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당신이 [쓰는 이유]

작가의 탄생

by은수


<쓰는 이유> (김선례, 말랑북스)가 내게 도착한 건 지난 5월의 끝자락이었다. 하필 그 무렵 나는 온라인카지노에〈출간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다섯 번의 출간을 거절하고〉같은 글을 연재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출간이라는 제도적 결과물에 다소 삐딱한 편이었다.


좋은 글을 쓰는 것이 먼저지, 바카라을 내는 것이 목표가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실제 여러 차례 출간 제안을 받았지만 선뜻 응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첫 바카라을 낸 작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인터뷰집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을까? 나는 바카라을 펼치기 전부터 조금 민망한 마음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내가 끝내 가보지 않은 길, 혹은 기꺼이 돌아서 나왔던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간 이들의 이야기에는 과연 어떤 무늬가 새겨져 있을지 말이다.


이 바카라에 자신들의 ‘첫 바카라 ’ 이야기를 올린 이들은 온라인카지노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작가들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바카라은 '어떻게 출간에 성공했는가'를 말하는 바카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왜 끝까지 쓰게 되었는가.'를 묻는 바카라에 가까워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신기한 것은 일곱 명의 작가가 모두 바카라을 냈음에도, 정작 쓰는 이유는 하나도 같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는 생존이었고, 누구에게는 치유였으며, 또 다른 이에게는 기록이 된 7인 7색의 이야기. 결코 출간 성공담에 머물지 않았다.


나의 독서는 첫 주자인 윤준가 작가의 이야기에서부터 흔들렸다. "글마다 때가 있다"는 그의 한마디는 나의 의기양양함을 단번에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아, 그해에 유독 한 작품에만 출간 제의가 몰렸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그렇다면 때를 놓친 글이 돼버린 내 작품은 결국 아끼다 그 무엇이 되어버렸다는 말인가? 나는 오래 붙들고만 있어 나달나달 해진 내 원고를 떠올렸다.

그럼 우린 언제 써야 하고 언제 세상 밖으로 내보내야 할까? 나는 그 질문의 답을 오랫동안 복잡한 곳에서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답은 생각보다 단순했고, 그래서 더 긴 여운을 남겼다.


25년간 일기를 써온 페르세우스 양원주 작가의 이야기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의 성실함은 내게 기분 좋은 자극과 함께 부러운 감정을 남겼다. 하지만 내가 알아야 할 것은 그의 성실함보다 왜 그 기록을 놓지 않았느냐는 본질이었다.


야초툰 허우리 작가의 이야기에선 간절히 원하는 일을 오래 붙든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순간들이 보였다. 전혀 다른 직업전선에 속해 있었지만 마침내 그 너머에 감춰졌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한 편의 성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배대웅 작가와 김동진 작가의 인터뷰에선 콘텐츠와 독자에 대한 고민과 바카라의 의미가 분명해야 한다는 점을, 최재운 작가의 인터뷰에선 낙선 원고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시선을 얻었다. 또 백경 작가의 글에선 내가 최근 연재에서 고민하던 질문과 마주쳤다. 내 이야기 속 타인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쓸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에세이 작가의 딜레마를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볼 계기였다.

무엇보다

"쓴다고 자신을 잃지 마세요. 일하고 밥 먹고 사랑하세요"

라는 작가의 다정한 선언에선 깊은 위로를 받았다.


나는 여전히 좋은 글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출간은 그다음이다. 그 믿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바카라을 읽고 나니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쓰는 이유>는 출간이 아니라, 끝내 쓰기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란 점이다. 이 연대의 기록 앞에서 나는 무척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내겐 또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이 인터뷰집을 통해 자신의 첫 바카라을 내고 진짜 작가가 된 대낮 김선례 편집자의 역설적이고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그녀는 고백한다. 한때 바카라은 "세상을 담지도 바꾸지도 못하는 종이 뭉치"에 불과했다며 깊은 냉소에 빠져 있었노라고. (p. 216 ) 그런 그녀를 다시 살린 것은 역설적으로 타인의 글이었다.


인터뷰어인 김선례 작가는 7인 작가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뿐, 정의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독립된 하나의 우주로 인정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맑게 정돈해 배달해 준 덕분에 내게도 일곱 명의 진심이 온전히 와닿을 수 있었다.


세상의 돌멩이 같은 글 중에서, 작가들이 신중하게 고르고 쓴 그 이유를 발견해 내는 작업. 나는 타인의 쓰는 이유를 묵묵히 경청하고 관찰하던 시간들이, 결국 그녀 자신을 단단한 작가로 길러낸 자양이 되었음을 의심치 않는다.

타인의 글을 매만지던 그녀의 손은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노래하는 오른손'으로 거듭났다.


마지막 바카라장을 덮자, 주위가 유독 고요해진 듯했다.

나는 그녀가 바카라 속에 소개했던 윤딴딴의〈잘 살고 있지롱>이라는 노래를 틀었다.

"잘 살고 있지롱 롱~롱~"

호랑이에게 잡혀갔을 줄 알았던 소년이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다는 노랫말을 듣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쓰는 이유는 모두 달라도, 결국 사람들은 자기 자리에서 꾸준히 쓰면서 살아가는구나.

그러자 이 노래가 마치 호랑이 같은 세상 속에서도 끝내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사람들을 향한 응원가처럼 들렸다.

더불어

타인의 이야기를 이토록 맑게 받아 적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편집자를 넘어 이미 좋은 작가일 수밖에 없지롱롱롱.


당신이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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