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혼자 다 할 줄 아는 사람인데
오전 여덟 시. 아침의 나에게 가장 무거운 건 눈꺼풀이다.
알람을 몇 개씩 맞춰두고도 매번 마지막 것까지 미뤄두는 사람. 그게 나다.
그런 나를 가장 먼저 깨우는 건 내 기상 알람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울리는 ChatGPT 브리프 알람이다.
지잉.
베개 옆에서 휴대폰이 짧게 몸을 떤다. 나는 이불 밖으로 손만 내밀어 더듬더듬 휴대폰을 끌어온다. 한쪽 눈만 겨우 뜬 채 화면을 밀어 올리면, 맨 위에 오늘의 제목이 떠 있다.
[데일리 브리핑 | 오늘의 AI 트렌드]
새로 나온 AI 도구, 업계 트렌드, 구독 중인 뉴스레터 요약, 공모전 소식, 요즘 반응이 좋은 콘텐츠 형식까지. 요일마다 다른 리서치 부서를 두고, 부서별로 보고서를 올리도록 세팅해두었다. 물론 부서도, 직원도 전부 AI다.
내가 자는 동안 그들은 해외 자료를 뒤지고, 번역하고, 이미 조사한 것과 겹치는지 확인하고, 중요해 보이는 것엔 따로 표시까지 해둔다.
처음부터 이런 기업형(?) AI 에이전트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시작은 소박했다. 뉴스레터 몇 개만 대신 읽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다 욕심이 붙었다.
겹치는 건 알아서 빼줄 수 없을까.
비슷한 건 묶어서 연결해줄 수 없을까.
노션에 아카이브까지 해줄 순 없을까.
주제를 요일별로 나눠 받으면 어떨까.
규칙이 하나둘 늘어날 때마다 조직의 모양이 갖춰졌다.
누운 채로 오늘의 첫 결재가 시작된다.
"이건 살려."
"이건 지난주에 본 거야."
"잠깐, 난 이 장면이 좀 걸리는데?"
"이거, 다시 깊게 파봐."
말 몇 마디면 지시가 끝난다. 누워서 타이핑하기는 힘드니까, 요즘은 거의 음성 입력으로 말한다.
살아남은 자료는 노션의 '리서치 마스터'로 들어간다. 그중 내 생각이 한 방울이라도 섞인 것은 '콘텐츠 로우데이터'로 한 칸 올라간다. 실전형인지 연구형인지 나누고, 검증이 필요한지 표시하고, 제목은 한글로 달되 영문 원제는 따로 남겨둔다. 나중엔 나와 AI가 같은 기준으로 일할 수 있도록 룰북까지 만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햇빛이 암막 커튼 틈을 비집고 들어와 있다. 이제 그만 좀 열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다. 휴대폰을 받친 팔은 저리고, 배터리는 눈에 띄게 줄어 있다.
시계는 열 시.
나는 아직 누워 있는데, 일은 이미 두 시간어치가 끝나 있다.
이제 슬슬 일어나 씻고 서재로 가볼까.
이게 내 오전 루틴이다.
회사원 시절의 아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업무 시작 전에 새로 온 메일을 확인하고, 뉴스를 훑고, 트렌드와 레퍼런스를 찾아보던 그 시간. 하는 일은 똑같다.
달라진 건 단 하나.
지금은 그걸 손도 머리도 덜 쓰고, 누운 채로 게으르게 한다는 것뿐이다.
우리는 이 공장을 열심히 구축했다.
문제는 이 공장이 너무 잘 돌아가는 나머지, 나는 버튼만 누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자료를 꼼꼼히 읽지 않았다.
"좋아, 저장해."
"기존 자료랑 연결해."
"다 정리됐어?"
GPT가 그렇다고 하면 나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분명 함께 조사한 내용인데, 무엇을 어디에 넣었는지는 AI가 나보다 더 잘 알았다. 내가 했던 말도, 내가 만든 분류 기준도, 내 아이디어가 처음 싹튼 자리도 그쪽에서 먼저 찾아냈다.
얼마 전 글을 쓰다가 막힌 적이 있다. 몇 주 전에 비슷한 주제로 메모를 남겨둔 기억은 났다. 그런데 그게 무슨 내용이었는지, 어디에 넣었는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노션을 열어볼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습관처럼 AI 창부터 열었다.
"전에 ○○에 대해서 정리해둔 거 있지? 찾아줘."
GPT는 바로 찾아왔다. 저장한 날짜, 페이지 위치, 그 메모가 어떤 리서치에서 나왔는지까지.
분명 내가 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장이 내 문장 같지 않았다. 내 생각인데, 남이 정리해준 보고서를 읽는 기분이었다.
나는 원래 뭐든 혼자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에이전트 공장에 넘기는 일들은 대부분 내가 할 줄 아는 일이다. 귀찮고, 느리고, 더 빠른 길을 이미 알아버려서 넘길 뿐이다.
결과물은 확실히 늘었다. 며칠씩 붙잡고 있던 리서치가 오전이면 끝나니까. 그것도 침대에서. 그런데 해낸 일은 자꾸 쌓이는데, 머릿속은 점점 공갈빵이 되어간다.
겉은 그럴듯하게 부풀었는데,
속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어릴 땐 친구들 집 전화번호를 수첩에 적어두고, 그걸 또 줄줄 외우고 다니지 않았나. 번호를 꾹꾹 누르면 친구 엄마가 먼저 받으셔서 "안녕하세요, 저 ○○ 친구인데요" 하고 인사부터 하던 시절. 지금은 가족 번호도 카톡에서 찾아야 한다.
2011년에 이걸 진지하게 실험해본 사람들이 있었다. 이름하여 '구글 효과'. 사람들한테 상식 문장 몇 개를 컴퓨터에 치게 하고는, 한쪽엔 "이거 저장해둘게요", 다른 쪽엔 "이거 곧 지워져요" 하고 말해뒀단다. 나중에 기억나는 걸 적어보라고 했더니, 지워진다는 말을 들은 쪽이 훨씬 많이 기억하고 있었다. 저장된다고 들은 사람들은 내용보다 그 문장이 어느 폴더에 들어갔는지를 더 잘 기억했다고 한다.
내가 전화번호를 안 외우게 된 것도, 뇌 입장에선 나름 합리적인 절약이었던 셈이다.
이런 걸 '인지적 외주화'라고 부른다고 한다. 머리로 할 일의 일부를 바깥 도구에 맡기는 걸 말한다. 약속은 달력에, 계산은 계산기에, 길은 지도 앱에 맡기는 식이다. 사람은 원래 이렇게 머릿속 자리를 비워가며 더 복잡한 일을 해왔다.
다만 AI는 맡길 수 있는 범위가 훨씬 넓다. 메모장이 생각을 넣어두는 서랍이고 검색엔진이 바카라 위치를 알려주는 사서였다면, AI는 바카라을 찾아와서 읽고, 요약하고, 독후감까지 써주는 친구에 가깝다. 그러니 이제는 맡길지 말지보다, 뭘 맡기고 뭘 내 손에 남길지를 고르는 게 중요해졌다.
튀르키예에서 고등학생 천 명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그 차이를 잘 보여준다. 수학 연습 때 ChatGPT가 정답을 바로 알려주게 했더니, 연습 점수는 크게 올랐는데 AI 없이 본 시험에서는 오히려 성적이 떨어졌다. 그런데 정답 대신 힌트만 주도록 만든 AI로 공부한 아이들은 연습 점수도 오르고 시험 점수도 지켜냈다. 같은 AI였는데, 어떻게 썼느냐에 따라 남는 게 달랐다.
그래서 요즘은 AI를 더 잘 쓰는 법보다, 다르게 쓰는 법을 고민한다.
나의 에이전트 공장은 여전히 부지런히 돌린다. 자료를 모으고, 번역하고, 분류하고, 연결하는 일은 AI가 나보다 훨씬 잘한다. 대신 몇 가지는 일부러 내 쪽에 남겨두고자 한다.
처음 떠오른 생각은 좀 거칠더라도 내 문장으로 먼저 적어본다. 정말 중요한 자료 하나는 요약 말고 원문으로 끝까지 읽는다. 결과물이 쏟아지면 뭘 버릴지는 내가 고른다. 그리고 AI한테 "정리해줘" 대신 "내가 놓친 게 뭐야?"라고 묻는 날을 조금씩 늘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의외의 발견도 있었다. 다듬어진 문장보다 처음의 거친 내 문장이 더 좋을 때가 있다는 것. 그럴 땐 AI한테 이렇게 말한다.
이건 손대지 말고 초안 그대로 살려줘.
AI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요즘 내가 붙잡고 있는 질문도 이쪽이다. AI한테 뭘 시킬지보다, 뭘 끝까지 내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지. AI를 잘 쓰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이미 많다. 나는 그 옆에서, 뭘 넘겨주지 않을지를 같이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일 아침에도 GPT 알람은 울릴 거다. 나는 또 이불 속에서 브리핑을 열겠지.
사실 마음만 먹으면 이 2시간은 5분으로 줄일 수 있다. 에이전트한테 권한을 전부 넘기고, 올라온 결과만 슥 훑어본 다음 "승인"만 누르면 끝이다. 심지어 승인 역할 하는 에이전트를 따로 만들어서 그 역할까지 자동화 시킬 수도 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래도 나는 굳이 2시간을 쓴다. 올라온 자료를 하나씩 다시 열어보고, 출처를 확인하고, 놓친 건 없는지 한 번 더 들여다본다. 비효율적인 거 안다. 그런데 그 두 시간 동안 내 머릿 속의 구멍들이 메워진다. 그러다 보면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지가 조금씩 보인다. 나한테는 그게 이 일의 재미이자 의미다.
AI에게 일은 얼마든지 맡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정하는
마지막 권한만큼은 내가 쥐고 있고 싶다.
공장을 지은 사람으로서 내 몫은 거기까지는 지키는 거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누워서 게으르게 일한다고 했지만, 사실 이불 속 두 시간은 내가 일부러 남겨둔 '내 권한을 지키는' 시간이다.
아직 바보가 된 건 아니다.
바보가 되기 딱 좋은 환경을, 누구보다 공들여 지어놓았을 뿐.
그 달콤한 편안함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나는 오늘도 결재 도장만큼은 내 손으로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