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한다는 신호를 감지했는데..
왜 결국 안하는걸까?

하기 싫은 마음, 그럴듯한 판단, 굳은 신념.. 내 안의 방해꾼

by아공빠

해야 하는 건 압니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운동해야지, 병원 가봐야지, 정리해야지, 공부해야지. 머릿속에는 분명 있는데 오늘도 내일로 미룹니다.


변화의 신호는 분명히 감지했습니다. 다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을 뿐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붙잡는 걸까요? 흔히 의지가 약해서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를 붙잡는 방해꾼은 세 가지이고, 모두 내 안에 있습니다.

감성의 방해, 이성의 방해, 의식의 방해.




신호를 감지했다고, 움직이는 건 아닙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관심이 생기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이는 것과 움직이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찬물을 마실 때마다 이가 시린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엔 살짝 찌릿했고, 몇 주가 지나자 따뜻한 물에도 시큰거립니다. 치과에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버티다 결국 치과에 갔더니 신경치료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가 시리다는 변화의 신호는 몇 달 동안 매일 왔고, 이 사람도 그 신호를 분명히 감지했습니다. 못 봐서 놓친 게 아닙니다. 보고도 흘려보낸 것입니다. 무엇이 이 사람을 붙잡았을까요?




첫 번째, 감성이 방해합니다


"치과는 귀찮아." "그 기계 소리 너무 무서워." "그냥 가기 싫어."


가장 흔한 방해입니다. 마음은 늘 지금 편한 쪽을 원합니다. 퇴근하고 운동 가야 하는 걸 알면서도 소파에 눕고, 건강검진 날짜를 몇 번이고 미루고, 쌓인 서류를 보고도 내일 하자고 덮습니다.


하기 싫은 마음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문제는 지금 편하고 싶은 마음이 나중에 좋아질 일보다 더 크게 느껴져, 결정을 대신 내려버리는 것입니다.


이 방해는 머리로 아무리 설득해도 잘 풀리지 않습니다. 마음은 싫다는데 머리만 해야 한다고 하면, 결국 마음이 이기기 쉽기 때문입니다. 감성의 방해를 넘어서려면 용기, 인내 같은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기 싫어서 안 한 것도, 변화의 신호를 무시한 것입니다.




두 번째, 이성이 방해합니다


"찬물만 안 마시면 되잖아." "잇몸 때문인 것 같으니 약만 먹어도 되겠지."


이번에는 귀찮아서가 아닙니다.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 내린 판단입니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그럴듯하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진단하고 스스로 처방까지 내렸으니, 치과에 갈 이유가 사라집니다.


일상에서도 흔합니다. 몸무게가 꾸준히 늘어도 "요즘 좀 바빠서 그래" 하고 넘기고, 아이의 말수가 부쩍 줄었는데 "요즘 애들 다 그래" 하고 지나칩니다. 겉보기엔 신중하게 따져본 것 같지만, 실은 충분한 근거 없이 안 해도 되는 이유부터 찾아낸 경우가 많습니다.


옳고 그름을 가려주는 이성은 고마운 힘입니다. 하지만 엉뚱한 근거 위에 서면, 오히려 변화의 신호를 지워버립니다. 이럴 땐 "안 해도 된다는 내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걸 흘려보내면 나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를 한 번 더 물어야 합니다.




세 번째, 의식이 방해합니다


"이정도 시린 건 참아도 된다." "난 원래 병원을 잘 안간다."


이 사람도 치과에 가봐야 하나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품어온 가치관, 신념과 같은 알 수 없는 믿음이 그 마음을 방해합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야." "우리 때는 이렇게 해도 다 잘됐어." "그건 내 방식이 아니야."

이런 의식 속 믿음이 하지 말라는 의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방해가 셋 중 가장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하기 싫은 마음은 스스로 느껴지고, 그럴듯한 판단은 따져보면 허점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의식은 내가 '나'라고 믿는 것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믿음은 나를 흔들리지 않게 지켜주는 소중한 힘입니다. 다만 믿음도 경험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새로운 변화 앞에서는 "내 믿음이 지금 이 변화에도 여전히 맞는가?" 하고 다시 비춰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물을 때 의식은 신호를 막는 방해꾼이 아니라, 신호를 골라주는 기준이 됩니다.




변화의 신호를 무조건 따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변화의 신호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앞서 좋기만 한 기회에도 부작용이 있다고 이야기했듯, 변화의 신호 중에는 나를 노리는 신호도 있고 따르면 해로운 신호도 있습니다. 충분히 따져본 뒤 해롭다고 판단해 따르지 않는 것은 무시가 아닙니다. 분별입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무시는 따져보기도 전에 감성, 이성, 의식이 대신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입니다. 무시가 위험한 이유는 결과가 좋든 나쁘든 내가 고른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이로운 신호를 흘려보내면 해야 할 일과 성장할 기회를 놓칩니다. 해로운 신호를 흘려보내 운 좋게 피했더라도, 왜 피해야 했는지 모르니 다음에 같은 신호가 오면 끌려가기 쉽습니다.


변화의 신호에 귀 기울인다는 건 신호에 끌려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호를 저울에 올려 보고, 따를지 거를지를 내가 정한다는 뜻입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FAQ)


Q. 결국 그냥 의지가 약한 거 아닌가요?

의지가 부족해서 생기는 건 세 가지 중 감성의 방해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기 싫은 마음을 넘어서려면 분명 의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성의 방해는 의지가 강해도 생깁니다. 그럴듯한 판단이 할 일 자체를 지워버리기 때문입니다. 의식의 방해는 오히려 반대입니다. 믿음이 만든 의지가 강할수록 변화의 신호를 더 세게 밀어냅니다. 그래서 "의지가 약하다" 한마디로 묶어버리면, 정작 무엇이 나를 막았는지 볼 수 없게 됩니다.


Q. 생각해 보고 필요 없다고 판단하는 게 오히려 현명한 것 아닌가요? 모든 신호에 반응하면 피곤합니다.

맞습니다. 모든 신호에 움직일 필요는 없습니다. 차이는 근거에 있습니다. 충분히 따져본 끝에 내린 결론인지, 아니면 하기 싫은 마음이 먼저 결론을 내리고 이성이 나중에 이유를 찾아준 것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근거를 물었을 때 답이 막힌다면, 그건 판단이 아니라 방해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Q. 신념을 지키는 게 잘못인가요? 신념 없이 흔들리는 사람이 더 문제 아닌가요?

신념을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점검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점검해 보고도 지켜야 할 신념이라면 더 단단하게 지키면 됩니다. 다만 그 신념이 지금 내 앞의 변화의 신호를 외면하는 이유로 쓰이고 있다면,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Q. 하기 싫은 마음을 무시하고 억지로 하면 오래 못 가지 않나요?

억지로 누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기 싫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니 그대로 두되, 그 마음이 결정까지 내리게 두지 말자는 것입니다. 다만 하기 싫은 마음은 머리로 설득한다고 잘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마음을 넘어서게 하는 건 용기와 인내 같은 의지입니다. 하기 싫다는 마음과 안 한다는 결정은 서로 다른 것이고, 결정은 의지가 내리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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