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낼 곳이 있는 홈리스였다
"나 글을 한번 써보려고, 내가 지금까지 겪은 일들을 내 식대로 생각하고 소화해보고 싶어."
- 글 쓰지 마. 나중에 부끄러워져. 젊었을 때 멋모르고 쓴 글은 나중에 보면 창피해. 웬만하면 그런 거 하지 마.
“아, 아니, … 누가 출판을 하겠대? 그냥 블로그에 혼자 일기를 쓰겠다고.”
- 그래, 그런 거면 해. 하든지 말든지. 니 혼자 보는 거면 누가 뭐라 하겠니.
근데 너는 끝까지 잘 해낸 일이 별로 없잖아. 너 뭐? 자전거 의류 만들어보겠다고 퇴사하고, 네덜란드 가서 워킹홀리데이 한다더니 거기서 제대로 돈을 벌기나 했어? 아트북을 만들어보겠다더니 바카라 같지도 않은 거 만들어서 가져왔지, 누구 부끄러워서 보여주지도 못하겠더라. 그리고 뭐, 독일에서 한국까지 자전거 타고 오겠다더니 막판에 중국에서는 거의 기차 타고 돌아왔지. 돌아와서 유튜브 하겠다고 하더니 지금 몇 개 하고 올리지도 않지. 정작 이 모든 걸 벌이게 된 사업은 지금 사무실만 얻어놓고 아무것도 진행 못했잖아.
“……아 깜짝이야, 섭섭하게 무슨 말을 그렇게까지 해?”
- 그러니까 내 말은, 뭐 하나를 시작하면 끝을 맺으란 말이야. 중간에 다른 일을 벌이지 말고.
이토록 맞는 말만 하는 엄마였다.
생각해 오던 사업으로 투자를 받아내지 못하고 생활비가 부족해서 알바를 했지만 본전도 못찾고, 결국 알바로는 체력을 지키면서 자금을 모으지 못하겠다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 아빠는 본가로 들어와서 지내라고 했다.
속전속결로 가구까지 다 넘겨받을 다음 세입자를 찾아 집 계약을 마치고 이제 본가로 들어가도 되겠냐고 다시 한번 물었을 때 엄마가 갑자기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거 같다고 했다.
큰 가구들은 거의 다음 세입자에게 팔았고, 옷가지 몇 개만 들고 갈 것이며 집에 있는 동안은 아침 일찍 도서관에 가서 밤늦게 돌아와 집에 머무르는 시간을 최소화하겠다, 설거지를 열심히 하고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돕겠다. 지금 좀 집중해야 할 시기니 4개월만 받아달라 애원했지만 4개월만 있다 또 나갈 거면 왜 굳이 월세방을 빼야 하냐고 되물으며 그냥 월세방에 살랬다. 나는 이제 삼십 대고 앞으로 더 이상 같이 살 일 없을 텐데 너무 싫더라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참고 같이 살아주면 안 되겠냐, 그 이후에는 내가 어떻게 살 길을 알아보겠다 했을 때도 왜 그래야 하냐고 했다.
갑작스러워서 순간 화가 난 거겠지, 아니면 굽히고 들어가서 말 잘 듣고 살면 되는 거겠지 싶어 일주일 후에 다시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어보아도 불같이 화를 냈다.
분명 며칠 전에 알바는 그만두고 본가로 들어와서 살라 해서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는데 정작 집과 가구를 다 팔았더니 갈 곳이 없었다.
바로 다다음주에 지낼 곳이 없는 상태로는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자전거 타고 여행 다닐 땐 내일 당장 어디서 자게 될지 몰라도 잘만 잤는데.
집이 없으니 발 디딜 땅이 사라진 것 같았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디서 살아야 하지?
계약을 무를 수 있나? 하지만 돈은?
다시 야쿠르트 아줌마가 되어야 하나?
절에 들어가야 하나? 나 기독굔데.
머릿속엔 질문만 가득하고 답이 없었다. 눈물은 안 나는데 하루 종일 운 것처럼 눈이 부었다.
친구들은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
나는 잘 못 지낸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들에게만 답장했다.
[정 갈 곳 없으면 매트리스만 들고 우리 집 와]
[우리 집에 들어와도 된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부모님과 사는 친구 임하가 집에 빈 방에서 나를 재워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전개는 생각도 못했는데 집을 허락해 준 친구와 친구의 부모님께 너무 감사해서 깜짝 놀랐다. 갑작스러운 호의에 당황해서 웃느라 사레도 들렸다.
마음에 안식처가 생겼다는 사실에 조금은 덜 슬픈 것 같았는데 한편으로 더 슬프기도 했다. 임하네 부모님이 나를 받아주는데 나의 부모님은 받아줄 수 없다니.
그래도 울적하고 막막해서 집에 처박혀서 잠도 못 자고 생각의 굴레에 빠져있었는데, 이제 막막하지만은 않아서인지 그때부터 잠이 오기 시작했다. 친구의 부모님에게까지 짐이 될 수 없으니 다른 방법들을 찾았다. 하동의 녹차밭에서 하루에 다섯 시간 찻잎을 따고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곳에 가서 주경야독하던지, 절에 들어가서 장기수행을 하면서 잠시 살던지 해야겠다. 아니면 지자체에서 하는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지내던가.
그렇게 임하의 제안을 받은 후 잠을 잘 자기 시작하면서 다른 친구들도 만나러 갔다.
두어 달만에 만난 우리 중 하나는 퇴사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고 하나는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으며 나는 홈리스가 되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휴대폰을 보던 세현이가 말했다.
나 지금 동생한테 물어봤거든? 잠시 같이 사는 거 괜찮대. 자기 괴랄한 알람소리만 참아달라는데…
아 잠시만 머라고? 날 또 거둬주겠다고
분가해서 동생이랑 둘이 살고 있는 세현이는 다음날부터 매일 내 안부를 묻고 이사 진행상황을 묻기 시작했다.
[언제 방 뺀다고?]
[이제 슬슬 방 빼면서 짐 가져다 놔]
[동생 재택근무 중이니까 이 날 낮부터 들어와도 돼]
[엄마가 이불 가져다주셨어]
[너 잘 매트리스 사놨어]
그렇게 지낼 곳이 생겼다. 처음 며칠은 고마워서 잠들때마다 눈물이 비죽비죽 흘렀다. 안대를 끼고 잤다. 잠들때마다 스팀 아이마스크를 한 것처럼 촉촉했다.
세현이 집에서 주말을 두 번 보내고 나니 거실불을 끄고도 방에 들어와 내 잠자리를 찾아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추석이었다.
그래도 명절이니까 친척들 모임에 참여하려고 본가로 가서 가족들을 만났는데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집? 어떤 집?
나한테 집이라는 게 있나.
밥 먹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울면 뭐라 할까 봐 꾹 참았다. 눈물을 참으니까 나름 참아졌다. 근데 눈 대신 코에서 맑은 물이 주룩주룩 나왔다. 왜 감기에 걸렸느냐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밥을 욱여넣고 집을 나왔다.
집을 나서자마자 코 말고 눈으로 울려고 했는데 배가 아팠다.
나는 홈리스 중에서도 방구를 북북 뀔 수 없는 종류의 홈리스였다. 어디서도 방구를 꾹꾹 참아서 가스가 찼다. 공원에서 아무한테도 안들키고 방구 뀔 수 있을까? 이번 기회에 소리 없이 방구 뀌는 법을 연마해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눈물이 안났다.
방구 대신 한숨이 나왔다.
다음 주만 해도 내가 어디에 살고 있을지 가늠이 안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