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신세계, 가까이서 보면 야근

by부소유

김선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퇴사를 권유했다. 이 말을 하려고 나를 현장까지 데려온 것이다. 요지는 간단했다. 자기가 선배인데 나이가 나보다 어려서 불편하다는 것. 그러니 나가서 다른 일을 알아보라는 것.


내 나이 이제 서른이다. 만으로는 스물여덟. 몸 쓰는 현장에서 불혹 넘은 아저씨가 들어도 이르다 싶은 말을, 입사 2년 차가 하고 있었다. 억울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생각해 보라더니, 장비 만지는 요령을 알려주겠다며 삼십 분을 떠들었다. 변기린에게 쌍욕을 먹으며 이미 다 배운 내용이었다. 나는 처음 듣는 것처럼 경청했다. 이 사람 앞에서는 그러는 편이 좋았다.


특수배선지옥의 주요 업무는 공정 시간 변경이다. 로봇의 인공신경을 입히는 시간이다. 너무 얇아도, 너무 두꺼워도 안 된다. 신경이 얇으면 로봇의 감각이 둔해지고, 두꺼우면 신호가 뒤엉킨다. 하루 두세 번 시간을 바꾸고 두께를 잰다. 제일 쉬운 일이면서 제일 중요한 일이다.


김선호가 물을 마시러 나가고, 나는 내 장비 앞에 섰다. 지구와 화성 증시에 동시 상장된 세계 최고 장비 회사의 물건이다. 그런데 화면이 고풍스럽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가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다. 박물관에서 본 MS-DOS라는 유물의 화면과 비슷하다. 터치스크린은 감압식이라 꾹 눌러야 먹고, 영점이 틀어져 있어 누르려는 곳의 오른쪽 위를 눌러야 한다. 우주 엘리베이터로 화물을 쏘아 올리는 시대에, 공장의 심장은 여전히 이런 물건이 뛰게 한다. 그래도 자주 만지다 보니 무질서 안의 질서가 보였다.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공정 시간을 0.5초 늘렸다. 계산식은 없다. 전부 감이다. 이상하지만 그렇게 배웠다. 이게 주요 업무다. 사실 중학교만 나와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걸 하려고 수능을 보고, 천문학적인 등록금을 내고 졸업장을 받았다. AI가 사람 대신 시를 쓰는 시대에, 사람은 감으로 0.5초를 만진다.


현장 골목마다 공용 단말이 있다. 막내들은 여기서 제 컴퓨터에 원격으로 붙는다. 누구 눈치도 안 보고 밀린 일을 하고, 메신저로 사적인 얘기도 나눈다. 잠시 잠깐 나만의 시간이다. 그 귀한 시간에 메신저가 깜빡였다.


(철수씨, 저 민선인데요. 제 장비 공정 시간 제품별로 0.7초씩 높여놔 줘요.)


김민선 대리. 팀의 유일한 여자 선배이고 변기린의 입사 동기다. 나이는 나보다 어리다. 그녀에게는 계획이 있다. 야간근무에서 빠지는 계획이다.


공장은 24시간 돌아간다. 팀원들은 당직처럼 번갈아 야간을 선다. 밤에 혼자 남아,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공정 사고를 감시한다. 일이 잘못되면 혼자 다 뒤집어쓴다. 생산부 죄인 중의 대역 죄인이 되는 것이다. 곧 수습이 끝나는 내가 야간 명단에 오르면, 한 명이 빠질 명분이 생긴다. 민선 대리는 특유의 애교와 물밑 작업으로 파트장에게서 결과를 얻어내는 사람이다.


지금 야간 중인 손준호 사원은 김선호의 입사 동기다. 모든 일에 진심인 일 중독자인데 인성이 좋다. 내게도 늘 극존칭을 쓰고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다. 주변에서 보기 드문 선배다. 실무를 같이 하는 선배는 이렇게 넷이다. 변규선, 김선호, 김민선, 손준호.


메신저가 또 깜빡였다.


(고철, 안 올라오고 뭐 하냐? 일 끝냈으면 빨리 튀어 올라와라.)


변기린은 별일 없이 심심해서 나를 찾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철이라는 호칭이 싫다. 이 공장에서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된 뒤로는 더 싫다. 존중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철수씨, 철수 사원, 그게 불편하면 철수야. 이름을 똑바로 불러줬으면 좋겠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변기린이 기린같이 목을 빼고 나를 쳐다봤다. 측정 결과를 알려달라는 말에 대답하는데, 옆에서 큰 소리가 났다.


“야 변규선, 너 자꾸 애 고철이라고 부를래? 여기가 학교야?”


장석구 파트장이다. 옛날 사람치고 큰 키에 서글서글한 옆집 아저씨 인상이지만, 속이 좁아 잘 토라지고 화도 잘 낸다. 변기린과 비교해 누가 나은지는 모르겠다. 누가 똥이고 누가 된장인지 구분이 어렵다. 둘 다 똥일지도 모른다. 둘 다 다혈질이라 자주 부딪히는데, 나는 그들이 부딪힐 때 속으로 좀 재밌다. 4년 차 갓 대리가 14년 차 대선배에게 기죽지 않고 대드는 광경은 한 편의 시트콤이다. 오늘도 형이니 직바카라이니 하는 시답잖은 말 겨루기가 오갔다. 이게 대기업 사무실에서 성인끼리 하는 대화인가 싶다. 백 년 전 사무실이라고 달랐을까. 아마 그때도 누군가는 이런 말다툼을 구경하고 있었겠지.


“아아아, 왜애애들 그래유? 나이 먹은 사람들끼리 뭣들 하는겨?”


김준혁 대리가 느릿한 충청도 말로 싸움을 갈랐다. 곧 과장 진급을 앞둔 선임 대리다. 회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콧수염을 기르는 직원인데, 강한 인상과 달리 부드러운 평화주의자다. 회사 업무보다 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를 앞서가는 선배다. 안타깝게도 특유의 느리고 욕심 없는 성격 탓에 진급이 계속 밀리고 있다.


사무실이 조용해지자 변기린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고철이라고 부를 때 기분 나빴냐고.


“뭐 썩 듣기 좋지는 않았습니다.”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대답을 해봤다.


“뭐 이 자식이? 너 잠깐 나랑 옥상으로 올라가자! 따라와!”


한 대 때리려나. 고전 학원 폭력 영화의 한 장면도 아니고 옥상이라니. 맞으면 맞기 좋게 대주고 경찰 드론을 한번 불러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말없이 거친 숨을 쉬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는 의외의 휴게 공간이 있다. 직원들은 여기서 완전 무해하다고 믿는 공장의 수증기를 마시며 쉰다.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 담소를 나누는 사람, 구석에서 흡연하는 사람. 우리는 전투를 하러 올라왔다.


“야 인마, 대답 그따위로 할래?”


그는 주먹으로 죄 없는 음료 자판기를 쳤다. 자판기가 비명 같은 안내음을 냈다. 이어서 발길질로 의자를 넘어뜨렸다. 자주 보던 행동인데 다시 봐도 위협적이다. 한 대 맞으면 한 대로 안 끝날 것 같았다. 빨리 넘어가는 게 내 밝은 미래를 위해 편하겠다는 계산이 섰다.


“형 죄송해요. 앞으로 말대답에 유의할게요.”


“어휴, 야, 야 철수야, 됐다 됐어. 앞으로 까불기만 해 봐.”


참으로 감정 기복이 심한 양반이다. 그래도 한번 말대답한 덕에 오래간만에 내 실명을 들었다. 이렇게 억지로 들을 바에는, 그 더러운 입에서 차라리 안 듣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오후 여섯 시. 다행히 우리 팀은 대부분 이 시간에 퇴근한다. 생산부 대부분은 밤 아홉 시까지가 기본이다.


[삑, 출문하셨습니다.]


게이트를 나서는데 입사 동기 안경배가 급하게 건물로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름 그대로 동그란 금테 안경을 쓴 동기다. 키가 작아 방진복 입은 모습이 귀여워서 남몰래 웃은 적이 있다. 그는 생산부 제일 지옥인 프레임지옥에 배치받았다. 로봇의 골격을 뽑아내는 곳이다. 장비가 오십 대가 넘고 만지는 변수도 많아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식사 시간조차 부족하다고 한다. 소주 한잔하자는 내 말에 그는 라인에 들어가 봐야 한다며 뛰어갔다.


혼자 뛰어가는 뒷모습이 처량했다. 우리는 왜 무작위로 배치받아, 각자의 지옥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서로 싸우며 고생하는가. 찰리 채플린은 이백 년쯤 전에 말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로봇 공장도 그렇다. 멀리서 보면 멋진 신세계,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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