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과 석사 과정 면접에 다녀와서

2026. 05. 15. 금. 전주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by정이어린

생태인류학 수업을 열심히 들으면서 매주 쓰는 쪽글을 여기에 올리려고 계획했으나... 마음에 드는 쪽글은 고사하고 쪽글을 제대로 완성한 적이 1~2주 이후로는 드물다. 8주차까지는 매번 수업 전날에 벼락치기로 논문을 읽다가 지쳐서 쪽글을 못 써 가고, 최근에는 발제를 완성해가지 못하는 사고를 치기까지! 개과천선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마감을 미리미리 해보겠다고 다짐도 하고 주변에 감사한 친구들도 많이 도와주고 있지만, 여전히 겨우 허덕이며 쪽글을 쓰는게 쉽지 않다. 이렇게까지 매주 논문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힘든 일인 것인가...


바카라임질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바카라임질 수 있는 행동, 약속. 욕망.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작은 일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기. 한 번에 여러 일들을 해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기. 지금까지는 크고 감당하기 어려운 말을 던져두고 내 삶이 거기에 맞춰나가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내 삶과 하루에 대한 시간 감각이 엉망이 되었다. 무언가에 끌려다니는 삶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민폐를 끼친다. 그동안 의식적으로 실수를 용인하고 나 스스로에게 관대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최소한의 선을 다시 그어야겠다. 하루하루의 시간과 한 주, 한 달, 1년의 시간의 밀도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 필요하다.

2026년 5월 7일 메모.


너무나도 고마운 친구의 제안으로 매일매일의 계획을 세우고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훈련을 매일매일 하고 있다. 내 일들을 내가 감당하지 못하고 이렇게 챙김을 받는게 정말 고마우면서도 부끄럽다. 꾸준히 꾸준히 성장해야지. 풀어져 있는 몸의 리듬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가야만 공부든 뭐든 죽이든 밥이든 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여기에 맘에 들게 완성한 무언가를 올리기보다는 변화하는 그때 그때의 모습을 기록해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일지를 쓴다는 마음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의 양을 조절하려 노력하는 것이 곧 나와 내 주변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늘 내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많은 일들을 벌이고 그걸 바카라임지려 애를 쓸 때, 나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가며 삶의 리듬을 맞춰가는 존재들도 불안해지고 힘들어진다. 매번 생태인류학 쪽글을 벼락치기하며 밤을 새고 계획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한다고 까페에 하루 종일 죽 치고 앉아 있고, 그러면서 약속들을 쉽게 어기고 생활에 필요한 노동들을 함께 사는 짝꿍에게 전가하는 경우들이 생겨났다.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공부고 뭐고 때려치워야지... 오히려 내가 먼저 빈 시간을 충분히 만들어내는게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일과 삶의 구분이 분명치 않아서 더 그랬겠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그러면 안 된다. 앞으로도 계속 덜어내고, 포기하고, 단념하는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그게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주변을 돌아보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연구자가 된다는 건 뭘까?


지난 며칠 간은 전북대학교 인류학과 지원을 앞두고서 연구계획서를 쓰느라 몸의 리듬이 많이 깨졌다. 그래도 초안을 어떻게 어떻게 서류 마감 기한 이틀 전에 완성했다! 수정을 마지막 날 새벽에 몰아서 하느라 힘들었지만... 이걸 쓰는게 계기가 되어 석사 과정에 지원하는 마음가짐을 다져볼 수 있었던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대답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정말 연구자로 살고 싶은지, 연구자로 살아간다는게 어떤 일일지.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이, 직접 해보기 전에는 그 삶이 어떤 삶인지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특히 아르바이트나 단기 일자리만 해본 나로서는 내 일상이 될 무언가를 직접 선택해보는게 처음인지라 기분이 참 묘하다. 지원서를 쓰면서 어떤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등록금 고민으로 대학을 가는 것 자체가 선택지에 없을 때,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대학원을 간다는 상상을 할 수 있었다. 그건 내가 가진 크나큰 자유이다.


한편으로는 연구자라는게 그리 낭만적인 직업은 아닐지도 모른다. 선배 연구자들을 보면 안경을 안 쓰는 사람이 거의 없고, 여러 직업병에 시달리면서도 그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한다. 물론 정년을 보장받은 정규직 교수들은 예외이지만, 인류학자 조문영 선생님이 자조적으로 말했듯이 그런 존재는 한국 슬롯에서 '희귀종'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비정규직 시간 강사이거나, 프리랜서 연구자로 살아간다. 최근에 페이스북에 들어가보면 연구재단의 연구 지원 심사와 관련해 연구자 집단 내의 불평등과 위계에 대해 말들이 많다. '연구자'라는 존재는 그만큼이나 파편화되어 있고, 대학이라는 '연구 공동체'는 내부의 보수적인 위계와 불합리한 실적 평가 기준, 파벌 다툼 등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곳이다. 슬롯학자 조형근 선생님은 자신은 대학의 부정의에 항거하며 강단을 나와서 독립연구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안에서 꿋꿋이 버텨가며 싸우는 이들을 향한 존경을 표현한 적이 있다. 그들은 무엇을 지켜내려 저항하고 있는 걸까.


나는 인문슬롯과학의 여러 학과들이 대학에서 구조조정을 당하여 통폐합되는 시기에 슬롯학과 학부를 다녔다. 경북대 슬롯학과, 대구대 슬롯학과, 계명대 여성학과 등이 사라지거나 통합되었다.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은 학과의 장례식을 빙자한 학술대회를 치르기도 하고, 연서명과 기자회견 등 온갖 방법을 통해 학문의 존립을 지켜내려 했다. 한편, 나 또한 학문의 필요를 잘 느끼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이게 왜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이지, 현장의 고민들과 이 이론들이 어떻게 닿아있는지, 흔히 표현하듯이 '상아탑'을 넘어서지 못하는 고준담론에 그치는 논의들은 아닌지, 한 학자가 한 평생을 바쳐서 쌓아낸 학문 업적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궁금했다. 슬롯과학의 경직된 방법론에 회의를 가지고서 대안적 방법론에 대해 고민한 여러 연구자들의 글을 찾아 읽기도 했다. "내가 만약 연구를 한다면 저 선생님들이랑은 다르게 할 거에요" 이런 오만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지만, 내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기존의 학문장에서 삶을 바친 많은 선구자들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조금씩 느껴가고 있다. 슬롯가 한 명의 연구자를 기른다는 것은, 함께 사는 세계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하나의 거울을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그 '슬롯'는 단일하지 않으며, 어떤 연구는 불평등을 정당화하기도 하고 부정의한 권력에 편승하여 기존 체제의 지속에 기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연구들이 있어서 비판을 하고 또 다른 방식의 연구를 하자고 제안할 수도 있게 된다. 그렇게 끊임없이 대화의 고리를 만들어가는 게 연구이고, 그 연구를 통해서 현실의 고통과 불합리에 대항할 수 있는 껀덕지(?)를 찾아낼 수 있다. 갈등의 순간에 당장의 개입은 어렵더라도, 이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는 도구들을 발견해나가는 것이, 지금의 시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연구의 의미다.


채효정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세계를 살아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연구와 공부에 매력을 느낀 시작이었다. 채효정 선생님이 페이스북에 쓰신 말들을 <먼지의 말>에서 "말이 되지 못하는 말"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정치철학을 공부하시는 분답게 지배하는 이들을 위한 말이 아니라 지배당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현장 연구자'가 되고자 하는 태도를 집착적으로 견지하시는 것이 정말이지 사랑에 빠질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이후에 종교학을 공부하고 계신 유기쁨 선생님의 언어가 알려준 생명의 세계에서 사랑에 빠졌고, 여성학을 공부하고 계신 박이은실(탱자씨)에게서 서로를 돌보는 태도로부터 사랑에 빠졌다. 서로를 돌보는 공부, 아름다움을 지켜내는 공부, 불의에 저항할 수 있는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신 여러 선생님들이 계셨고, 꼭 '연구'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그런 공부를 몸으로 삶으로 살아내는 여러 동료들 덕분에 나 또한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삶과 경험을 통해 치열하게 대화의 씨앗을 만들어내는 일이 내게 참 중요하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서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공부의 의미이자 가치이다. 그게 내게 오늘의 하루을 단단하게 지탱하고 내일의 꿈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물론 직업 연구자가 된다는 것은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이다. 그 세계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그러한 세계를 내게 알려주고 가능하게 해준 공동체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영화를 좋아하다가 영화감독이 된 이든, 요리를 좋아해서 요리사가 된 이든,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 많은 격려를 받았고, 내가 좋은 연구자가 될 거라며 칭찬해주고 머뭇거리는 내게 용기를 가득 넣어준 수많은 이들이 옆에 있어주었다. 내가 받은 선물을 더 많은 이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그럴 수 있는 공부와 말, 행동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면접 이야기


면접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했어야 했나 후회가 되어 말이 좀 길어졌다... 지난 번에도 그랬지만, 면접 시간은 10분 내외로 그리 길지 않았다. 면접실에 들어가자마자 지난 번에 면접을 보신 선생님께서 "뜨끔하네요"라면서, 반겨주셨다. 그리고 지난 번에 떨어진 이유에 대해 그리 진지해 보이지 않았다고 말씀해주셨다. 난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오히려 떨어져서 연구자로서의 진로를 보다 더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어 감사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드리지 못했다.


그 다음에는 평이하게 지원동기를 이야기하고, "학부 성적은 왜 이러냐"에 대해 변명을 좀 하고, 연구계획과 관련해서 피드백을 조금 들었다. 지금 적은 연구계획은 너무나도 광범위하다는 피드백이 많았고, 또 세부적인 연구주제가 고령층이 많은 농촌인 반면에 연구대상은 젊은세대로 적었냐는 말씀도 해주셨다. 나는 생태적 삶을 고민하는 친구들 곁에서 농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해 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고, 하지만 새만금의 어민들이나 농민들에 대해서도 앞으로 더 관심을 가질 마음이라 말씀드렸다. 농민에 대해 고민해온 인류학자 모리스 블로흐를 읽어보라는 조언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특기 사항에 라포를 잘 쌓는 데에 자신이 있다고 적었던 부분에 대해서 한 선생님이 "우리도 다 직업 인류학자인데..." 라면서 "이게 무슨 근거의 자신감일까"하는 듯한 말씀을 해주셨다. 오만하게 보이고 싶은 것은 아니었는데, 계속 더 고민하고 싶은 부분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얼버무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해서 그냥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열심히 하겠다는 이야기... 내가 얼마나 이 지원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왔으며, 잘 부딪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는데 못하고 나와서 찝찝하고 속상했다. 면접 준비를 나름 한다고 했는데... 준비도 잘 해본 사람이 잘하는 것 같다. 준비한 대답들은 하나도 못하고 나왔다. 그래서인지 나와서 힘이 빠져서 벤치에 주저앉아 있다가 보리밥을 먹고 긴장된 몸을 좀 달랬다.


전의령 선생님이 "겸손하게", "들어오면 잘하겠죠..."라고 마지막 코멘트를 주셨고,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제 한자 시험을 잘 준비해야지. 막상 9월부터 전주에 가서 살며 공부한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좀 묘하다. 처음으로 내가 선택한 내 삶이라는 생각인 것 같아 신기하고 잘해보고 싶다는 설렘이 앞선다. 차분하게 준비할 것들을 잘 추스려보아야겠다. 서울의 일들을 조금 정리할 필요도 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채효정 쌤과 하는 공부모임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내려놓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감사한 이들과 서울에서의 후회없는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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