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나 바람, 냄새 같은 것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표현하고 싶었다. 물론 그것은 어려운 과제였고, 자연스럽다는 듯이 나의 관심은 빛에게로 번져 갔다. 빛은 소리나 바람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표현이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온순한 대상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본다는 행위는 이미 어딘가에 빛이 있다는 묵묵한 증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그림을 배울 때 밝은 곳과 어두운 곳으로 나누어 색칠하는 그런 식으로 그려질 일은 아니었다. 빛은 상황을 드러냈고, 반사되어 상대를 다시금 아스라이 비추기도 했다. 난반사가 일어나는 지점에서는 현기증이 날 지경으로 빛을 그리는 일이 자주 아득해졌다.
그러나 무력해질수록 나는 오기가 생겼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의 가장 중심에는 언제나 빛이 있었다. 빛에는 늘 그림자가 따라다녔다. 둘은 언제나 한 몸으로 움직였지만, 그 관계는 지독히도 복잡해서 환영으로 일렁이거나 왜곡되기 일쑤였다.
빛은 입자였다가 파동이었다가, 어느 순간엔 그저 온도였다. 캔버스 위에서 그것은 가파른 각도를 가진 채로 밀고 들어왔다. 사선으로 떨어지는 빛은 벽을 자르고, 그 잘린 자리마다 다른 밀도의 시간이 고였다. 나는 그 밀도를 붓끝으로 재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림자는 빛이 남긴 여백이 아니라, 빛이 통과하지 못한 몸의 기록이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각자 다른 방향을 볼 때, 그들 사이의 그림자는 서로에게 닿지 않으면서도 같은 창에서 태어났다. 나는 그 사실이 이상하게 다정하다고 느꼈다. 닿지 않아도 같은 근원을 가진 것들.
색은 빛의 온도가 식어가는 속도였다. 초록은 빛이 가장 늦게 도착하는 색이었고, 노랑은 빛이 아직 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색이었다. 나는 그 속도의 차이를 그리려 했다. 완성된 그림 앞에서도 나는 여전히 빛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다만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 두 사람의 옆얼굴과 목덜미와 손끝이 남아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자주 빛을 놓쳤다. 빛은 기다려주지 않았고, 내가 붓에 묻은 물감을 덜어내는 사이에도 각도를 바꾸었다. 나는 사라진 빛을 기억으로 대신 그렸는데, 그 기억이라는 것도 실은 빛의 또 다른 굴절이었다. 본 것과 기억하는 것 사이에서, 그림자는 두 번 태어났다. 한 번은 빛이 몸에 부딪혀서, 또 한 번은 내 손이 그것을 늦게 따라가면서.
목덜미에 떨어진 빛을 그릴 때 나는 그것이 살이 아니라 온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붓은 피부의 굴곡을 따라가는 대신 열이 식어가는 궤적을 따라갔다. 붉은 옷 위로 떨어지는 빛은 색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색을 태우는 일에 가까웠다. 나는 그 타들어가는 자리마다 조금씩 다른 어둠을 섞었다. 어둠은 색이 아니라 시간이었으므로.
창틀을 통과한 빛이 바닥에 그리는 사선들을 보며, 나는 그것이 방 안으로 걸어 들어온 누군가의 발자국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데도 방은 자주 붐볐다. 빛과 그림자,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나의 시선까지 더하면 셋이었다. 그림은 그 셋이 나눈 짧은 대화의 기록이었고, 나는 그저 그것을 받아 적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