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126년, 내 이름은 고철이 되었다

by부소유

“야 인마, 고철.”


눈을 뜨니 사무실이었다. K1 공장 4층. 화장실과 계단으로 통하는 길목 한가운데가 내 자리다. 통로 쪽 자리는 언제나 막내의 몫이다. 서기 2126년에도 그렇다.


막내들은 그 자리에서 등을 곧게 펴고 하루를 버틴다. 지나가는 발소리마다 어깨가 움찔거린다. 홀로그램 모니터는 투명해서 뒤에서 다 들여다보인다. 옛날 선배들은 모니터 뒤에 숨을 수라도 있었다던데.


“야 고철이, 이 새끼가 왜 대답을 안 쳐해?”


나를 부르는 사람은 멘토 변규선 대리. 회사가 붙여 준 사수다. 입사는 나보다 4년 빠르고 나이는 한 살 위. 대리 직급은 이제 막 달았는데 하는 짓은 십 년 묵은 고참이다. 스마트글라스 너머 흰자위가 늘 벌겋게 달아 있다. 화를 내면 눈동자보다 충혈된 흰자위가 먼저 보인다. 마르고 길쭉한 몸에 목이 유난히 길다. 그래서 별명이 변기린이다.


변기린의 기분에는 일기예보가 없다. 낯빛이 조금이라도 어두워지면 먼저 사과부터 해야 한다.


“네, 규선이 형. 죄송합니다.”


그는 처음부터 자기를 형이라고 부르게 했다. 대신 나, 고철수를 언제나 고철이라고 불렀다. 이 공장에서 고철은 사람 이름이 아니다. 폐기 판정을 받은 로봇을 부르는 말이다. 라인에서 오류를 일으킨 로봇은 스크랩장으로 실려 가고, 거기 쌓인 것들을 다들 고철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그는 매일 나를 폐기물이라고 부르는 셈이다.


배치 초반에는 눈치가 없어서 매일 폭언에 시달렸다. 불과 한 달 전 일이다. 그는 꿈속까지 따라 들어왔다. 울면서 깬 새벽도 있었다. 주먹이 날아오지 않았을 뿐, 마음은 매일 얻어맞아 깊게 멍들었다. 출입구의 뇌파 게이트는 내 신경 상태를 아침저녁으로 스캔하면서도 아무 경고를 띄우지 않았다. 기계는 몸의 이상만 읽는다. 마음은 백 년째 스캔 밖이다.


이번에도 그는 시답잖은 일로 나를 불렀다. 장비의 공정 시간을 수정했느냐고 물었다. 다 확인하지 못했지만 뒷감당이 무서워 일단 했다고 답했다.


나는 금성전자 휴머노이드 사업부 생산부 특수배선팀 신입사원 고철수다. 사람을 닮은 로봇을 만드는 공장이다. 생산부에는 다섯 군데의 지옥이 있다. 지옥 같아서 다들 지옥이라고 부른다. 프레임지옥, 스킨지옥, 렌즈지옥, 자재지옥, 배선지옥. 버티기 어려운 순서도 대체로 이 순서다.


여기에 꼽사리로 하나 더 붙은 팀이 내가 소속된 특수배선지옥이다. 로봇의 인공신경, 그러니까 뉴럴 배선을 만지는 팀이다. 신경 소재가 위험하다는 소문에 지원자가 없었다. 결국 각 팀에서 애매한 사람을 한두 명씩 차출해 팀을 채웠다. 각 팀의 소시오패스와 아웃사이더가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뜻밖에 일 자체는 편했다. 군대에서 전방은 몸이 힘들고 후방은 정신이 힘들다고 한다. 여기는 후방이다.


“철수 씨, 이리 와봐요.”


익숙한 경상도 억양. 김선호 사원이다. 작년에 입사한 1년 선배.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린데 말투는 과장, 차장 뺨친다. 처음 받아 본 후배 앞에서 선배 노릇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전형적인 젊은 꼰대다. 꼰대라는 말은 백 년 전 사전에도 있었다고 한다. 아마 다음 백 년도 살아남을 것이다.


다른 장비도 만져 봐야 한다며 그가 나를 현장으로 데려갔다.


현장에 들어가려면 방진복부터 입는다. 우주복 비슷한 옷이다. 화성으로 채굴 로봇을 수출하는 시대에도 사람은 이 옷 속에서 땀을 흘린다. 눈알만 빼고 온몸이 갇힌다. 몸의 열이 정수리로만 빠져나가는지 뚜껑이 열리듯 벗어진 선배들이 많다. 인류는 화성을 정복했지만 탈모는 끝내 정복하지 못했다.


에어샤워를 통과하자 생산 현장이 펼쳐졌다. 머리 위로 운송 드론이 로봇의 팔과 다리를 물고 지나다닌다. 축구장 몇 배 넓이에 제조 장비가 끝이 안 보이게 들어차 있다. 로봇을 만드는 공장이니 로봇이 다 만들 것 같지만, 아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인공신경 다발은 아직도 사람 손이 이어 붙인다. 기계가 사람을 닮아 갈수록 마무리는 사람 몫으로 남았다. 회사는 그게 더 싸다고 판단했다.


이 넓은 곳에서 특수배선팀의 장비는 열 대 남짓. 변기린에게 배워 매일 만지는 장비가 셋, 김선호가 알려 줄 장비가 또 셋이다.


“고철 씨, 아, 미안. 철수 씨. 멘토 양반이 하도 그렇게 불러서 헷갈리네.”


둘만 있게 되자 일부러 저러는 게 분명했다. 그는 장비 앞에서 한참 선배 노릇을 하더니, 문득 목소리를 낮췄다.


“철수 씨, 사실 먼저 할 말이 있는데, 나는 당신이 퇴사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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