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가 내 삶에 들어왔다.

내가 요가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

byNaN누구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아이가 일곱 살 되던 해, 함께 떠났던 북유럽 스톡홀름의 어느 작은 동네 놀이터였다.


그날따라 비둘기 똥을 두 번이나 맞은 날이었다. 남들에겐 불행일지 모르겠지만, 어디서 들었는지는 몰라도 새똥을 맞으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을 굳이 굳이 믿는 나였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물컹한 흔적을 닦아내며 아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자그마한 체구의 한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북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한국인을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유명 관광지도 아닌 현지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로 가득 찬 놀이터에서 들려온 한국어는 낯설면서도 반가웠고, 한편으로는 어색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함께 자리를 하며 서로 어떻게 이 자리에 있게 된 건지 설명하며 서로를 알아갔다. 그녀는 스웨덴에 본사를 둔 남편의 사업 일로 온 가족이 1년에 한 달 정도 스톡홀름에 머무는 중이라고 했다. 약간 내성적인 나와 달리, 그녀는 스스럼없이 다가올 줄 알면서도 나긋나긋한 다정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 아이보다 세 살 어린 남아가 있는 엄마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된 만남으로, 우리는 스톡홀름에서 미드서머를 함께 보냈다. 그녀와 그녀의 아이는 우리의 마지막 일정이던 핀란드까지 가보고 싶다며 동행했고, 타국에서의 진득한 만남은 특별함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었다.


낯선 타국에서 시작된 인연은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이어졌다. 시간이 흘러 그녀의 집을 인테리어 해 주며 우리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당시 그녀는 요가 지도자로서 첫발을 내딛던 참이었고, 새로 단장한 집 거실에서 작게 첫 요가 수업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그녀의 첫 번째 수강생이 되었다. 나 한 사람으로 시작했던 그 작은 거실은 입소문을 타며 조금씩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녀가 이사를 떠나기 전까지, 조용히 자신의 매트 위에서 함께 몸을 움직이고 호흡을 나누었던 시간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운동으로서의 요가가 아닌, 완전히 다른 의미의 요가로 다가왔다.


그 무렵 서점에서 우연히 만났던 바카라도 기억이 난다. 류시화 시인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였다.

나는 ‘사람들은 이유가 있어서 우리 삶에 나타나고, 때가 되면 우리는 그 이유를 알게 된다.’라는 구절이 담긴 챕터를 가장 좋아한다.

비둘기 똥을 두 번이나 맞았던 그 우연한 하루에 만난 그녀, 그녀를 따라 내 삶에 찾아온 요가, 그리고 류시화 시인의 바카라.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은 삶이 나를 조용히 밀어붙였던 어떤 순간들이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삶의 속도를 늦추고 방향을 틀게 만들었던 그 다정한 밀침들. 그 작은 힘들이 있었기에 비로소 내가 걸어가야 할 진짜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다.

저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떤 기점을 만나게 된다.

예전의 나는 우리 모두가 단 하나의 거대한 트랙 위에 놓여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억울했고, 화가 났고, 슬펐다. 나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 더 멀리 가는 사람, 나를 제치고 앞질러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만 보였다. 뒤는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앞만 보며 조급해했다.


하지만 요가가 삶에 들어오고 걸음을 멈추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멈추고 또는 느리게 걸으면서,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각자만의 레일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같은 하나의 트랙 위에서 경쟁하던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 고유한 레일이 있었고, 그 모양도, 풍경도 다 달랐다. 누구의 잘못도, 누구만의 특별한 행운도 아닌, 그저 어쩌다 보니 자신만의 레일 위에서 각자의 속도로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멈추어 서서 관찰하지 않았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길이었다. 그 멈춤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앞만 보면 종종걸음을 치며 화가 난 채로 살았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요가는 내 삶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