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양 다섯 마리

byHenry

“태리야, 잘 잤니? 무슨 꿈을 꾸었을까?”


오전 낮잠에서 깬 손녀에게 말을 걸었다. 눈동자에는 잠이 가득 담겼지만 나를 보고 살짝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며칠 전 아들 내외가 팜랜드에서 찍어 보낸 손녀 사진이 떠올랐다.


“까르르~~”


손녀는 양 떼를 보고 활짝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사진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소리가 내 귀에 또렷하게 들렸다.


그날 손녀는 양 떼를 봤고 코스모스 향기도 맡았다. 온통 분홍빛으로 물든 핑크뮬리를 손으로 만졌다.


“농장이 넓어 하루 만에 볼 수 없었어요. 아직 태리가 어리고 해서 몇 시간만 보고 왔어요.”


아들 내외가 지나가는 말로 했다. 내심 한 번 더 데리고 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느껴졌다.


화요일, 급한 일도 마무리한 한가한 날이었다. 손녀를 데리고 농협안성팜랜드로 가자는 아내의 제안에 나설 채비를 했다. 손녀의 이유식과 간식거리를 담은 작은 냉장 가방과 옷이랑 기저귀를 담은 가방을 챙겼다.


“태리야, 양 다섯 마리 보러 가자!”


평소 손녀가 좋아하는 동화바카라 제목 《양 다섯 마리가》를 인용해 말했다. 손녀의 눈에 미소가 번졌다. 밖으로 나가자는 말은 잘 알아듣는다. 옷을 입고 신발을 신자 손녀는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유모차를 차에 싣고 뒷좌석의 유아용 안전 의자에 손녀를 앉혔다. 나들이 가는 기분에 들떠 안전벨트를 채워도 얌전히 받아들였다.


가는 길에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황태콩나물국밥을 시켜 손녀의 이유식을 국물에 조금 찍어 먹였다. 나는 손녀가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이 없어 늘 안타까워했다. 처음 먹어 보는 국물에 적신 밥이라 입이 당기는 모양이었는지 손녀는 씩씩하게 받아먹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손녀는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손녀는 할머니와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겨우 배를 채웠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우리는 팜랜드에 도착했다.


“와, 태리야, 신기한 게 많다.”

“앗, 앗!”


손녀의 손가락 끝을 따라가니 젖소 동상이 서 있었다. 팜랜드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손녀는 여기저기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느 곳으로 갈지 잠시 망설이다 꽃밭으로 방향을 잡았다.


넓은 들판을 분홍빛으로 물들인 핑크뮬리가 눈에 들어왔다. 손녀는 유모차에서 내려달라고 아우성쳤다. 땅에 발을 디딘 손녀는 핑크뮬리를 한 손 가득 움켜잡았다.


“태리야, 이건 코스모스라는 꽃이야. 가을이 왔음을 알린단다.”


나는 손녀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간혹 손녀가 소리를 지르며 대답할 때도 있지만, 대개 나 혼자 들려주는 말들이다.


손녀는 코스모스 꽃잎을 따서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바람에 쓰러진 코스모스 줄기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길 건너 노란 황화코스모스 꽃밭에 손녀를 내려놓았다. 꽃 더미에 파묻혀 신나게 놀던 손녀의 손과 옷에는 어느새 흙이 묻었다.



지나가는 길에 소 없는 마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 손녀를 앉히고 사진을 찍었다. 마차의 창틀 너머로 노란 꽃잎이 펼쳐졌다. 직사각형의 프레임 속에서 꽃과 손녀가 그림이 되었다.


“앗, 앗!”


꽃구경을 마치고 동물 농장에 가까이 가자 손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가는 길에 염소와 눈길이 마주친 모양이었다. 염소와 소에게 줄 먹이를 두 바구니 샀다. 손녀와 내가 다가가자 눈치 빠른 녀석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손녀와 나는 바구니를 같이 잡고 내밀었다. 그러자 염소 한 마리가 건초 더미를 혀로 쓱 하고 삼켰다.


손녀는 낯을 가리는 편이다. 낯선 사람이 예쁘다고 가까이 다가오면 울음을 터뜨리고 내 품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덩치 큰 동물이 가까이 와도 무서워하지 않고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손녀와 내가 황소에게 바구니를 갖다 대자 큰 혀로 건초 더미를 한입에 삼켰다. 그래도 손녀는 놀라거나 소리치지 않았다. 사실 나는 황소의 그 큰 혀가 바구니에 다가올 때 놀라서 움찔했다.


돼지우리로 건너가니 돼지들이 한가로이 놀고 있었다. 손녀와 나는 준비해 간 돼지 먹이를 우리 안으로 던져 주었다. 먹이를 본 돼지들이 날렵한 동작으로 먹이를 삼켰다. 그 모습을 본 손녀는 “꿀꿀” 하고 돼지 목소리를 흉내 냈다.





토끼 방목장에 들렀다. 먹이를 내려놓으니 토끼들이 몰려와 열심히 건초를 먹었다. 손녀는 땅바닥에 앉아 열심히 밥을 먹는 토끼를 쳐다보았다.


“태리야, 토순이와 토실이가 여기 있네. 얘들은 밥을 얼마나 잘 먹니? 태리도 냠냠 잘 먹어야 해, 알았지?”


나는 손녀가 좋아하는 토끼 인형들 이름을 말하며 밥을 잘 먹으라고 당부했다. 손녀가 알아듣지 못할 내 주문보다 가까이 보이는 토끼가 좋은 모양이었다.


“메~~~”


면양들 머리에는 둥글고 단단한 뿔이 달려 있었다. 손녀와 내가 그곳으로 다가가자 면양 한 마리가 힘차게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화답하듯 손녀도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면양을 뒤로하고 손녀와 나는 양 떼 목장으로 갔다. 면양 무리와 양 떼는 울타리를 경계로 이웃하고 있었다. 양 떼는 모두 입구 쪽에 모여 축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앗, 앗.”

“태리야, 신기하지? 양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네. 태리가 반갑다고 인사하는 모양이네. 양을 세어 보자. 다섯, 여섯. 어, 양이 다섯 마리가 넘네.”


손녀는 양들이 반가운 모양이었다. 간간이 “앗, 앗” 하고 유달리 큰 소리로 손녀는 반갑다고 제 딴에는 인사했다. 하지만 양들은 아무 대답 없이 그저 축사 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어쩌면 양들은 밥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동물 농장을 한 바퀴 돌고 나니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날씨도 점차 쌀쌀해져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태리야, 다음에 또 놀러 오자. 볼 게 아직 많이 남았네.”


팜랜드가 문을 닫는 여섯 시가 다가오자 우리도 밖으로 나왔다. 바카라에서만 보던 동물과 꽃들을 관찰한 손녀는 피곤했던지 내 어깨에 기대어 곯아떨어졌다.


손녀는 꿈속에서 양 다섯 마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손녀의 입가에 웃음이 실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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