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입만 더

byHenry

손녀의 세계는 종잡을 수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지 못하더니 어느 날 바카라장을 붙잡고 혼자 일어섰다. 종일 거실 바닥을 배로 밀며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다.


며칠 전 유아 장난감 도서관에서 걸음마 보조기를 빌렸다. 처음에는 손을 잡아주며 함께 밀었다. 오늘 아침에는 혼자 손잡이를 붙잡고 거실을 밀고 다녔다.


손녀도 때가 되니 앉고 섰다. 며칠 전에는 어린 두 발로 세상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뭔가를 원할 때는 손짓으로 가리킨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손녀의 변화를 지켜보면 매번 신기하다. 어제 하지 못하던 일을 오늘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요즘 손녀의 머릿속에서도 무슨 일이 부지런히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자주 읽는 바카라을 골라내고, 어떤 단어를 말하면 바카라 속의 그림을 손가락으로 짚는다. 외마디 소리를 지르던 아이가 쉬지 않고 중얼거린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만의 언어다. 그 작은 머릿속 어딘가에서 세상을 알아가는 회로가 하나씩 켜지고 있는 것 같다.


손녀는 특별히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고 제 속도로 자란다. 참 다행스럽다.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먹는 일이다.


손녀는 우유를 정량만큼 타 주어도 한 번에 다 마시는 법이 없다. 몇 번에 나누어 먹여도 끝내 남긴다. 더 먹이려고 젖병을 입에 가져가면 얼굴을 홱 돌린다. 다시 반대쪽으로 가져가면 이번에는 그쪽으로 얼굴을 돌려버린다. 입술까지 꼭 다문다.


이유식이라고 다르지 않다. 소고기와 채소를 섞고, 이것저것 재료를 바꿔가며 먹여보지만, 반응은 시큰둥하다. 작은 식탁 앞에 앉아 처음 몇 숟갈을 제법 받아먹는다. 이제 좀 먹으려나 싶으면 슬슬 몸을 비틀기 시작한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좋아하는 치즈에 싸서 주기도 하고 김에 싸서 주기도 한다. 몇 숟갈 먹고 나면 입을 앙다문다. 겨우 입안에 넣어도 꿀꺽 삼키지 않고 볼 한쪽에 물고 있다. 가뜩이나 작은 입에 음식이 가득하니 다음 숟가락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우유도 시원찮고 이유식도 탐탁지 않아 하니 몸집도 작다. 며칠 전 조카의 딸을 안았을 때의 무직함과 비교하면 손녀는 너무 가볍다. 어릴 때 잘 먹어야 잘 큰다는 어른들 말을 떠올리면 괜히 마음이 쓰인다.


먹는 양은 적어도 이것저것 골고루 먹으니 괜찮겠지. 그런 생각을 위안 삼아 조금 더 자라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밥때만 되면 그런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도 모르게 숟가락을 다시 손녀 쪽으로 들이민다.


손녀의 밥 먹는 시간은 거의 전쟁이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는 할머니와 조금만 먹으려는 손녀의 눈치 싸움이 시작된다. 할머니가 숟가락을 들이밀면 손녀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다. 숟가락이 왼쪽으로 따라가면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돌린다. 그래도 숟가락이 따라오면 작은 입술을 굳게 닫아버린다. 그러다 보니 얼굴과 옷에는 온통 음식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이렇게 안 먹으면 안 놀아줄 거야!”


“그래, 할아버지도 산바카라 안 나갈 거야!”


통하지 않는 가벼운 협박도 해본다.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손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먹을 만큼 먹었다 싶으면 고개부터 돌린다. 곁에서 보고 있으면 애가 타면서도 헛웃음이 나온다. 저 작은 몸 어디에서 저토록 야무진 고집이 솟아나는 것일까.


제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먹고, 제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까지 서지 못하던 아이가 어느 날 벌떡 일어섰듯, 먹는 일도 어느 날 달라질지 모른다.


내가 아침을 먹을 때면 손녀가 옆에서 지켜본다. 그럴 때 따뜻한 두부 한 조각을 떼어주거나 갓 삶은 계란을 조금 떼어준다. 신기하게도 제 밥을 먹일 때와 달리 입을 벌린다. 한 입. 또 한 입. 많지는 않지만 제법 잘 받아먹는다. 그 작은 입이 오물오물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놓인다.


제 속도로 크면 된다고 생각한다. 많이 먹지 않아도 괜찮다고 마음을 달랜다. 나와 달리 아내는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한 입만 더 먹자.”


숟가락이 다시 손녀의 입 앞으로 간다. 손녀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홱 돌린다. 오늘도 밥상 앞에서 작은 소동이 시작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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