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눈빛을 돌려준 사람

가진 것 없음의 자유

by김지연

새로 등록한 교회에서 새가족 수료를 마친 일요일. 또래 사람들이 모이는 소모임에 초대됐다. 친목을 위한 모임에 소속되고 참여하는 것은 거의 처음인 것 같았다.


모두가 초면인 걸로 알고 내 소개를 했다.

모여있던 대여섯 명의 사람들은 또래다 보니 대부분이 진로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고, 몇몇은 새로운 일을 도전하기 위해 퇴사를 앞두고 있다고 소개해주었다.


“지연이도 혹시 비슷한 고민 있어?”

묻는 모임장 언니의 말에


“아니요. 얼마 전부터 회사 일에 재미를 느끼게 돼서 쭉 다니려고 마음먹었어요.”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에는 그럴 리 없을 것 같던 회사가 은근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좋고, 일도 즐거워서 나름 효능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나도 한때는 그런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지'

하며 남얘기처럼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언니, 옛날에 자전거 의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했었잖아요.”


한솔이라는 사람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뒤통수를 한대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아참, 그랬지. 그런데 어떻게 알아요?


나는 일 년 전에도 꿈을 좇겠다며 퇴사했다. 하지만 퇴사와 동시에 전세 대출금 이자가 두 배로 오르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이틀만 쉬고 환승 이직을 했다.


그때 살던 집은 집주인이 유명한 전세사기꾼이었다. 집주인과는 연락두절되었고, 계약을 알선한 부동산 마저 없어져서 이미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자본의 논리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던 내 상황이 분했다. 하지만 인생사 풍파에 떠밀리듯 새 회사에 와보니 같은 업계에 같은 포지션인데도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게 많아서 이것도 꿈을 향한 하나의 단계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다만 일하면서 그 꿈이 잊히지 않기만을 바랐다.

첫 퇴사와 이직을 겪을 당시에 나는 영등포 역 근방의 쪽방촌을 돌면서 그곳에 사는 노숙인과 식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봉사를 하고 있었다. 봉사가 끝난 후 사람들과 종종 앞으로의 꿈에 대한 얘기를 나눴고, 한솔이 그때 거기 있었다고 한다. 1년쯤 일하니 반복되는 루틴업무와 규칙적인 월급에 익숙해져서 그때의 꿈과 그때의 마음을 잊은 채 이대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에 안주하려 했다.


정착과 안정이 주는 편안함… 나도 모르는 사이 그걸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무방비 상태의 내 뒤통수를 한솔이 시원하게 가격한 것이다.


나도 잊을 뻔한 나의 꿈을 기억해 주고 반짝이는 눈으로 그걸 다시 내게 들려주다니. 나는 뜨거워진 뒤통수를 긁적이며 당황한 채

“어어, 그거는 한 서른 즈음에 시작하려고요… 돈을 좀 모으고요.”

했다.


어물쩍 둘러대고는 집에 돌아와서까지 한참을 찜찜했다. 사실 다 변명이고, 용기가 없었던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서른 즈음에 도전하겠다고 했지만 내일모레면 나는 서른이었다.


적절한 때를 기다린다는 명목하에 이렇게 기약 없이 미루기만 하다가 꿈을 외면한 채 서른이 되고, 서른다섯이 되고 마흔이 되면 어쩌지?


서른의 나, 서른다섯의 나, 마흔의 나를 상상했다. 앞으로 내 인생은 지금보다 안정적으로 변할 것이다. 집이 생기고 가족도 생기고 바카라임질 일이 많아질 거다. 그때가 되어서 젊었을 때 꿈을 향해 도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변화가 귀찮고 실패가 두려워서 꿈을 접어둔 채로 살다 아쉬움을 마주하고 싶진 않았다. 집도 없고 바카라임질 가족도 없는 지금이 내 꿈을 마음껏 펼칠 기회였다.


그 생각을 하는 내내 내 꿈을 기억해 주고 또 상기시켜 준, 한솔이의 반짝거리는 눈빛과 상기된 표정이 자꾸만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꿈을 이야기할 때 내 눈빛도 그렇게 반짝였을까?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을 끙끙 앓으며 고민하다사직서를 내기로 했다. 몇 년간 마음속에서만 맴도는 꿈을 현실로 바꾸기로 한 그 순간, 명치 부근에 오랫동안 묶여 있던 매듭 같은 게 풀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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