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대화

byHenry

“삑삑삑~~”


오전 6시 현관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아들 내외가 들어온다. 나는 손녀를 받아 안는다. 아들 내외는 분당 병원으로 출근하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선다. 아내는 손녀와 나를 거실에 남겨두고 다시 쪽잠을 청한다.


손녀와 둘이 남는다. 해가 뜨기 전 아침 거실은 어둑하다. 손녀를 들어 올려 전등 스위치 패널 앞에 선다. 손녀는 작은 손가락으로 전등 표시를 누른다. 환해진 전등 불빛을 잠시 올려다본다.


“와, 오늘도 태리가 불을 켰네.”


블루투스 스피커를 켠다. 이번 주는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다. 음악이 나오면 손녀는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든다.


손녀는 바카라에 푹 빠졌다가 금방 블록 만들기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림 카드를 보여달라고 했다가 이내 장난감 인형을 집어 든다. 아기 피아노 건반을 한두 번 두드리더니 벽에 붙은 단어 스티커에 손이 간다. 다시 바카라꽂이로 가서 바카라을 한 권 뽑아 들고 읽어달라는 몸짓을 한다.


손녀는 장난감 강아지 포포를 쳐다보고, 손뼉을 친다. 그 소리에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걸어간다. “멍멍” 하고 소리를 내며 포포를 품에 안는다.


거실에는 인형들이 있다. 원숭이 인형 멍순이, 토끼 인형 토실이, 고릴라 인형 조지. 나는 인형마다 이런 이름을 붙였다. 빨간 혀를 가진 멍순이 등에 손가락을 넣고 입을 움직이며 나는 말을 건넨다.





“태리야, 나는 멍순이야. 오늘은 뭐 하고 놀까?”


손녀는 내게서 멍순이를 빼앗아 꼭 끌어안는다.


그러고는 오리 인형을 들고 전원을 켜달라고 손짓한다. 오리 가족이 꽥꽥 소리를 내며 음악에 맞춰 걸어간다. 손녀는 오리 가족을 뒤따라간다.




아내가 잠에서 깨어 손녀의 이유식을 만들고 있다. 손녀는 주방으로 기어가 할머니의 다리를 붙잡는다. 손녀는 소리치며 조리대에서 무엇을 하는지 보여달라고 조른다. 나도 어릴 적에 그랬을까. 외할머니의 다리를 붙잡고 밥솥 위에 놓여 있는 계란찜을 보여달라고 졸랐을 것이다.


나는 손녀를 안아 올려 조리대를 보여준다. 손녀가 냄비에서 끓고 있는 음식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태리야, 저건 뜨거워서 만질 수 없어.”

“앗앗.”


이번에는 다듬어 놓은 당근과 토마토, 호박을 바라본다.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손녀와 함께 거실로 돌아온다. 그제야 손녀의 눈길이 주방에서 거실로 향한다.


“태리야, 밥 먹자.”


이유식 준비를 마친 아내가 손녀를 부른다. 손녀는 할머니와 이유식을 먹는다. 입이 짧아서인지 한 번에 꿀꺽하고 삼키는 법이 없다. 아내가 내게 도움을 청한다.


“할아버지, 태리 신나는 음악 좀 틀어주세요. 씩씩하게 밥을 먹게요.”


나는 뽀로로 CD를 찾아 튼다. 신나는 음악이 나오자 손녀의 밥 먹는 속도가 조금 빨라진다. 하지만 그것도 몇 숟가락으로 끝나고 다시 이유식을 갖고 씨름한다. 식탁에서 내려오면서 눈을 비빈다. 잠이 오는 모양이다.

나는 손녀를 안아 침대로 간다. 손녀의 침대에 같이 눕는다. 꼭 안고 자는 토끼 인형 토순이가 있다. 토순이를 안고 이리저리 구르면서 뭐라고 말을 건다. 내가 조용히 등을 다독이다 보면 어느새 손녀는 잠이 든다.

한참 옹알이를 하는 손녀의 손가락은 분주하다. 손녀가 소리치며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킨다. 고릴라 조지를 집어 주면 손가락을 내려놓지 않는다. 토실이를 집어 주면 그제야 손으로 받는다.


거실에는 아침 햇살이 가득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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