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무지, 그해는 참 따뜻했다.

byHenry

“아니, 무슨 소설 문장이 이렇게 길어? 한 문장이 서너 줄, 심지어 다섯 줄까지 이어지다니.”


나는 짧은 문장을 좋아한다. 길어야 두세 줄이고, 웬만해서는 복문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읽으며 그의 만연체 문장과 맞닥뜨리는 순간 당혹스러웠다. 문장이 이렇게 길게 이어지는데도 지루하기는커녕 구성지고 아름다울 수 있다니.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문장의 힘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9월은 꽤 보람 있는 달이었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이번에는 정독했다. 박완서의 글은 부드러우면서도 향토색이 짙었고, 이문구의 글은 긴 문장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웠다. 충남 보령의 옛 사투리가 그토록 뜻이 풍성한 줄도 처음 알았다. 끊어질 듯하면서도 다시 이어지는 그의 문장은 판소리의 구성지고 애틋한 가락을 닮아 있었다.


두 사람의 글을 읽는 동안 오래전 시골 마을 하나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마을 동쪽 끝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낮은 지붕 위로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이었다. 아마 박완서와 이문구가 마음속에 품고 살았던 고향도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내 고향을 생각했다. 나를 낳은 마을이 내 고향일까. 아니면 유년 시절 가장 행복했던 외가 마을이 내 고향일까.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이 글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지 38개월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났다. 평소 몸이 강건한 편은 아니었지만, 가족 누구도 그리 갑작스레 세상을 떠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날 심한 복통이 찾아왔다. 밤새 배를 움켜쥐고 데굴데굴 굴렀지만 할아버지는 평소 몸이 약해서 그러려니 했다. 밤이 지나도록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아침이 되어서였다. 급히 택시를 불러 대구의 병원으로 향했지만 너무 늦었다.


맹장염이 터져 복막염으로 번졌고 배 속에는 고름이 가득 차 있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나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무엇인지 알기에는 너무 어렸다. 대신 아버지가 없는 삶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아버지의 얼굴을 처음 본 것은 어른이 되고 한참 뒤, 고모가 건네준 빛바랜 흑백사진에서였다. 그것도 여러 사람과 함께 찍은 단 한 장의 낡은 사진이라 아버지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 내 기억이 시작될 무렵부터 아버지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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