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느낌은 아무 일 없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후배의 말수가 조금 줄었습니다. 단골손님이 지나가듯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통장 잔고가 지난달보다 조금 빨리 줄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별일 없겠지."
그리고 몇 달 뒤, 후배는 갑자기 퇴사를 통보하고, 손님은 경쟁 가게로 옮겨 가고, 카드값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불어나 있습니다.
큰일은 갑자기 오지 않습니다. 처음엔 아주 작은 신호로 왔고, 우리가 "별일 없겠지" 하며 지나치는 사이 조용히 자라서 큰일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신호는 대개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옵니다.
입사 7년 차 지훈 씨는 팀의 중간 관리자입니다. 큰 프로젝트 마감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가장 일 잘하던 후배가 퇴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지훈 씨는 당황했습니다. "아니, 갑자기 왜?"
그런데 되짚어 보니 갑자기가 아니었습니다. 석 달 전부터 후배는 회의에서 말수가 줄었습니다. 점심을 따로 먹기 시작했고, 메신저 답장이 짧아졌고, 야근하는 날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지훈 씨도 그때마다 뭔가 달라졌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하지만 매번 이렇게 넘겼습니다. "요즘 바쁜가 보지. 별일 없겠지."
지난 편에서 말했듯, 소리 없이 오는 변화는 없습니다. 지훈 씨에게도 신호는 분명히 왔습니다.
다만 그 신호가 너무 작았고, 그래서 별일 아닌 것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변화가 생기면 우리에게는 해야 할 일이 생기고, 우리는 그걸 대개 감정으로 먼저 알아차립니다. 짜증이 나거나 불편하거나 괜히 설레는 마음은 "할 일이 생겼다"는 알림입니다. 그래서 뭔가를 느꼈다면, 거기엔 반드시 할 일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반대입니다. 아무것도 못 느꼈다고 해서 할 일이 없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변화도 얼마든지 아무 느낌 없이 조용히 진행될 수 있습니다.
관계가 금 가는 동안에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지냅니다. 내 실력이 몇 년째 제자리여도 월급은 꼬박꼬박 나오니 불편할 게 없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머지않아 기계로 대체될 수 있어도, 오늘 하루는 평소처럼 굴러갑니다. '괜찮다'는 느낌은 아무 일 없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작은 신호라고 해서 작은 변화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작은 신호는 변화의 전조 신호입니다.
왜 그럴까요? 변화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고 조금씩 자라기 때문입니다. 태풍도 처음엔 바람 한 줄기로 오고, 무너지는 관계도 시작은 사소한 말투의 변화입니다. 변화가 크든 작든, 처음 들리는 소리는 늘 작습니다.
이건 위기만이 아니라 기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꽃집을 하는 사장님에게 단골손님이 지나가듯 말했습니다. "요즘은 꽃을 정기적으로 받아 보는 사람이 많던데요." 사장님은 웃으며 넘겼습니다. 1년 뒤, 근처에 꽃 정기배송 업체가 문을 열었고 단골손님들은 하나둘 그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큰 기회도 처음엔 이렇게 한마디로 옵니다.
작은 신호가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내가 무시하는 동안에도 변화는 멈추지 않고 계속 자라기 때문입니다.
지훈 씨가 후배의 말수가 줄었을 때 커피 한 잔 하자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때는 대화 한 번이면 풀릴 고민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나 퇴사 통보를 받았을 때는 어떤 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미 다른 회사와 계약까지 마친 뒤였으니까요.
기회도 똑같습니다. 작을 때 알아챈 기회는 나만의 기회가 되지만, 모두가 알 만큼 커진 기회는 이미 모두의 것입니다. 신호가 작을 때는 손쓸 방법이 많고 비용도 적습니다. 신호가 커져서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꾸 "별일 없겠지"라고 말할까요? 그 말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신호를 들여다보면 할 일이 생깁니다. 후배와 불편한 대화를 해야 하고, 가게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하고, 미뤄 둔 문제를 마주해야 합니다. 귀찮고 두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별일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별일 없을 거야"라는 판단으로 슬쩍 바꿔 버립니다.
하지만 바람은 사실이 아닙니다. "별일 없겠지"는 상황을 살펴보고 내린 결론이 아니라, 살펴보지 않으려고 하는 말일 때가 많습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마음은 편해지지만, 변화는 그 사이에도 계속 자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창한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뭔가 작게 달라졌다고 느껴질 때, "별일 없겠지" 대신 "무슨 일이지?"라고 한 번만 물어보세요. 그 질문 하나가 작은 신호를 붙잡는 손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 더 기억해야 합니다. 감정이 알려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늘 늦습니다. 느껴지지 않는 변화는 내가 먼저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 방법은 다음 편에서 이어가겠습니다.
지훈 씨는 그 일 이후로 습관이 하나 생겼다고 합니다. 팀원의 작은 변화가 보이면, 그 주가 가기 전에 꼭 커피 한 잔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붙잡은 대화 덕분에 두 번의 퇴사를 막았다고 합니다.
큰일은 갑자기 오지 않습니다. 작은 신호를 지나쳐서 커진 것뿐입니다.
Q. 작은 일 하나하나 다 신경 쓰면 걱정만 늘지 않나요?
걱정하는 것과 확인하는 것은 다릅니다. 걱정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머릿속으로 키우는 것이고, 확인은 한 번 들여다보고 실제로 어떤지 아는 것입니다. 오히려 작은 신호를 그냥 두면 "혹시..." 하는 찜찜함이 계속 남습니다. 한 번 확인하면 걱정은 줄어듭니다.
Q. 실제로는 별일 아닌 경우가 훨씬 많지 않나요?
맞습니다. 대부분은 정말 별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확인하는 데 드는 비용은 커피 한 잔, 질문 한 번 정도로 작습니다. 반대로 그중 하나를 놓쳤을 때 치르는 비용은 아주 큽니다. 화재경보기가 대부분 오작동이어도 우리가 끄지 않는 이유와 같습니다.
Q. 아무것도 못 느끼는 변화를 어떻게 알 수 있죠? 느껴지지 않으면 알 방법이 없잖아요.
기다리기만 하면 알 방법이 없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느껴지지 않는 변화는 내가 먼저 찾아가서 확인해야 합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다음 편의 이야기입니다.
Q. 결국 운 아닌가요? 큰일 날 사람은 나고, 안 날 사람은 안 나는 거죠.
운이 작용하는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운이 나빴다"고 말하는 일의 상당수는, 되짚어 보면 작은 신호를 잡았느냐 놓쳤느냐의 차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일을 겪고도 누군가는 미리 대비하고, 누군가는 뒤늦게 당합니다. 그 차이를 운으로만 돌리면 다음에도 같은 일을 겪게 됩니다.
Q. 이미 큰일이 터져 버렸다면, 이제 늦은 건가요?
그 일을 막기에는 늦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끝난 건 아닙니다. 큰일을 겪은 사람은 그 앞에 어떤 작은 신호가 있었는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걸 되짚어 보는 순간, 다음 신호를 알아보는 눈이 생깁니다. 지훈 씨처럼요. 아픈 경험이 가장 확실한 공부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