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내는 글쓰기
글을 쓰다 보면 유독 애착이 가는 문장이나 문단이 생기기 마련이다. 처음 그 문장을 빚어냈을 때 무릎을 탁 칠 만큼 마음에 들었거나, 유난히 반짝이는 표현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글이 완성된 뒤에 찾아온다. 그토록 아끼던 애착 문장이 글 전체의 주제에 흡수되지 못하고,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겉도는 순간을 마주할 때다. 그 아까운 문단을 도려내야만 비로소 글이 완성되는 얄궂은 상황 앞에서, 글 쓰는 이의 고민은 깊어진다. 어떻게든 그 부분을 살려둔 채 글을 마무리할 방법을 찾아 이리저리 문장을 고치며 밤새 뒤척여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은 오고야 만다.
과감히 그 문장을 덜어낸다. 못내 아쉬운 마음에 새 문서 창을 열어 조심스럽게 옮겨 붙여둔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소중했던 에피소드와 문장을 덜어내자마자, 신기하게도 글의 주제가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살아난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밖에 없는, 아프고도 신비로운 경험이다.
나는 글쓰기의 덜어내기 경험을, 집 안 창고를 정리하며 똑같이 느낀 적이 있다. 그때 썼던 오랜 기록을 꺼내어 보며, 글을 덜어내는 과정과 삶의 묵은 짐을 비워내는 일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더 깊은 곳에 들어 있던 물건을 끄집어 올리고, 바닥에 부려 놓을 때마다 나는 몰라보게 성장했다. 대부분 불안과 착각, 집착과 청승이 콜라보된 결과물이었는데, 그건 흡사 삶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비우고 정리한 일련의 과정은 집착으로 움켜 쥔 것을 과감히 놓게 했다. 하루 17시간 요리하던 과거의 시간, 코로나 시기, 불안 때문에 스스로 머리칼을 자른 기괴한 시간을 오려냈다.
내게 특별한 물건이 타인에게도 그럴 거 란 착각엔 오만함이 담겼고, 순진하다 못해 미숙한 내 모습이 여과 없이 투영됐다.
=이 구절은 퇴고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독자의 시선으로 내 글 바라보기’와 맞닿아 있었다. 작가의 감정이 가득 묻은 초고는 창고 속 물건처럼 주관적인 애착으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객관적인 바닥에 부려놓고 타인의 눈으로 직시할 때 비로소 진짜 글쓰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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