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6일 근무의 위기 앞에 서다
세현이 집에 얹혀살던 어느 날,
퇴근길에 빡세게 운동하고는 집에 오자마자 양말도 못 벗은 채 뻗은 세현이를 보고 웃음이 터졌다.
세현이 동생 소현이에게 말했다.
"너네 언니 좀 봐.
무슨 토요일까지 일하던 그 시절 아버지 같아."
와하하, 가장의 무게. 하하…. 어?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그래 그땐 주 6일이었지. 생각이 거기에 닿는 순간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곧 내가 그 시절 아버지처럼 일만 하다 양말도 못 벗고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거가 불안하니까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해주는 주재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내가 일하던 의류벤더의 해외영업직은 베트남에서도 근무를 할 수 있었다.
추석 전에 이력서를 몇 군데 넣었고, 연휴가 끝나자 면접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첫 면접은 캠핑용품에서 패브릭 가구로 확장한 회사였다. 주 6일, 하루 10시간 근무였다. 베트남은 아직 주 6일 근무가 기본인 나라다. 업무시간은 길지만 기업 리뷰가 좋아서 궁금했다.
집에서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면접이었지만 왠지 떨렸다. 최대한 단정한 옷을 골라입고 머리 손질도 했다. 점심으로는 베트남 쌀국수를 시켜먹으며 면접 시간까지 면접 준비 영상을 봤다.
면접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경력을 좋게 봐주셔서 분위기가 좋았다. 나름 내 전온라인 게임에서 그 회사로 온 사람도 많다며 호의적으로 대해주셨다. 일반적인 문답을 무사히 마치고, 부서장님의 상황극 질문이 시작됐다.
“본인의 잘못으로 바이어한테 물건을 빨리 보내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가정해볼게요. 바이어는 계속 질바카라하면서 배 말고 비행기로 보내달라고 재촉하는데, 상사는 절대 안된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부서장님이 질문하는 중에 현관 도어락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지금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문소리 때문에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부서장님은 더 자세하고 길게 상황을 설명했다.
”정답은 없어요. 지원자님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묻고싶은 겁니다. 아시다시피 선박대신 항공으로 운송하면 비용이 많이 들고…“
반차를 내고 일찍 퇴근한 세현이였다. 자기집인데도 놀라서 들어오자마자 자리를 피해주는 세현이를 곁눈으로 보며 미안한 마음으로 어찌저찌 대답했다.
“우선 제 실수로 발생한 문제인 만큼 바이어에게 사과하고, 정확한 납기와 항공 운송에 따른 추가 비용을 파악하겠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상사에게 항공 운송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일부 물량만 항공으로 보내는 등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
셀프로 돌발상황을 추가한 격이었지만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대답했다.
“상사가 일부 수량이라도 항공운송은 절대 안된다고 하고, 바이어는 이번 납기가 지켜지지않으면 거래를 끊겠다고 합니다. 어떡할건가요?“
네? 모르겠습니다. 안녕히계세요. 하고 노트북을 덮는 상상을 하며 어떻게든 그럴싸하게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난처해보였는지 부서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질문이 좀 난해하죠?"
"네, 난해합니다...(제 머릿속이요…)”
몇가지 상황을 더 제시하고 답하기를 반복하면서 긴장이 풀리고 다시 차분하게 면접을 진행했다. 추가로 받은 질문들은 나름대로 괜찮은 답변을 내놓은 거 같았다.
상황면접이 끝나고는 디자인 부서의 베트남 직원이 들어와 영어 면접을 봤다. 영어 면접은 예상 못했지만 앞선 상황 질문보다 훨씬 가벼운 주제였고, 질문자가 또래 여자다보니 오히려 숨통이 트였다. 나름 매끄럽게 흘러가서 면접관들이 흐뭇하게 웃으며 끄덕였다. 상황면접의 실수를 만회한 것 같았다.
전반적으로 면접이 체계가 잡힌 것 같아서 이 회사에 합격하면 배울 게 많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6일 하루 10시간 근무를 잘 견뎌낼 수 있을까싶어 합격해도 걱정이었다.
두 번째로 면접본 다른 회사는 같은 호치민에 있는 회사였지만 완전히 달랐다.
인사팀과 이야기할 때는 나보고 귀한 이력서라며 면접도 보기 전에 연봉과 처우까지 자세하게 알려줬다. 주말에 연락해서 면접일정을 잡는 걸 봐서 사람이 무지 급해보였다. 나는 이미 거의 합격이라고 착각했다.
크게 긴장하지 않고 면접에 임했다. 차장님과 부서장님이 참여한 2:1 면접이였는데, 각자 사무실 자리에서 줌 미팅에 참여한 건지 베트남어, 한국어, 영어로 일하는 소리가 와글와글 들려서 집중이 어려웠다.
차장님이 이력서 보면서 지금까지 어떤 일을 했는지 얘기하고, 경력과 공백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때까지는 잘 풀리는 것 같았는데…
가만히 듣고있던 부서장님이 막판에 질문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요즘 주재원들 호화롭게 사는 릴스 같은 게 인스타니 뭐니 많이 뜨잖아요, 그걸 보고 베트남에 오고 싶다고 한 건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여기 생활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여행좋아하시는 거 같은데, 여행하는거랑 여기서 사는거랑 달라요.”
네? 여행하는 거랑 거기서 사는 건 다르다고요..?
… 저도 아는데요.
게다가 난 그런 릴스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주 6일 아버지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는 사람한테 호화생활을 기대하면 안된다니.
부서장은 내가 거기에 뭐라 대답할 틈을 안주고 질문을 이어갔다. 회사에 인도네시아 지사도 있는데 거긴 공장이랑 붙어 있어서 열악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만약 인도네시아로 보내지면 어떡할 거예요?”
그래서 근무환경이 괜찮다면 의향이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환경이요? 지원자님을 위해 무슨 환경이 어떻게 갖춰져야 하는데요?”
벙찐 나에게 되물었다.
“방금 근무 ‘환경’이 갖춰지면 일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게 무슨 환경을 말하는 건지 설명해보세요.”
그래서 업무범위가 크게 벗어나지 않고 생활 인프라가 어느정도 갖춰져 있다면 괜찮다고 했다.
아 예~ 5년 후에 뭐가 되어 있을 것 같으세요?
목표가 뭐예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질문이긴 하지만 이런 질문에 회사에서 좋아할 만한 답변을 따로 생각해놓지 않았어서 솔직하게 지속가능패션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부서장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지속가능패션? 어렵네"
대답에 별 관심은 없어보였다. 뭐가 어렵다는건지 의문이었다. 스마트팩토리 같은 것과 연결해서 공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게 우리 산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지금까지 한 얘기를 영어로 해보라고 했다. 아마 아까 어렵다고 했던 게 영어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뜻이었던 거 같다.
항상 생각하던 분야였어서 영어로 말하기 어렵진 않았다. 화려한 문장은 아니였고 그냥 한 서너문장 정도 말한거 같은데 막상 혼자서만 이야기하니까 너무 빨리 끝나서 머쓱했다.
아이 원 투 스터디 서스테이너블 패션 비커즈...어쩌구 저쩌구... 댓츠 잇… 하하.. 조금 간략하네요.
“하하 네. 그럼 면접을 이만 마치겠습니다“
하더니 면접관들이 차례로 회의실을 나가고 면접이 종료됐다. 지금까지 겪어본 것 중 가장 불쾌한 면접 경험이었다.
면접이란 게 회사가 나를 평가하는 것처럼 나도 면접관과의 대화를 통해 근무환경이 어떨지 가늠해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붙어서 저렇게 어려운 사람과 일해야한다면 안그래도 외롭고 쓸쓸한 타지생활이 더 힘들 것 같았다.
결과는 같은 날 왔다. 두 곳 모두 불합격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불합격이라는 소식을 들으니 씁쓸했다. 두번째 회사는 붙어도 안 갈 생각이었지만 캠핑회사는 분위기가 좋았고 체계도 잘 잡혀 있어 근무시간이 길어도 감수하고 가볼 마음이 있었기에 더 아쉬웠다.
1년 몇 개월 단위로 이직한 경력과 2년의 공백이 리스크였던 것 같다. 신입 때나 이직할 때는 면접 보기만 하면 합격이였는데, 스스로 경력을 단절하고 나니 달랐다.
두 번 넘어져도 세 번 일어나야지. 불합격 통보를 받고 두 시간 뒤, 세 번째 주재원 면접이 잡혀 있었다.
이번에도 의류무역회사의 해외영업이라는 같은 직무인데 기획과 바이어 소통에 비중이 있었고, 디자인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찾는 듯했다. 그동안 해온 해외영업은 디자인역량이 전혀 필요없었기에 흥미로웠다. 바이어에게 기획안을 내고 잘하면 내 기획이 실제 제품으로 출시될수도 있는 것 같았다. 내 전공인 의상디자인을 써먹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담당하게 될 바이어도 내가 좋아하는 아웃도어 브랜드와 애슬레져 브랜드였다.
다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인 인도네시아 법인이였고 시골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큰 기대없이 우선 이야기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이번에는 자기소개만큼은 야무지게 준비했다. 굵은 글씨로 써서 줌 화면 뒤에 띄워 두고, 떨려서 할말이 떠오르지 않으면 꺼내서 읽을 생각이었다.
질문이 시작되자 면접관들이 내 이력서를 꼼꼼히 읽었다는 게 느껴졌다.
이력서에 지난 회사를 그만뒀던 이유랑 공백기에 다녀온 자전거 여행에 대해 짧게 언급해놨었는데 거기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하셨다.
독일에서 한국까지의 자전거 여행에서는 어디를 통해서 입국했는지 물어보시고 또 왜 자전거 여행을 결심했는지, 네덜란드에는 얼마나 있었는지 등등 …
내 삶에선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지만 보통 면접관들은 궁금해하지 않는 질문들이었다. 인간 김지연에 대해 묻는 것 같아 반가워서 나는 있는 그대로 말했다.
“전세사기 때문에 퇴사하기도 했지만 이번 기회에 관심분야를 더 파보고 싶어서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관심분야는 자전거 의류였고 네덜란드에 체류한 이유도 자전거 의류에 관심이 많아서 였습니다.”
“그러다가 뜻이 맞는 친구를 만나게 되어서 자전거 여행을 길게 하게 됐습니다. 자전거 의류의 실사용 경험을 많이 쌓고 싶었기 때문에 특별한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커리어에서는 잠시 멀어진 공백기였지만 인간적으로는 가장 많은 경험과 변화를 가져온 시간이었습니다.”
그러자 뭔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의외였다. 이력서에 관한 질문과 업무적인 질문을 마치고 마지막 질문이었다.
"해외 생활을 결심하고 주재원에 지원한 이유를 다시 묻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나눈 대화에서 이미 들었지만 다시 묻는 건, 좀 색다른 답을 원해서예요."
해외에서 살 각오가 얼마나 되는지 보려는 질문 같았고, 그래서 사실대로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아주 까놓고 말하려니 떨려서 머뭇거렸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속가능 패션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싶고, 삼십대에 석사 유학을 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가고싶은 학교는 학비가 한 학기에 2천만 원입니다. 한국에서 주거비를 쓰면서는 그 돈을 모으기 어려울 것 같아서, 주거가 해결되는 주재원을 선택했습니다."
말이 끝나자 사무실에 있던 모두가 움직이기를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너무 솔직했나, 망한건가?
차장님이 입을 열었다.
"…김지연 님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럼 여기서 한탕 땡기겠다는 거네요."
"네, 그렇습니다."
모두 웃음이 터졌다.
"몇 년 땡겨야 목표 금액이 모이죠?"
“최소 3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뒤로 내가 궁금했던 걸 질문하고 답변을 들으면서는 이미 구성원이 된 것처럼 분위기가 편해졌다.
면접 끝나고 예감은 좋긴했지만 탈락한다면 사력을 다해 몇 달 안남은 석사 입학원서를 넣어볼 생각이었어서 탈락을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합격소식을 듣고도 떨떠름했다.
베트남 회사의 못된 본부장이 말한 열악한 환경의 인도네시아 공장 기숙사로 가게 된 거 아닌가. 회사에 대해 잘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싫었다.
게다가 재미로 본 사주 앱이 인도네시아행을 극구 말렸다. 물어볼때마다 말이 달라서 신뢰 0%에 재미만으로 보던 앱인데, 이번엔 몇 번을 다시 물어도 인도네시아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했다.
반대로 아빠는 합격 소식을 듣고 회사를 찾아보더니 집에 와서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너랑 가치관이 정말 잘 맞는다. 바이어도 탄탄하고 회장 마인드도 좋더라."
말뿐인 지속가능성 쉽지. ESG경영 안하는 회사가 어디 있어, 다 그린워싱이지. 침체된 기분으로 홈페이지를 다시 열었다.
그런데 알아볼수록 아빠 말대로 CEO는 지속가능성에 진심인 것 같아 보였다. 2년 전에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했고, 전 온라인 게임에서는 허울뿐이던 스마트팩토리도 서울대와 산학협력으로 구현했다고 했다.
보여주기식일 수도 있지만, 가서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설렜다.
결정적인 건 이 회사의 유일한 자체 브랜드가 자전거 의류였다.
우연히 2년 전 일기를 읽다 직속상사가 나에게 스치듯
"어느 회사에서 자전거 의류 디자이너를 뽑는대"
했다는 기록을 발견했는데, 그 회사가 바로 여기였다.
애정이 솟기 시작했다. 다른 베트남 주재원 면접기회가 생겼지만 나는 결국 인도네시아행을 택했다.
사주가 예언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갈지 지켜보려고 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내 인생,
앞으로는 어떻게 흘러갈까!
Stay tu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