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게 되면 (2026)

by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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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을 수 없는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된 건 27살의 여름이었다. 그해의 여름은 이상하리만큼 비가 많이 쏟아져 곳곳에 수해가 일어났고,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그때의 나는 4층 옥탑방에 살고 있었다. 재앙에 가까운 비가 사람들을 먹어치우는 동안, 그 비는 우리집 옥상의 벽은 아슬아슬하게 넘지 못했고, 그 덕에 나는 사람들이 죽은 빗물에 한 번씩 손을 담가 물장난이나 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학교를 중퇴하고, 부모님 몰래 방 한 칸을 얻어 도망치듯 이곳으로 왔다. 그렇게 지낸 지 4년이 되었다. 중퇴를 한 것도, 몰래 방을 구한 것도 모두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가정 환경이 불우했느냐 하면, 불우한 환경이었다고 하기엔 집이 꽤 넉넉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돈 걱정 없이 자랐다. 되려 부러움을 사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너네 집은 좋겠다, 돈 많잖아, 따위의 말을 거리끼지 않고 뱉는 소갈머리 없는 녀석들이 더러 있었던 덕에 누군가에겐 부러운 집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드라마에서 간혹 나오는, 있는 집 아들이 사고를 치면 돈으로 뒷수습을 한다든지. 그런 일이 일어날 법한 집이었다고 할까. 물론, 나는 학교 다니는 내내 지나치게 조용했고, 돈으로 수습해야 할 만큼의 사고를 치는 인간은 아니었으니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아버지 성함을 물어 이름 석 자만 말해도 다들 눈이 휘둥그레지던 우리 아버지는 유명한 의과대학 교수였고, 그 이름을 내걸어 취미로 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는 더 난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는 워낙에도 이름 난 의사였던 데다가, 의사가 쓴 소설이 아주 서정적이고 연약한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17살의 어린 남학생이 주인공이었던 그 소설이 유명세를 타면서, 언젠가 인터뷰를 하게 됐을 떄 아버지는 "주인공의 모델은 우리 아들입니다. 저와 다르게 섬세하고 깊은 녀석이거든요. 그 녀석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어떨지, 사랑은 어떨지, 그런 걸 생각하면서 썼죠."라고 말한 것이 더 큰 관심을 끌어 단 한 권의 바카라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덕분에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다 못해 베스트셀러 소설을 쓰게 만든 단 한 명의 아들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런 울타리는 내가 불우하긴 커녕 행복에 겨워 뒤늦게 사춘기를 겪는, 철 없는 아들로 보이게 하곤 했다. 그 울타리는 '이런 집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잖아, 절대'라고 쓰여 있는 화려한 팻말을 걸고 있었고, 사람들은 곧이 곧대로 소갈머리도 없이 내게 '너네 집은 좋겠다, 너는 좋겠다'라고 말하곤 했으니까. 그래, 어쩌면 아버지는 정말 나를 사랑했을지도. 적어도 아버지가 나에게는 단 한 번도 손찌검을 한 적이 없었고,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맞는 건 우리 엄마였으니까. 이게 사랑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거라면 말이다.

의사 사모님의 몸에 남은 상처는 세상의 볕을 받는 일 따위 없었다. 그러니 신선한 공기를 머금어 새살이 돋고, 흉없이 아무는 일이 없었다. 의사 남편의 그늘 아래에서 아무도 모르게 얻어 맞고, 그 그늘 아래에서 자신을 때린 시커먼 손이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꿰매놓은 상처를 아무도 모르게 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그냥 엄마를 그렇게 때렸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서, 엄마가 싫거나, 엄마가 좋거나, 엄마가 무슨 행동을 해서, 아버지가 술을 마셨다든지, 기분이 나쁘거나, 좋거나,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해가 떴든, 하여튼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시야에 엄마가 들어오기만 하면 손을 댔다. 이유를 굳이 찾자면 나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는데, '구태여' 이유를 붙이자면 말이다. 내가 유난히 표정이 안 좋아서, 그날따라 야위어 보여서, 밥을 깨작깨작 먹어서, 소파에서 잠이 들어서, 아니, 그냥 내가 있어서 엄마가 맞은 것 아니겠나. 애가 아픈데 당신은 뭐하는 거야, 라며 엄마를 때리지만 나는 아프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아버지에게 매달려 저 안 아파요,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아버지는 듣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있어야 한다. "넌 가만히 있어." 그 한 마디면 나는 울음을 뚝 그쳤다. 아버지에게 매달려 있던 손에 힘이 저절로 빠졌다. 그리고 아마 그래서, 나는 그 한마디에 엄마를 때리도록 내버려두는 아들이었으니까 엄마에게 몹시 미운 아들이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나를 때렸다. 엄마는 아버지와 다르게 시야에 내가 들어온다고 무작정 때리진 않았다. 엄마는 이 집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겨워졌을 때, 더 이상은 사는 게 무섭다고 느껴질 정도로 버거워졌을 때, 맞은 몸뚱아리가 무너지는 것만 같이 아플 때, 그런 때에 나를 때렸다. 처음 맞은 건 오른쪽 뺨이었다. 반찬 투정을 부리고 있는 8살 난 내 뺨을 때리고 엄마는 울었다. 미안해,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그러니까, 왜 반찬 투정을 해, 있는 대로 먹지 않고. 아니야, 엄마가 너무 아파서 그랬어. 엄마가 미쳤나 봐.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는 나를 붙잡고 엉엉 울었고,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러니까 엄마는 엄마가 너무 아플 때가 되면, 나를 때렸다. 언젠가부터 그런 날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처럼 발가벗은 채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럼 맞는 내내 엄마의 붉고, 퍼런 멍이 든 살이 보였다. 나는 엄마가 저렇게 아파서 나를 때릴 수 밖에 없는가보다 하며 매를 맞고, 엄마는 울지도 않는 나를 붙잡고 매번 울었다. 엄마가 미쳤나 봐, 미안해. 아버지는 그냥 엄마를 때리고, 엄마는 아파서 나를 때렸는데, 나는 이유야 어쨌든 아프든 아프지 않든 나 혼자였다. 그러니까 그때는 이유없는 폭력과 고통, 혹은 이유가 있는 폭력과 고통 모두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누구든 때릴 수가 없는 사람이 되었는데, 나의 넉넉한 집에서 일어나는 일 전부가 나를 때리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말했듯이 우리집에는 화려한 울타리가 쳐져 있으니, 이런 일들이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라고 하면 '너는 좋겠다'라며 나를 시샘하던 사람들이 전부 배를 잡고 웃을지도 모른다. 너네 집에서 그런 일이? 거짓말 하는 거지? 아니면, 그럴 줄 알았어, 나만 불행할 리 없으니까,라며 말이다.


또 비가 온다. 우렁차게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방안에 누워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나는 비가 이렇게 오기 시작한 늦봄부터 지금까지 내내 저 옥상벽을 넘어올 듯 말 듯 간당간당하게 철썩이는 물을 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기대하며 그것만을 기다리는 시간은 매우 지루하기 마련이다. 빗물을 맞아 얼굴에 죽죽 붙은 머리카락을 한 번 쓸어넘기고, 벽 너머의 물에 손을 담근다. 물 속에서 손을 휘저어 보다가, 수면을 찰싹찰싹 때려본다. 이게 사람들을 그렇게 죽였다며? 이 벽 하나 못 넘는 이까짓 것에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 나갔다며? 나는 이 물안에 죽은 사람이 몇이나 들었을까 생각하면서, 손장난을 쳤다. 하지만 빗줄기가 워낙 거칠어 내가 좀 건드리는 정도는 티도 나지 않았다. 나는 한참 비를 맞으며 그렇게 서 있었다. 빗줄기가 수면을 내려찍는 것을 본다. 그리고 이내 물이 조금씩 출렁이더니 벽 너머로 주욱 주욱 떨어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는 이곳이 잠길 리가 없다. 오늘도 내가 기대하는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손으로 최선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벽에 가까이 다가가 몸을 기대고 섰다. 양팔을 물 깊숙이 넣었다. 한 번에 확실하게, 많이, 내 최선을 다 하겠다는 일념으로 내가 뻗을 수 있는 가장 깊은 데에서부터 물을 퍼올려 입에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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