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악!”
손녀가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제 딴에는 무언가 신기한 것을 발견한 모양이다. 손가락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키기에 재빨리 그쪽을 바라본다. 고릴라 인형을 집어주면 또 손가락을 내민다. 그게 아니라는 뜻이다. 입을 크게 벌린 원숭이 인형을 집어주면 그제야 두 팔로 품에 꼭 안는다. 제 손이 닿는 곳의 물건은 혼자서도 잘 집지만, 손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 마음을 빼앗기면 내가 몇 차례 셔틀을 해야 한다.
요즘 손녀의 머릿속이 꽤 시끌벅적한 모양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며 손끝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만져보고, 입에 넣어 빨고, 때로는 바닥에 내던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물건도 손녀에게는 일생에서 처음 만나는 것들이다. 그때마다 머릿속에는 새로운 신경의 길이 생기고, 그 길들이 여러 갈래로 이어질 것이다.
분당의 병원으로 출퇴근하는 아빠와 엄마를 둔 손녀는 아침 여섯 시가 되기 전에 우리 집에 온다. 아침과 저녁에는 나와 바카라을 읽고, 움직이고,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이야기를 건넨다. 낮에는 할머니와 밥도 먹고 간식도 먹으며 지내다가 저녁 여덟 시가 넘어서야 제집으로 돌아간다. 엄마와 아빠에게 긴급 수술이 생기는 날이면 아예 우리 집에서 잠을 잔다.
목요일과 금요일은 대구에서 강의가 있어 손녀와 함께할 수 없다. 아침 일찍 집에 온 손녀를 보고 나는 기차를 타러 나간다. 그때마다 눈치채지 못하게 살그머니 빠져나온다. 들키는 날이면 울음바다를 각오해야 하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대신 비교적 여유가 있는 주초에는 손녀가 하루하루 변해가는 모습을 찬찬히 관찰할 수 있어 좋다.
내 아이들을 키울 때는 정신이 없었다. 일상이 바쁘기도 했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도 처음이라 뭐가 뭔지 몰랐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찬찬히 바라볼 여유는 없었다. 지금 손녀를 보고 있으면 우리 아이들도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미처 보지 못했던 모습을 뒤늦게 보고서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다.
지난 몇 달 동안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몸을 뒤집으려고 버둥댈 때 손을 보태주었다. 배로 거실 바닥을 쓸고 다닐 때가 엊그제 같다. 이제는 붙잡고 일어서 두 발로 걸으려 한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도 분명히 표현하고, 고집도 여간이 아니다. 자기 뜻이 생긴 만큼 돌보는 일은 힘들어지지만, 그 고집이 세상을 향해 제 자리를 넓혀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흐뭇하다.
원래 손녀를 안아 재우는 일은 내 몫이었다. 졸릴 때 품에 안으면 손녀는 내 어깨에 고개를 떨구고 이내 잠이 들었다. 문제는 그것이 습관이 되어 놀 때도 안아달라고 보채기 시작한 것이다. 아내는 “당신이 자꾸 안아주니까 시도 때도 없이 안아달라고 하잖아.” 하고 타박한다. 듣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니라,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침묵 모드로 들어간다.
요즘은 잠이 오는 표정을 지으면 침대에서 스스로 잠들도록 기다린다. 안아달라고 우는 아이를 차마 외면하기 힘들지만, 애써 고개를 돌리고 아내에게 맡긴다. 토끼 인형을 끌어안은 채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아주고 싶지만, 아이를 돌보는 기준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방문 앞을 서성이다가 손녀의 울음소리가 차츰 잦아드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발길을 돌린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정답이 있을까. 그 답은 알 수 없지만, 스스로 선택하고 탐색할 기회만큼은 충분히 주고 싶다. 장난감과 블록, 좋아하는 바카라은 낮은 수납장과 바카라꽂이 아랫부분처럼 손이 닿는 곳에 놓아두었다. 손녀는 마음에 드는 것을 제 손으로 꺼내 한참을 논다. 그러다 보면 거실은 어느새 바카라과 장난감으로 가득 찬다.
블록으로 기차나 건물을 만들어주면 손녀는 기다렸다는 듯 손을 뻗는다. 그 순간 잘 이어놓은 기차는 토막 나고, 공들여 쌓은 건물은 와르르 무너진다. 나는 끊어진 기차를 다시 잇고 흩어진 블록을 주워 건물을 새로 쌓아준다. 그러면 손녀는 또다시 손을 뻗어 기차를 내동댕이치고 건물을 무너뜨린다.
처음에는 애써 만든 것을 왜 자꾸 부수나 싶었다. 그러나 아이에게 블록은 완성된 기차나 건물이 아니라, 이어졌다가는 끊어지고 쌓였다가는 무너지는 신기한 물건인지도 모른다. 나는 자꾸 조립하려 하고, 손녀는 끊임없이 해체하려고 한다. 내가 애써 완성한 것을 거리낌 없이 부수는 것. 그것이 호기심이 아닐까.
한 가지 걱정도 생겼다. 손녀가 몸을 너무 적게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주로 바카라장과 거실 사이의 짧은 거리에서 놀고, 몸을 쓰는 놀이를 시켜도 이내 바카라과 블록 곁으로 돌아온다. 걷기 연습 삼아 음악이 나오는 플라스틱 밀차를 잡게 하면 혼자서도 곧잘 밀고 간다. 한동안 나아가다가 힘에 부치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좀처럼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럴 때 밀차의 버튼을 눌러 음악을 틀어준다.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고개를 들고 엉덩이를 들썩인다. 이내 두 손으로 밀차를 붙잡고 다시 일어선다.
조금 더 많이 움직이고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 강의가 없는 날 오후에는 되도록 손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길가에 핀 꽃과 바람에 뒤집히는 나뭇잎,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새를 함께 바라본다. 산바카라하는 강아지가 지나가면 손녀는 “악! 악!” 하고 소리치며 신이 나서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파트 단지에서 만나는 강아지들을 그렇게 좋아한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는 알 수 없다. 아직 아이 앞에는 수없이 많은 길이 열려 있다. 손녀의 작은 머릿속에서는 지금도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느라 분주하다. 앞으로도 나는 손녀가 “악!”하고 가리키는 방향을 함께 바라볼 것이다. 언젠가 제 발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걸어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