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남긴 사람들>

토종씨앗, 문명을 묻다. 01

by호시우행

가을걷이가 끝난 마당 한쪽에 마른 콩 줄기들이 수북이 쌓인다. 도리깨질 소리가 멎고 꼬투리가 갈라지면 콩알들이 멍석 위로 흩어진다. 흩어진 알갱이들은 한눈에도 저마다의 생김새를 갖고 있다. 둥글고 단단하여 윤이 나는 알이 있는가 하면, 납작하게 눌리거나 표면이 쭈그러진 것도 섞여 있다. 노란 빛깔이 고르게 도는 것 사이로 검은 굵은 줄무늬가 그어진 알, 푸른 기운이 남아 있는 알이 제각각 존재감을 드러낸다. 벌레가 살짝 쓸고 간 자국, 가뭄에 제대로 여물지 못하고 속이 빈 알갱이까지 한자리에 모인다.


손끝이 멍석 위를 천천히 쓸어내릴 때마다 콩의 운명이 갈라진다. 한쪽으로 밀려난 콩은 즉시 자루에 담겨 방앗간이나 부엌으로 향하지만, 빛깔이 또렷하고 꼬투리를 끝까지 버텨낸 흠 없는 콩들은 작은 헝겊 주머니나 됫박 안으로 모인다. 같은 밭, 같은 줄기에서 태어난 알갱이들이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한쪽은 올겨울 식탁 위를 채울 식량이 되고, 다른 한쪽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내년 봄의 밭으로 돌아간다.


이 선발의 순간마다 농사의 가장 무거운 판단이 개입한다. 한 끼를 채우기 위해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정하는 일보다, 다음 계절을 위해 무엇을 먹지 않고 남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에 더 긴 심사숙고가 들어간다. 씨받이 콩을 고르는 일은 눈에 보기에 단정하고 깨끗한 알을 골라내는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유난히 비가 적어 가뭄이 심했던 여름을 끝내 견뎌냈는지, 갑작스러운 가을 서리에도 잎을 떨어뜨리지 않고 줄기를 세웠는지, 수확할 때까지 꼬투리가 스스로 터지지 않고 알갱이를 품고 있었는지를 종합적으로 복기하는 과정이다. 밭에서 살아남은 수많은 개체 가운데 어떤 형질을 내년의 흙으로 되돌려 보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순간이다.


단 한 해의 선택만으로 밭 전체의 모습이 획기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같은 기준의 선택이 십년, 수십 년에 걸쳐 한 밭에서 반복되면 작물의 성격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식물 집단 내부에는 본래 눈에 보이지 않는 유전적 변이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사람은 그 다양성 가운데 자신들의 노동력과 토양, 식생활에 부합하는 성질을 가진 개체를 더 자주 골라 씨앗으로 남긴다. 고selected된 형질이 다음 세대의 전체 작물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그렇게 조금씩 늘어난다. 사람의 눈과 손을 거치는 동안 식물의 생물학적 모습과 생태적 특성도 은밀하고 확실하게 변해간다. 씨앗을 남기는 행위가 단순한 곡식의 보관을 넘어, 식물의 진화와 세대교체에 직접 개입하는 농업 문명의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태초에 야생 식물이 인간의 작물로 변해온 과정도 이러한 선택의 누적에서 비롯되었다. 들판에 자라던 야생 콩은 본래 꼬투리가 익으면 스스로 비틀려 터지면서 씨앗을 멀리 튕겨 내는 성질, 즉 탈립성(脫粒性)을 지니고 있었다. 씨앗을 넓게 퍼뜨려 종족을 번식시키려는 식물 생존의 전략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입장에서는 수확하기도 전에 바닥으로 쏟아져 버리는 씨앗을 거두기가 힘들었다. 수확철이 지나도록 꼬투리를 꼭 다문 채 알갱이를 품고 있는 변이 개체가 발견될 때마다 사람들은 그 씨앗을 우선적으로 거두어 자신들의 거주지 주변에 뿌렸다. 꼬투리가 쉽게 터지지 않는 유전적 특성, 낟알의 크기가 유난히 큰 특성, 껍질이 두껍지 않아 물에 잘 불어나는 특성이 그렇게 선발되었다. 식물은 들판의 야생성을 조금씩 덜어내는 대신 인간의 손길과 밭이라는 보호막을 얻었다.


이 변화는 인간의 일방적인 지배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땅에 뿌려진 씨앗은 가뭄과 폭우, 예고 없는 병충해와 땅의 박함이라는 자연의 시험대를 매 계절 통과해야 했다. 배수성 좋은 모래밭과 물기가 오래 남는 진흙밭에서 똑같은 씨앗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적응했다. 농부는 해마다 자연이 걸러내고 남겨놓은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 자기 손으로 2차 가름을 수행했다. 자연환경에 의한 적응적 선발과 인간의 필요에 의한 의도적 선발이 하나의 밭 안에서 겹쳐지며 수많은 지역 재래종이 탄생했다.


한곳에 오래 뿌리를 내린 씨앗일수록 그 지형과 기후의 흔적을 짙게 품었다. 산간 지역의 짧은 여름 동안 서둘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 콩과, 따뜻한 평야 지대에서 가을 늦게까지 잎을 피우며 수확량을 늘리는 콩은 유전적 결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강풍이 자주 불어오는 해안가에서는 키가 자라기보다 줄기가 굵고 낮게 엎드리는 개체가 남았고, 가뭄이 잦은 천수답에서는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는 형질이 선택되었다.


그러나 밭의 자연 조건만이 씨앗을 결정하는 유일한 잣대는 아니었다. 그 곡식을 거두어 무엇을 만들어 먹는지, 어떤 방식으로 겨울을 나며 저장하는지, 그 집안의 노동력이 작물의 재배 과정을 감당할 수 있는지에 따라 씨앗의 향방이 달라졌다. 식탁의 필요와 밭의 현실은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 있었다.


삶의 양식은 씨앗을 거쳐 다시 밭으로 순환했다. 구수한 된장이나 두부를 만들 때 잘 물러지는 콩을 원한다면 찌거나 삶았을 때 부드럽게 무르는 알갱이를 골라 씨받이로 삼아야 했다. 밥에 넣었을 때 단맛이 도는 콩, 오랫동안 항아리에 담아두어도 벌레가 덜 생기는 콩을 가려내는 감각은 밭이 아닌 부엌에서 다듬어졌다. 시장에 내다 팔 목적이 아니라 식구들의 밥상에 올릴 작물이라면 모양이 조금 울퉁불퉁하거나 수확량이 다소 적더라도, 입맛에 맞고 요리하기 편리한 형질이 우선시되었다. 어느 해에는 알이 많이 맺히는 포기가 귀하게 대접받았지만, 지독한 가뭄이 들이닥친 해에는 몇 알 맺히지 않더라도 끝까지 말라 죽지 않은 포기가 씨앗의 자리를 차지했다. 씨앗을 선택하는 기준은 단일한 수치나 수확량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단순화될 수 없는 삶의 정밀한 결들을 담고 있었다.


이처럼 오랫동안 특정 지역에서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온 씨앗에는 장소와 삶의 고유한 흔적들이 아로새겨졌다. 토양과 기후, 농사 도구의 형태, 그리고 지역 고유의 음식 문화가 인간의 손을 매개로 씨앗의 유전자 속에 각인되었다. 그렇다고 한 지역의 씨앗이 담장 안에만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장날에 들른 옆 동네 상인과의 물물교환을 통해, 혹은 이웃집과의 품앗이 과정에서 씨앗은 끊임없이 경계를 넘었다. 딸이 낯선 외지로 시집을 갈 때 친정 어머니가 밑천처럼 헝겊에 싸서 건네준 콩 몇 알은 새로운 토양과 기후를 만나며 수년에 걸쳐 그곳에 맞는 형태로 스스로를 변화시켜 갔다. 한자리에 머문 시간의 깊이와 이동하며 섞여 들어간 거리의 넓이가 씨앗 속에 동시 다발적인 흔적을 남겼다.


오늘날 우리가 '토종씨앗'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유전자원 안에는 이처럼 복합적인 시간이 켜켜이 스며 있다. 토종을 그저 '먼 옛날부터 변함없이 내려온 고정된 씨앗'으로 단편화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반도의 자연 생태계에서 스스로 적응해 온 야생 자생종이 있는가 하면, 외래에서 들어왔으나 수백 년 동안 농가에서 재배·선발되며 한국의 토양과 음식에 완벽히 적응한 재래종도 존재한다. 기원과 출발점은 다를지라도 그 씨앗들이 걸어온 역사 속에는 땅과 인간이 맺어온 끈끈한 관계의 서사가 동일하게 흘러간다. 최초에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하는 질문 못지않게, 누구의 손을 거쳐 어디에서 오랫동안 삶을 이어나갔는가가 중요해진다.

그 씨앗들을 가려내고 이어온 농민들에게는 현대의 정밀한 육종표나 유전자 분석 장비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느 포기가 가뭄에 강했는지, 어느 열매가 말랐을 때 색과 향을 잃지 않는지, 어느 콩이 메주를 쒔을 때 깊은 풍미를 내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수많은 계절을 밭에서 보내며 온몸으로 체득한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과 글로 명쾌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미세한 차이조차, 수확철이 다가오면 농민들의 눈과 손끝은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었다.


씨앗을 고르는 농민의 손은 단순한 보관자의 손이 아니었다. 밭에서의 한 해를 기억하는 손이었고, 열매의 묵직함을 가늠하는 손이었으며, 병든 줄기를 미리 알아채고 솎아내는 손이었다. 무엇보다 먹을 곡식과 내년에 심을 씨앗을 준엄하게 갈라내는 손이었다. 그 손은 과거의 유물을 고대 박물관처럼 지키고 보존한 것이 아니라, 매 계절 새로운 농사의 생태적 조건을 직접 조형해 가고 있었다.


농민을 단순한 '씨앗의 보존자'로만 칭하는 데에는 엄연한 한계가 존재한다. 보존이라는 단어 속에는 이미 완성된 대상을 변형 없이 지켜낸다는 정적인 의미가 강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농가의 밭을 거쳐 간 씨앗들은 단 한 번도 정지해 있던 적이 없었다. 끊임없이 좋은 형질이 선발되고 불리한 형질은 자취를 감추었으며, 인근 지역의 새로운 종자와 섞이면서 새로운 유전적 조합을 만들어냈다. 농민은 유물 보관소의 관리인이 아니라, 살아있는 밭이라는 실험실에서 끊임없이 다음 세대의 작물을 재창조해 온 육종가였다.


이러한 선택과 선발의 역사는 문헌이나 문서로 거의 남지 않았다. 어느 밭의 어떤 포기에서 콩을 받았는지, 가족의 입맛에 맞춰 왜 특정한 열매를 씨받이로 남겼는지 일일이 기록하는 농민은 없었다. 거두고, 말리고, 요리하고, 남기는 일상 자체가 농사일의 당연한 순환이었기 때문이다. 밭에서 거둔 작물을 부엌으로 가져와 음식을 만들고, 그 맛과 저장성을 평가한 뒤 다시 씨앗을 가려내는 암묵적 지식은 공식적인 학문의 이름으로 체계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판단들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름 없는 농민들의 수없이 반복된 손길이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작물들의 형태를 완성했다.


부엌을 지키던 이들의 감각도 씨앗의 형체 속에 깊게 스며들었다. 밭에서 작물을 기르고 수확하는 노동과, 그것을 솥에 넣고 삶아 가족의 입으로 들어가게 하는 노동은 독립된 과정이 아니었다. 수확량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장을 담갔을 때 깊은 맛이 나지 않거나 껍질이 너무 단단해 조리하기 어려우면 씨앗으로서의 수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씨앗의 역사는 밭이라는 공간을 넘어, 밭과 부엌 사이에 놓인 긴 통로 위에서 농민과 부엌의 손길이 함께 만들어낸 공동의 결과물이었다.


이러한 선발 과정이 언제나 생물학적 다양성을 늘리는 방향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특정한 형질—예컨대 수확량이 많거나 맛이 단맛에 집중된 개체—만을 지속적으로 고르다 보면, 그 작물이 본래 가지고 있던 다양한 야생적 형질이나 여타 저항성 유전자는 점차 사라지기도 했다. 특정 지역의 환경에 지나치게 완벽히 적응한 씨앗은 기후가 갑자기 변하거나 새로운 병충해가 밀려왔을 때 속수무바카라으로 무너지는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일은 농가 선발의 역사에서도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씨앗을 남기는 행위는 미래의 가능성을 넓혀가는 과정인 동시에, 특정 가능성만을 선택하고 나머지를 배제하는 좁혀가기의 과정이기도 했다.


현대의 종자 과학과 육종 기술은 이러한 선택의 과정을 극도로 정밀하고 계획적인 체계 속으로 끌어들였다. 유전학적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원하는 형질을 가진 계통을 인위적으로 교배하고, 병충해 저항성과 균일한 품질, 대량 유통에 적합한 저장성을 극대화한 현대적 품종을 만들어낸다. 농민이 자기 밭에서 매년 씨앗을 골라내야 하는 번거로운 노동에서 벗어나, 품질이 보장된 상업 종자를 구입해 안정적인 수확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은 현대 농업이 안겨준 커다란 성과다.


이와 함께 씨앗을 선택하는 주도권과 장소도 커다란 이동을 경험했다. 각 농가의 마당과 밭에서 이루어지던 소박한 선발 작업은 이제 첨단 연구기관의 유전자 분석실과 글로벌 종자기업, 국가의 농업 정바카라과 거대한 시장의 요구 속으로 옮겨갔다. 농민 개개인의 선택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작물의 미래 형질을 결정짓는 강력한 힘이 밭의 울타리 너머로 대폭 이동한 것이다. 어떤 작물을 새로 개발할 것인지, 어떤 성질을 우수한 가치로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이 연구자와 기업의 손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옛 마당에서 도리깨질을 끝내고 콩을 골라내던 농민의 손과, 오늘날 첨단 연구소에서 유전자를 분석하며 신품종을 육성하는 과학자의 손은 외형상 전혀 달라 보인다. 사용하는 지식의 도구도, 선발의 규모와 정밀함도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두 손은 모두 동일한 원초적 질문 앞에 서 있다.


'과연 어떤 형질을 살아남겨 다음 세대로 전달할 것인가.'

차이가 있다면, 그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리는 주체가 누구이며, 어떠한 가치 기준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는가에 있을 뿐이다.


씨앗을 남긴다는 행위는 단순한 농사 자재의 보관을 넘어선다. 과거의 농민들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종자를 그저 수동적으로 전달하기만 한 중간 전달자가 아니었다. 자기 밭의 흙을 견디는 개체를 가려냈고, 식구들의 식탁을 풍요롭게 할 맛을 찾았으며, 다가올 계절의 농사를 지탱할 한 줌의 씨앗을 주체적으로 골라냈다. 그 선택들이 모여 사람을 따라 이동하고 다른 지역의 씨앗과 섞이면서 문명과 함께 호흡하는 씨앗의 역사가 완성되었다.


가을 마당에 펼쳐진 수많은 콩 가운데 무심코 한 알을 집어 들었을 때, 그 작은 알갱이 자체는 흔한 농산물 중 하나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한 알이 뿌리를 내렸던 밭의 토양, 견뎌낸 폭우와 가뭄의 계절, 꼬투리를 다물고 있던 포기의 생명력, 그리고 먹을 것과 심을 것을 가르던 농민의 엄정한 손길을 추적해 나가기 시작하면 그 안에 담긴 서사는 한없이 깊어진다. 한 알의 씨앗 속에는 단 한 해의 계절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수십, 수수께끼 같은 세월 동안 반복되어 온 인간의 선택과, 그 선택을 가능하게 했던 밭과 부엌의 시간이 겹겹이 축적되어 있다.


씨앗을 남긴 사람들은 흘러간 과거를 보존하기 위해 씨앗을 모았던 것이 아니다. 당장 다가올 내년의 농사를 지어 가족을 살려내야 했기에 씨앗을 남겼다. 씨앗을 남기는 노동은 지나간 계절의 기억을 가슴에 품는 일인 동시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오지 않은 계절을 향해 삶의 가능성을 건네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였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1화프롤로그 <씨앗을 보면 문명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