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운수 좋은 날

by부지러너

취업이 생각보다 일찍 확정되었다.
세 번의 인턴십을 거쳐 가장 가고 싶었던 정유회사에 정규직으로 합격했다. 남은 대학 생활은 더 이상 취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마치 수시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한 고등학교 3학년의 마지막 학기 같았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준비하고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왔는데, 드디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저 행복했다.
그런데 그 찬란했던 시절에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 중 하나가 찾아왔다.

대학교 내내 미식축구를 했다.
마지막 시즌, 서울대회 결승전이었다.
그날은 유난히 경기가 잘 풀렸다. 터치다운을 세 개나 기록했다.
대학 미식축구 선수로서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후반전, 무릎 십자인대가 완전히 파열되었다.
순식간이었다.
세 번의 터치다운을 기록한 기쁨은 사라졌고, 남은 것은 수술과 재활이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대학의 마지막 학기 절반 이상을 집에서 보내야 했다.
친구들과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고, 취업 걱정 없이 마음껏 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병원과 집을 오가는 일상으로 바뀌었다.

이듬해 1월, 목발을 막 뗀 상태로 첫 온라인 게임에 입사했다.
신입사원 연수는 그룹 연수와 계열사 연수를 합쳐 두 달 가까이 이어졌다.
동기들과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무릎은 아직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돌아보면 그 두 달은 재활에 가장 집중했어야 할 시기였다.
하지만 합숙 연수를 받느라 충분히 치료하지 못했다.
3월 울산으로 내려갔을 때 무릎은 끝까지 펴지지도, 구부러지지도 않았다.

걸을 때마다 다리를 절었다.
현장에 나갈 때면 아픈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신입사원으로서 제대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울산에서는 3월부터 5월까지 엔지니어 기본 교육을 받았다.
이후 한 달 동안 생산직 교대 근무를 체험했다. 정유공장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배우는 과정이었다.
7월 무렵이 되어서야 배정받은 부서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무릎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다시 큰 병원을 찾았고,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회사에 들어온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석 달 동안 휴직하게 되었다.
회사는 상황을 이해해 주었다. 치료와 휴직이 가능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좋은 회사에 입사했다는 사실이 그때만큼 다행스럽게 느껴진 적도 없었다.
하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이제 막 일을 배우기 시작한 신입사원이었기 때문이다.

재활은 수술보다 더 힘들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무릎을 펴고 구부리는 훈련을 반복했다.
펴지지 않는 무릎을 펴기 위해 재활치료사가 다리 위에 올라앉았다.
구부러지지 않는 무릎을 억지로 구부릴 때는 입에 수건을 물었다.
뼈를 깎는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고통을 견디며 무릎의 움직임을 되찾았다.
겨우 정상적인 가동 범위를 회복한 뒤 울산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온라인 게임에서도 다시 시작해야 했다.
부서에서 실제로 일한 기간은 석 달도 되지 않았다.
동기들은 이미 업무에 적응해 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신입사원처럼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왜 이렇게 모든 일이 힘들기만 할까.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에 들어왔는데, 정작 그곳에서 제대로 일을 시작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지금은 시련을 마주하면 그 안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생각하려고 한다.
어려운 일을 성장의 계기로 만들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실패가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하지만 그때는 달랐다.
그저 억울했고, 답답했고, 좌절했다.
오랫동안 준비해서 원하는 회사에 들어갔고, 이제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절실하게 느꼈다.


미식축구 결승전에서 세 번이나 터치다운을 기록했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은 가장 빛났던 순간이자, 가장 긴 고통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인생은 가장 높이 뛰어오른 순간에도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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