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ube에 뜬 드라마의 선공개를 보았다.
10년 연애의 사랑 사이에 낀 새로운 설렘.
남자는 자기를 살게 해 준 그녀를 10년 동안 사랑했다.
강단 있게 그를 지키던 여자는 예상치 못한 설렘에 복잡하다.
그녀를 설레게 한 다른 이 또한 예상치 못했던 사랑에 어지럽다.
그녀의 흔들림에 그는 세상이 무너진 듯 힘들다.
다친 그녀를 다른 이 앞에서 안으며 말한다.
“괜찮아? 어디 더 다친 덴 없어? 야, 이미도, 놀랐잖아. 수명이 반으로 준거 같다.”
말은 한없이 다정했으나 그녀를 안은 그의 눈빛은 차디 차다.
그 차가움은 아파 죽겠다는 비명 같다.
나는 그의 눈빛을 보며 그녀에게 세상에 있는 모든 욕을 다 쏟아내고 싶어졌다.
악을 쓰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고 싶었다.
다른 이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뺨을 후리고 싶다.
영상 끝에 달린 댓글을 봤다.
‘10년 열애 끝에 3개월 만난 다른 이와 결혼하는 사람을 봤다.’
‘10년 연애면.. 애매하다.’
‘다른 이의 눈빛에 사랑이 가득해서 설렌다.’
설렘에 우선해서 열광하는 댓글이 과반수 이상이었다.
나는 또 화가 났다.
대체, 설렘이 뭐길래?
..................................
전 남편과 재결합할 때 그가 말했다.
나와 설레는 연애를 하며 남은 생을 살고 싶다고.
하지만 나는 달랐다.
그동안의 삶이 너무 고되어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아빠가 있고, 남편이 있는 서로에게 따뜻하고 서로에게 힘을 주는 그런 관계를 주고받으며 평화롭고 싶었다.
안정적인 가정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그는 설렘을 택하고 또다시 나를 배신했다.
그는 카톡으로 자신의 배신을 나에게 선포했다.
고백이 아닌 선포였다.
전혀 눈치채고 있지 않았던 나에게 너무나 당당하게 불륜을 고백한 그의 태도는 선포였다.
나는 그의 선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놀라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냥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어 유난히 더 맛난 음식을 먹으러 나갔다.
맛난 음식을 앞에 두고 동료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유난히 명랑하게 밥을 먹었다.
결혼 이후 배신을 하는 것.
연애 끝에 배신을 하는 것.
둘의 공통점은 사랑 끝에 아픔을 주는 것이다.
혹자는 이리 말한다.
“결혼 전이면 별 문제없지 않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걸 끌어안고 살면 뭐 해? 그냥 깔끔하게 헤어지는 게 낫지.”
결혼이든 연애든 그들은 사랑을 했다.
너 없인 못살겠다, 너와 함께 하고 싶다며 두 눈을 마주했다.
두 손을 마주 잡고, 서로를 향해 뛰는 가슴을 확인했다.
사랑은 변할 수 있다.
연인은 헤어질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설레었다는 이유로 그 또는 그녀를 향했던 시선을 쉽게 돌리진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사랑했던 순간을 공유했던 상대를 위한 배려, 그래, 진부하지만 그 배려를 먼저 생각해 주면 좋겠다.
배려와 인내 끝에 마음을 다시 다잡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깊어지는 마음이면 정중하게 이별을 고하며 용서를 빌자.
적어도 존중은 받았다는 마음으로 아픈 마음을 달랠 수 있게.
드라마 선공개 영상이 끝나고 나는 울었다.
서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