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사에 도착하다

가족이 함께하는 그곳, 집

byDottie

우리는 12월 말 집을 내놓았다.

시댁에 지내다가 발령일을 맞추려 1월말 남편이 튀르키예로 먼저 출국했다.

남편은 다시 한국에 들어와야하는 일정이므로

나는 일단은 남편이 다시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한국에 남기로 했다.


나는 회사에 1월까지 출근했고, 시댁에 지냈다.

당분간 다시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과 점심 저녁 빽빽하게 약속을 잡아서 만났다.


그럼에도 집에 돌아오면, 뭔가 공허하고 허전했다.

시부모님께서 정말 잘해주시지만, 눈치를 주시는 것도 아니지만 어딘가 공허했다.


3월말, 남편이 급한 일을 마치고 한국으로 다시 들어왔다.

남편은, "터키 음식은 입에 잘 맞을 테니 한식은 전혀 안 챙겨가도 된다"며 호기롭게 떠났었다.


다시 돌아온 그는,

한 달 내내 빵만 먹다 질려서 살이 빠졌다.

20대 초를 연상시키는 날렵한 턱선을 가지고 돌아왔다.


"너는 가보면 나에게 고마워할거야."

남편은 김치, 라면, 된장, 비빔장 소스, 카레 가루 등 한국음식을 마구 주문해서 이민 가방에 가득 담았다.


홀로 타지에서 한달 동안 버텼던 그의 외로움과 허기일 터.


그렇게 우리는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이스탄불 공항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를 잇는 경유지로 유명하기도 해서 공항이 정말 컸다.


부르사는 이스탄불에서 두시간을 더 가야한다.



이스탄불에서 부르사로 가는 길

예전에는 이스탄불에서 부르사로 가는 도로가 없어 배로만 갔다고 한다.

이제 게브제에서 다리가 생겨서 육로로도 갈 수 있다.

10시간 비행기를 타고 또 차를 타는 건 꽤 피곤한 일이었지만, 강동 우리집에서 인천공항 까지도 2시간인데, 이정도면 갈만하지라고 마음을 달랬다.


"튀르키예? 이스탄불로 가는거야?"

친구들이 물을 때, "아니 부르사래. 그런데 이스탄불에서 그렇게 먼 도시는 아니고 꽤 큰 도시래"

그렇게 대답하면서 나도 생전 처음 들어본 도시에 가서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나오자 낯선 풍경이었다.

이스탄불 공항밖 풍경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모스크가 보였다.

식생은 한국과 달리 조금 더 오래된 이끼가 많은 땅이었다.

한국에서는 늘 초조하고 마음이 급했는데, 부르사로 가는 길은 정말 고요했다.


도착해보니 집은 정말 텅 비어있었다.

한국에서 컨테이너로 짐을 보낸 게 12월 말,

튀르키예에 집을 구해야 한국에서 짐이 출발하고 출발로부터 튀르키예에 도착하기까지는 3개월이 걸린다.

1월말에 집을 구했으니, 짐은 4월이 지나야 도착할 거다.


우리 둘다 첫 해외 이주라,

얼마나 길게 짐없이 버텨야하는 지도 모르고

이민 가방에는 옷만 잔뜩 챙기고 나머지는 전부 컨테이너에 보내버렸다.


한국에서 언제 도착할 지 모르는 가구가 문제였다.

남편은 안방에서 매트릭스만 사서 자고, 음식은 바닥에 앉아서 먹고 있었다고 했다.

물론 나도 자취할 때는 바닥에 앉아서 식사하기는 했지만

안락했던 우리의 집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주말 아침, 이케아에 함께가서 식탁을 샀다.

집에와서 식탁을 조립하고 음식을 만들었다.


오랜만에 마주 앉아 함께하는 첫 식사,

각자 혼자 떠돌다가 함께 만나서 식사를 하니 이제야, 집 같았다.

아무리 낯설어도, 우리가 함께하는 게 집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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