. 저 말투, 저 표정, 저 침착함. 하나하나가 사람을 미치게 했다.


“아, 씨바 꺼……. 침착함이 유유유… 유지가 안 되네!”


선미다운 솔직한 한탄에 교실 전체가 빵 터졌다. 앞줄에 앉은 아이 하나는 바카라상에 엎어졌고, 누군가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낄낄거렸다. 아이들이 배를 잡고 굴러다니자 선생님이 매서운 눈으로 선미를 가리켰다.


“강. 선. 미이!”


“아, 죄송요.”


선미가 얼른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소영은 웃지도 않았다. 잠시 소란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제 질문에 대한 답은 뭔가요?”


“…….”


“방관자는 아무 바카라임도 없다는 건가요?”


선미는 입을 꾹 다물고 바닥만 노려봤다.


“…….”


소영은 기다렸다. 선미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말들이 우르르 몰려다녔다. 겁먹은 애는 어떡하냐고. 걔도 무서울 수 있다고. 직접 때린 놈이랑 똑같이 취급하면 억울하지 않냐고. 할 말은 많았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입 밖으로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선미는 가장 익숙한 곳으로 도망쳤다.


“아, 몰라! 하여간 넌 재수가 없어!”


선미가 버럭 소리쳤다.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교실에 짧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소영은 선미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더니 존댓말을 내려놓았다.


“그건 답이 아니잖아.”


선미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


“내가 틀린 말을 했으면 뭐가 틀렸는지 말해.”


“…….”


소영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욕 하지 말고.”


선미의 얼굴이 귀 끝까지 확 달아올랐다. 뭐라도 받아치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 씨…… 진짜.”


선미는 주먹을 부르르 떨며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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