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병원, 그리고 유예
첫 번째 실패를 맛보고 찾아간 두 번째 병원은 시작부터 내 숨통을 죄어왔다.
시장통 한복판에 위치한 병원은 노인들로 가득했고, 시장보다 더 시끄럽고 번잡했다.
맨 처음 우울증 진단을 받기 꽤 이전부터 이미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못했다.
자극에 취약하고 시끄러운 공간에 너무 많이 취약해져 있는 나를 위해, 첫 재치료 때 병원을 알아봐 준 것도 배우자였다. 덕분에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작고 조용한 병원에 안착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증상은 더 악화된 건지 이제는 소음이 있는 곳에 가려면 미리 약을 삼켜가며 버텨야 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그 시끄러운 대기실에 앉아 초진 검사지들을 겨우 써 내려갔다. 사람이 너무 많아 대기는 끝도 없이 길어졌다. 혼미한 와중에도 데스크 간호사가 착착착, 기계처럼 표정 없이 행정 처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표정없는 기계같음에 오히려 병원 안에 나름대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있겠지 않나 싶어 실낱같은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징크스 같은 현실이 반복되었다.
수소문해서 보고 온 대표 원장이 오늘 쉬는 날이라는 것이다. 남자 의사인지 여자 의사인지 선택하라는 말에 지난번의 사전을 뒤적거리던 남자의사가 생각났다. 남자 의사보다는 여자가 편할 것 같아 여자 쪽으로 배정을 부탁하고 다시 기나긴 대기 속으로 다시 돌아갔다.
겨우 들어간 진료실.
여의사는 무겁게 챙겨간 전 병원의 처방전이나 심리 보고서 대신, 방금 전 내가 문 밖에서 작성한 그 병원만의 초진 검사지만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두 번째도 이러니 의사들이 원래 이런 건가 싶었다. 기분이 좋진 않았다.
두 번째로 만난 여자 의사는 공감력이라고는 단 1도 없이 기계 같았다.
그렇지만, 의사로서는 훌륭했다.
이것저것 꼼꼼히 물어보더니, 거기에 따른 대답을 듣고는
사무적인 얼굴로 명확한 개선바카라을 던졌다.
...... 그런 행동 양상은 증상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 개선은 약물치료만으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심리치료를 병행하셔야 해요.
그녀는 서랍에서 뭔가를 찾아 내 앞에 내밀었다. 팜플렛이었는데, 나라에서 지원하는 심리상담 바우처 사업 안내서였다. 그걸 슥- 내밀더니, 손가락으로 해당 센터의 전화번호를 가리켰다. (나중에 읽어보니 대표번호도 아니고 바로 연결되는 담당센터 전화번호였다) 심리상담은 비싸니까 나라에서 지원하는 사업을 이용해 보라는, 지극히 기계적이지만 나름대로 지금 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결바카라이자 확실한 도움이었다.
그 냉정하고 실용적인 태도가 차라리 믿음이 갔다.
공감과 안심을 원하는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의사로서는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 기계 같은 여의사에게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내 몸의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었다.
차로 돌아와 조수석에 완전히 널브러진 채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서는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모르겠다. 겨우 손만 씻고 옷만 갈아입은 채 침대로 기어들어가 쓰러졌다. 아무 말도 할 힘이 없어서 이불에 파묻혀만 있다가, 그러다가 잤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우울한 내 마음을 어떻게든 더 나은 상태로,
만들어 줄 전문가를 찾는 이 무거운 발걸음을,
이 병원에 있는 것으로 임시 유예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서는,
이 의사선생님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또 낯선 장소에 갈 힘이 없다는 사실이 더 컸다.
만약 거기도 아니었다면 몇 주간 약을 못 먹고 세 번째 병원으로 갔었을거다.
그렇게 다음 주 예약되어 있던 세 번째 병원의 일정을 취소했다.
새로운 의사선생님의 처방에 따라 아예 치료 방향을 바꾸고,
약을 개편에 가깝게 대대적으로 교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