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S-META에서 AX와 인생의 경험을 나누고 배우며 성장하고 있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오늘따라 시월의 밤공기가 유독 차다. 오늘은 수요일. 서강대학교 '가상융합 AX 대전환 & 디지털자산 최고위과정(S-META)' 수업이 있는 날이다. 오늘의 강의 주제는 '온톨로지와 AI 오케스트레이션'이다.
매주 수요일이면 시간차 휴가를 내고 오후 다섯 시에 조기 퇴근한다. 평소처럼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학교 앞 거구장으로 향하다 무심코 재킷 깃을 여몄다.
'벌써 시월도 끝나가는구나.'
그러고 보니 지난 6월 시작한 학교생활도 어느덧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다음 주면 마지막 정규 수업이고, 그다음 주에는 수료식이 기다리고 있다.
서강대학교 가상융합전문대학원과 AI·SW대학원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S-META 최고위과정. 올해 나는 제6기로 입학했다. 내게 S-META는 조금 특별한 곳이어서 애정이 많이 간다. 서강대학교 가상융합전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언젠가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나면 마지막으로 도전해 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이 최고위과정이었다. 내 나름대로는 대학원 공부의 끝판왕 같은 존재였다.
기업을 경영하는 CEO와 임원, 각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온 전문가들이 모여 산업의 미래를 논하는 곳. 그래서 KT에서 사업개발 실무자로 일하는 내가 그들과 함께 공부할 기회를 얻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저 언젠가 기회가 되면 도전해 봐야겠다는 마음만 품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나의 지도교수님이신 이석근 교수님의 승낙을 받아 입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뻤지만, 긴장됐다.
'과연 내가 오랜 경험을 쌓아온 전문가분들과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며 주눅이 들지는 않을까? 내가 실무자인 게 오히려 S-META의 품격과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닐까.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은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가 S-META에 그토록 가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바로 나의 지도교수님 때문이다. 나는 이석근 교수님을 마음속으로 '석근좌'라고 부른다. 내게는 닮고 싶으면서도 특별한 스승님이시다. 언제나 수트가 잘 어울리시고 연세가 있으심에도 그 누구보다 중후하고 열정적인 분이셔서다. 5년 전에 뵈었을 때와 비교해 더욱 젊어지신 듯한 느낌이다.
교수님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대한민국 경영컨설팅과 금융산업의 굵직한 역사가 펼쳐진다. 세계적인 전략컨설팅 기업인 A.T.커니를 거쳐 액센츄어 아시아·태평양 자본시장 총괄 파트너, 아서디리틀(ADL) 아시아 총괄대표, 롤랜드버거 한국법인 초대 대표를 역임하신 분이다. 국민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의 합병, 기아자동차 매각, 알리안츠의 제일생명 인수 등 대한민국 경제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대형 프로젝트에도 참여하셨다. IMF 외환위기 당시에는 금융감독위원회 구조개혁기획단 민간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에도 관여하셨다. 기업의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컨설턴트이자, 국가 경제의 중요한 변화에 참여했던 전문가인 셈이다.
나는 그런 분에게 직접 경영과 비즈니스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놀랍고 감사하다. 신문 경제면에서나 접하던 굵직한 사건들의 중심에 있었던 분이 내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시고, 내가 고민한 사업 아이디어에 질문을 던져주신다.
무엇보다 교수님은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신다.
석사학위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때가 떠오른다. 나름대로 자료를 찾아보고, 고민을 거듭해 정리한 생각을 자신 있게 설명하면 교수님은 몇 가지 질문을 던지셨다. 그런데 그 질문에 답하려다 보면 어느새 내 논리의 빈틈이 드러났다.
분명 충분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교수님 앞에서는 생각이 꼬이고 말문이 막히곤 했다.
'아, 내가 아직도 이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하는구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때로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그렇게 부족함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오히려 더 공부하고 싶어졌다. 교수님의 질문 덕분에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앞으로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기도 한몫했다.
'내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은 아닌데.'
자존심이 상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고민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중요한 질문 앞에서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더 파고들었다. 다음에는 조금 더 나은 생각과 논리로 교수님 앞에 서고 싶었다. 적어도 내가 이 정도 수준에 머무를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 오기마저도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 됐다.
무엇보다 이석근 교수님께 더욱 깊이 배우고 싶었던 이유는 교수님이 추구하시는 학문의 방향과 내가 지향하는 바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학문이 강의실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 데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수님의 가르침에서도 그런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지식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실제 비즈니스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셨다.
그래서 교수님의 질문은 때로 날카롭고 아팠지만, 그만큼 값졌다.
정답을 찾았다고 생각한 순간 새로운 질문을 만났고, 그 질문을 붙잡고 고민하다 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문제와 가능성이 조금씩 드러났다.
그렇게 나는 하나씩 깨달았다.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만큼이나,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S-META 최고위과정에 입학하면서 그 배움은 강의실을 넘어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교수님의 질문을 통해 산업과 경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왔다면, 이제는 각자의 분야에서 오랜 시간 치열하게 살아온 원우들의 경험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배우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그분들과 같은 자리에서 공부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부담은 어느새 설렘과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오랜 경험과 성취를 쌓아온 분들일수록 자신의 생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새로운 기술 앞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질문했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였다. 자신이 겪었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면서도, 여전히 배우려는 마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이 이런 뜻이구나.'
그분들 역시 나처럼 고민하고 있었다.
살다 보면 사업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고, 사람 때문에 마음이 상할 때도 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자신이 내린 결정이 옳았는지 되묻는 순간도 찾아온다. 그렇게 고민하고, 흔들리고, 때로는 후회하면서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게 인생 아니겠는가.
우리 역시 각자의 자리에서 한 주 동안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수요일이면 다시 학교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에는 사업과 기술, 산업의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 안에 담긴 사람의 고민과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대표이사나 임원이라는 직함도, 오랜 경력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이 먼저 보인다.
나는 그런 시간이 참 좋았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수요일이 기다려졌다.
나는 이번 제6기 원우회의 총무를 맡고 있다. 덕분에 원우님들과 소통하는 즐거움이 더욱 커졌다. 총무라는 직함이 생기면서 먼저 연락하고 다가갈 수 있는 공식적인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마음이라도 먼저 다가가는 일이 때로는 조심스러울 수 있다. 상대가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을까, 괜한 참견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싶어서다.
하지만 총무라는 역할이 생기니 그럴 걱정을 조금 덜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총무가 된 것이 참 좋다.
처음에는 명함을 주고받으며 어색하게 인사하던 원우님들이 어느 순간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웃고,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꺼내놓는 모습을 보면 괜히 마음이 좋아진다.
무엇보다 총무라는 명분으로 마음껏 오지랖을 부릴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이런저런 안부를 묻고, 때로는 주제넘게 의견을 보태기도 한다. 그런데 원우님들은 그런 내 오지랖을 편견 없이 허심탄회하게 받아주신다.
오랜 경험과 경륜을 갖춘 분들이지만, 실무자인 내 이야기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귀 기울여주신다. 때로는 내 의견에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주시고, 자신의 경험을 보태 더 넓은 시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그럴 때마다 참 감사하다. 총무라는 역할 덕분에 내가 먼저 다가갈 수 있었지만, 그 관계를 따뜻하게 만들어주신 것은 결국 원우님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총무의 작은 권한을 빌려 우리만의 특별한 수업 시간을 이름 붙였다.
정규 수업 전과 후에 이어지는 또 다른 배움의 시간. 바로 0교시와 3교시.
0교시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 교수님과 원우들이 함께 저녁을 먹으며 교류하는 시간이다. 학교 앞 거구장에 모여 식탁에 둘러앉는다. 누군가는 기업을 경영하는 대표이고, 누군가는 임원이며, 또 누군가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온 사람이다.
하지만 식탁에 앉으면 직함보다 먼저 수저가 놓인다.
"이번 주는 좀 어떠셨어요?"
"지난번 말씀하셨던 사업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그 문제는 결국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가벼운 안부로 시작한 대화는 어느새 각자의 산업과 사업 이야기로 이어진다.
누군가는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실제 사업을 추진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비슷한 문제를 놓고도 서로 다른 해결 방법이 나온다.
나는 그 시간이 참 흥미롭다. 회사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산업과 업무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전혀 다른 산업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의 경험을 들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내게는 새로운 통찰이 되기도 하고, 내가 알고 있는 기술과 사업에 관한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같은 문제를 두고도 금융업과 제조업에서 살아온 사람의 질문은 다르다.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과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는 사람의 시선도 다르다.
그 차이가 좋았다.
이석근 교수님의 수업에서 배운 것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면, 0교시는 그 질문을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저녁 여섯시 반이 되어간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강의실로 향한다.
AI 패러다임의 변화, Agentic AI, 멀티에이전트, 온디바이스 AI, STO와 RWA, 스테이블코인, Web3, 그리고 산업의 AX 전략까지 S-META 최고위 과정에서는 매주 새로운 AX주제와 만난다.
단순히 기술의 개념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기술이 산업과 기업 경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어떤 기회와 위험을 만들어낼지 함께 고민한다. 강의를 듣다 보면 막연했던 사업 아이디어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일 때도 있고, 반대로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분야에서 새로운 과제를 발견하기도 한다.
강의를 듣고 원우님들의 질문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
'아,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밤 아홉 시가 된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서 김낙수 부장(류승룡)이 아산공장으로 발령받은 뒤 일화에서 작업반장 이주영(배우 정은채)님이 점심시간이 되면 직원들에게 외치는 말이 있다.
"밥 먹자!"
나 역시 매주 수요일이면 원우님들이 모인 카지노톡 단체방과 강의실에서 외치곤 한다.
"3교시 있습니다!"
그리고 장소를 안내한다. 정규 수업이 끝난 뒤에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우리만의 특별한 시간이다.
물론 처음부터 반응이 뜨거웠던 것은 아니다. 첫째 주와 둘째 주에는 야심 차게 3교시를 외쳤지만, 결국 혼자만의 시간으로 끝나고 말았다. 괜히 민망하기도 하고, '역시 다들 바쁘시구나' 싶었다.
그런데 셋째 주부터 변화가 생겼다. 혼자 외롭게 3교시를 외치는 총무가 측은해 보이셨는지, 한 분 두 분 함께해 주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든든한 고정 멤버가 생겼고, 이제는 매주 여덟 분 이상이 참여하는 제법 훈훈한 모임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내가 먼저 사람들을 모았지만, 이제는 오히려 내가 그 시간을 기다리게 됐다.
3교시에는 특별한 교재도, 정해진 강의 주제도 없다. 대신 각자가 살아오며 쌓아온 경험이 교재가 된다.
사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한 마음에 대화보다 술잔이 더 자주 오갔다. 하지만 몇 달이 흐른 지금은 술잔보다 이야기가 먼저다. 그날 배운 강의 내용을 놓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한 주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겪었던 일들로 대화가 이어진다.
2주 전에는 STO 토큰경제가 강의 주제였다. 토큰증권이 금융산업에 가져올 변화와 새로운 자산시장의 가능성, 기업이 준비해야 할 비즈니스 모델을 놓고 토론이 이어졌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가지 생각에 이르렀다. 결국 토큰증권의 사업적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자산을 토큰으로 발행할 수 있다는 기술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자산과 지속적인 수요가 존재하는 시장을 발굴하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었다. 기술은 새로운 시장을 열어줄 수 있지만, 그 시장에 사람들이 계속 참여할 이유까지 만들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이야기가 HR, 즉 사람과 조직에 관한 문제로 넘어갔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조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기술을 도입하는 것보다 그 기술을 활용할 사람을 준비시키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구성원들과는 어떻게 함께 나아가야 할까. 그렇게 STO를 이야기하다가 HR을 이야기하고, HR을 이야기하다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이야기하게 됐다.
나는 이것이 3교시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강의실에서 배운 지식이 원우들의 경험을 만나 현실의 문제로 확장되는 것. 그리고 그 문제를 함께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기술을 넘어 조직과 사람, 나아가 각자의 삶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 어쩌면 3교시의 진짜 교재는 우리가 살아온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사업은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고, 조직은 전략대로만 변화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은 경영학 교과서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강의 주제를 넘어 삶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누군가는 오랫동안 조직을 이끌면서 겪었던 갈등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사업에 실패했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또 누군가는 자신이 내렸던 결정과 그 결과를 돌아보며 당시의 고민을 들려준다.
그럴 때면 나이도 직함도 별 의미가 없어진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저마다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좀처럼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다. 경력이 쌓일수록 약한 모습을 보이기가 어렵고, 바카라임이 커질수록 모른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늘 답을 주어야 할 것 같고, 때로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것 같은 부담도 생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조금 달랐다. 모르면 물어볼 수 있었다. 다른 의견이 있으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누군가의 경험 앞에서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할 수도 있었다. 그것이 내게는 큰 위안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자리가 더 필요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슬롯에서 입고 있던 직함이라는 무거운 외투를 잠시 벗어놓고, 그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기로 서로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번주 수요일 밤에도 그랬다.
이번 주 강의 주제는 '온톨로지와 AI 오케스트레이션'이었다.
서로 다른 데이터와 개념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고, 여러 AI와 시스템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하나의 목적을 향해 협력하도록 만드는 구조에 관한 이야기였다. 마침 내가 AX 사업개발 업무를 하며 고민하던 문제들과도 맞닿아 있어 유독 흥미로웠다. 강의 시간에도 귀를 쫑긋 세웠고, 수업이 끝난 뒤 3교시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참 말이 많은 사람이다. 아는 이야기가 나오면 조금 더 설명하고 싶고,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면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고 싶어진다. 내가 경험했던 시행착오를 누군가에게 알려주는 일도 좋아한다.
'아이고, 오늘도 또 주저리주저리 떠들었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 그런 생각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온톨로지와 AI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시작된 대화는 차츰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기술과 시스템이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과 조직은 어떻게 함께 움직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어느새 말을 줄이고 듣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침 그 이야기가 요즘 내가 가장 깊이 고민하던 문제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좋은 리더가 되고 싶었다. 단순히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서로의 성장을 도우며, 각자가 가진 가능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조직을 이끌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좋은 리더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해 왔다.
그런데 올해 그룹장이라는 역할을 맡으면서 생각보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머릿속으로 그리던 리더의 모습과 실제 조직 안에서 마주하는 현실 사이에는 적지 않은 거리가 있었다. 좋은 마음으로 건넨 말이 기대와 다르게 받아들여질 때도 있었고, 상대를 위해 내린 결정이 과연 옳았는지 혼자 되짚어보는 날도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한 해를 돌아보니 마음 한구석에 설명하기 어려운 쓸쓸함이 남아 있었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 관계. 내가 먼저 식사를 제안하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는 자리. 그리고 내가 건넨 마음이 상대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럴 때마다 혼자 서운해졌다.
'나는 진심이었는데.... 정말 잘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서 자꾸 맴돌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좋은 리더가 되고 싶었던 내 마음은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선배와 좋은 리더의 모습이 상대에게도 똑같이 좋은 모습은 아닐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돈이나 물질적인 보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가끔 먼저 안부를 물어주는 마음. 내가 건넨 조언을 기억해주는 마음. 그리고 언젠가 한 번쯤은 좋은 선배였다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 작은 기대가 채워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혼자 서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내가 건넨 마음까지 거짓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잘되기를 바랐던 마음은 분명 진심이었다. 다만 이제는 그 진심 안에도 나의 기대와 욕심이 조금씩 섞여 있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3교시에서 나눈 이야기는 그 고민을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그날 밤, 그 질문에 대한 뜻밖의 실마리를 흑염소 이야기에서 찾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우리 원우 중에는 내가 마음속으로 '우리의 아름다운 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이 계신다.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 묘한 기분이 든다. 나는 하나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말을 늘어놓는데, 그분은 몇 마디 말만으로 문제의 본질을 짚어내신다. 오랜 경험이 쌓인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여유라고 해야 할까.
그날도 그랬다. 매니저와 리더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내가 이해한 요지는 이랬다.
매니저는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도록 관리하는 사람이다. 목표를 정하고, 일정을 확인하고, 성과를 점검한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잡고, 일이 제때 마무리되도록 챙긴다. 조직에는 꼭 필요한 역할이다. 다만 관리가 지나치면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를 통제하는 마이크로매니지먼트가 된다.
"이렇게 하세요."
"왜 아직 안 됐죠?"
"제가 알려드린 대로 하면 됩니다."
그렇게 사소한 것까지 관리받다 보면 구성원들은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지시를 기다리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펼치기보다 상사의 기대에 맞추는 데 익숙해진다.
반면 리더는 조금 다르다. 함께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공감대를 만든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일일이 방법을 정해주기보다 필요한 권한을 맡기고, 어려움이 생기면 함께 해결하며, 실패했을 때는 바카라임을 나눠 진다.
관리자가 일이 제대로 움직이는지를 살핀다면, 리더는 사람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좋은 리더에게도 관리 능력은 필요하다. 모든 일을 자율에 맡길 수는 없고, 때로는 단호한 결정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사람을 믿고 성장할 기회를 주는 것과, 사람을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 한편이 뜨끔했다.
'어라. 이거 내 이야기 아닌가.'
나는 후배들이 잘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 마음이 너무 앞서서 정작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고 싶은지는 충분히 묻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경험했던 길을 설명하기 바빴고,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방향을 알려주기 바빴다. 나는 그것이 친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에게는 원하지 않는 조언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좋은 길이라고 믿는 방향이 그들에게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랐지만, 어쩌면 그 시행착오가 그들에게 꼭 필요한 배움일 수도 있었다.
그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조금 씁쓸해졌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내 앞에 앉아 계시던 원우님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셨다.
흑염소를 키우는 지인이 있다고 했다. 그분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흑염소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설명해주셨다.
흑염소는 참 고집스러운 동물이라고 한다. 앞에서 끌고 가려고 하면 버틴다. 목줄을 잡아당기면 네 다리에 힘을 주고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뒤에서 밀면 앞으로 가느냐. 그것도 아니란다. 뒤에서 밀면 또 버틴다고 했다.
그런데 흑염소를 잘 키우는 사람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문을 열어준단다. 그러면 흑염소들이 스스로 길을 따라 들판으로 나간다고 했다. 그곳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어 먹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시간을 보낸다. 물론 가끔 무리에서 벗어나는 녀석들도 있다. 그럴 때만 살짝 방향을 잡아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흑염소들은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앞에서 억지로 끌지 않아도, 뒤에서 힘껏 밀지 않아도 스스로 나갔다가 돌아온다는 이야기였다.
'이거 참... 사람 사는 이야기네.'
생각해 보면 사람도 그렇다. 누군가 자신을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면 버틴다. 아무리 옳은 방향이라고 해도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고 느끼는 순간 마음이 불편해진다. 뒤에서 밀어붙인다고 해서 더 빨리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발심이 생긴다.
그런데 스스로 선택했다고 느끼면 달라진다. 조금 느리더라도 자기 발로 걷는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난다. 무엇보다 그 길을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제야 매니저와 리더의 차이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매니저가 흑염소를 정해진 시간에 들판으로 데려가는 데 집중한다면, 좋은 리더는 흑염소가 스스로 들판을 향해 걸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사람에 가깝지 않을까.
물론 문만 열어놓고 방치하는 것은 리더십이 아닐 것이다. 어디가 안전한 길인지 살피고, 위험한 곳으로 향하면 막아주고, 무리에서 이탈한 녀석이 있으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때로는 단호하게 방향을 바로잡아야 할 순간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모든 행동의 바탕에는 하나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
'저들은 스스로 걸어갈 수 있다.'
어쩌면 리더십이란 그 믿음을 끝까지 잃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이야기를 곱씹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반성했다.
나는 좋은 선배가 되기 위해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지만 고민했지,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구나...
3교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재킷 사이로 파고들었다. 가로등 아래 떨어진 낙엽들이 발끝에 걸렸고, 누군가 밟고 지나간 은행잎에서는 특유의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평소 같았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풍경인데, 그날따라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 전 3교시에서 들었던 흑염소 이야기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돌이켜보면 나는 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좋은 선배가 되고 싶었고, 믿음직한 동료가 되고 싶었으며,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리더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먼저 다가갔다. 밥을 사고, 커피를 건네고,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겪었던 어려움을 그들이 조금이라도 덜 겪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 마음만큼은 지금도 진심이었다고 믿는다.
그런데 흑염소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더 좋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쩌면 문을 열어놓고도 그 앞에서 좀처럼 비켜서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이쪽으로 가면 더 좋을 텐데.'
'그렇게 하면 힘들 텐데.'
'내가 알려준 대로 하면 조금은 편할 텐데.'
그들이 어느 길로 가는지 지켜보고, 내가 생각한 방향과 다르게 움직이면 마음속으로 안타까워했다. 때로는 내 조언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운해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성장을 바란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 성장의 과정에 내가 꼭 필요한 사람으로 남아 있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과 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혼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 부끄러운 고백이다.
하지만 그날 밤만큼은 그 사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참 묘한 경험이다.
나는 AI와 디지털자산이 만들어갈 산업의 미래를 배우기 위해 S-META에 입학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난 뒤 3교시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종종 기술을 넘어 사람과 조직, 그리고 인생으로 이어진다.
오늘도 그랬다. 온톨로지와 AI 오케스트레이션을 배우며 서로 다른 시스템이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런데 정작 강의가 끝난 뒤에는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나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술과 사람의 세계에는 묘하게 닮은 점이 있다. 이번 주 배운 AI 오케스트레이션만 해도 그렇다. 여러 AI와 시스템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하나의 목적을 향해 협력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복잡한 시스템일수록 모든 것을 하나의 중심에서 일일이 통제하기는 어렵다.
사람이 모인 조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AI 시스템과 사람은 다르다. 사람은 명령어 몇 줄로 움직이지 않고, 관계는 알고리즘처럼 정확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각자의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으며, 저마다 살아온 경험과 가치관도 다르다. 그래서 더 어렵다.
하지만 여기서 질문이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AX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도 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일일이 통제하기보다 함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서로를 신뢰하며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 말이다. 그날 밤 흑염소 이야기가 유독 마음에 남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좋은 리더가 되려면 무엇을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무엇을 더 잘해야 하는지만 고민해 왔다. 그런데 어쩌면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을 더하는 일만큼이나, 불필요한 간섭과 지나친 기대를 덜어내는 일도 필요할지 모르겠다.
앞에서 멱살을 잡아끌지도 않고, 뒤에서 억지로 밀어붙이지도 않는 사람. 그렇다고 문만 열어놓고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아닌. 함께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어려움에 부딪히면 기꺼이 손을 내밀되, 각자가 자신의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믿어주는 사람.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더 넓은 들판으로 떠나더라도 아쉬운 마음보다 응원하는 마음이 앞서는 사람.
나는 이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말이 많고, 누군가를 챙기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경험했던 일을 알려주고 싶어 하고, 좋은 마음으로 건넨 것이 돌아오지 않으면 조금은 서운해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분명한 건, 오랜 시간 몸에 밴 생각과 습관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리 없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씩 달라지고 싶다.
마흔을 지나 쉰을 몇 해 앞두고 있는 지금,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예전 같았으면 이만큼 살아왔는데도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내 생각이 바뀔 수 있고, 익숙한 삶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니까.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지는 과정이 아니라,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나는 S-META에 AI와 디지털자산을 배우러 왔다. 그런데 지난 몇 달 동안 강의실에서는 산업의 미래를 공부하고, 0교시와 3교시에서는 사람과 인생을 배우고 있다.
이석근 교수님의 질문 앞에서는 내가 아는 것의 한계를 깨달았고, 원우님들의 경험을 통해서는 내가 살아온 방식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만큼,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 다시 학교에 간다는 것은 그런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쌓는 것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옳다고 믿었던 생각을 다시 돌아보고, 익숙했던 세상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얻는 것.
기술은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알려주지만,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그 변화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묻게 한다.
나는 지금 그 두 가지를 함께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번 S-META 최고위과정에서 얻은 가장 뜻깊은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보다, 아직도 새롭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오늘은 더 크게 느껴진다.
수료를 앞두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왜 나이가 들어서도 다시 학교에 가야 할까. 정보가 부족해서일까. 지식을 얻을 곳이 없어서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세계적인 대학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AI에게 물어볼 수도 있다. 정보를 얻는 일은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그런데 오히려 더 어려워진 것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옳은지 돌아보는 일. 내 생각과 전혀 다른 관점을 만나는 일. 무엇보다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때로는 내가 틀렸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온라인 게임생활을 오래 할수록 자신이 속한 산업과 조직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경험은 쌓이지만, 그 경험이 오히려 새로운 생각을 가로막기도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다르다.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을 누군가는 전혀 다르게 바라본다. 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다른 산업에서는 이미 시도하고 있다. 내가 해결하지 못해 고민하던 문제를 누군가는 오래전에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지혜를 기꺼이 들려준다.
'아, 그래서 이런 공부가 필요한 것이구나.'
이석근 교수님의 날카로운 질문은 내 생각의 한계를 깨닫게 했고, 원우님들의 경험은 그 질문에 현실의 무게를 더해주었다. 좋은 스승 한 분이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면, 좋은 동료들과 함께하는 배움은 그 길을 더욱 넓고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번 S-META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어쩌면 새로운 지식의 양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질문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질문을 함께 고민할 사람들을 만났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명함에 적힌 직함이 먼저 보였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이름만 들어도 얼굴이 떠오르는 동기가 됐다. 누군가는 사업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고, 누군가는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었다. 또 누군가는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전장에서 각자의 싸움을 치르고 있었지만, 그 싸움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3교시에서 나누는 대화에는 때때로 전우애 같은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면 다른 누군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 짧은 한마디가 때로는 긴 조언보다 더 큰 위로가 됐다.
나는 그런 시간이 참 좋았다. 산업의 미래를 공부하러 갔다가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앞으로도 오래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 오래 함께하고 싶은 동료들을 만났다.
이제 다음 주면 마지막 정규 수업이고, 11월 4일에는 수료식이 예정돼 있다.
14주.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막상 끝이 다가오니 아쉽다. 이제 겨우 가까워진 원우님들과 매주 수요일이면 당연한 듯 만나던 시간이 끝난다는 사실이 못내 서운하다.
어쩌면 나는 또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료한 뒤에도 자주 만나고, 함께 공부하고, 서로의 사업과 삶을 응원하며 오래도록 인연을 이어갈 수 있기를.
예전 같았으면 그 기대가 어긋날까 봐 걱정했을 것이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리 서운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려 한다. 그날 밤 배운 흑염소 리더십을 떠올리면서.
모두에게는 각자의 들판이 있다. 우리는 잠시 같은 강의실에서 만나 함께 배우고 웃고 고민했지만, 수료한 뒤에는 다시 저마다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것이고, 누군가는 조직에서 더 큰 바카라임을 맡게 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도전을 준비할지도 모른다.
그 모든 길을 함께 걸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각자의 들판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곳에서 함께 배우고 성장한 이유일 테니까.
가끔 길이 막힐 때 서로에게 연락할 수 있다면 좋겠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편하게 의견을 구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어도 어느 날 문득 학교 앞에 다시 모여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그때 우리 3교시 기억나세요?"
"아이고, 그때 참 재미있었죠."
그렇게 웃으며 추억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이번 최고위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게 또 하나의 문을 열어주었다. 익숙했던 세상을 벗어나 새로운 시선으로 사람과 삶을 바라볼 수 있는 문이었다. 그 문을 지나며 나는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됐다.
그리고 앞으로 조금 더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품게 됐다.
이 글을 쓰면서 지난 몇 년의 시간을 가만히 돌아본다.
4년 전, 내가 참 잘한 선택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서강대학교 메타버스전문대학원에 입학한 것이었다. 지난해 잘한 선택은 서강대학교 가상융합전문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한 것이고, 올해 잘한 선택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S-META 최고위과정에 입학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세 번의 선택은 서로 다른 도전이면서도 하나의 길로 이어져 있었다.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만나고 싶다는 호기심. 그리고 배운 것을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처음 S-META에 입학할 때만 해도 걱정이 많았다.
'과연 내가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일까.'
하지만 수료를 앞둔 지금, 그 걱정은 어느새 사라졌다.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가 아니었다. 무엇을 더 배우고 싶은지, 다른 사람의 경험을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나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AI와 디지털자산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조금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그 변화를 함께 고민할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내가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할지, 어떤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은지 다시 질문하게 됐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살면서 여러 번 학교를 졸업한다. 하지만 배움까지 졸업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좋은 학교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정답을 알려주는 학교가 아니라 더 좋은 질문을 던져주는 학교. 슬롯에서 입고 있던 직함이라는 무거운 외투를 잠시 벗어놓고, 다시 한 사람의 학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학교.
내게 서강대 S-META는 그런 곳이었다.
이제 곧 수료식이다. 매주 수요일이면 당연하게 만나던 원우님들과의 시간이 끝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이상하게 끝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인연과 배움이 시작되는 기분이다.
'처음 강의실에 들어섰던 날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바라보게 되었고, 사람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졌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는 사실이 기쁘다. 만약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이 나이에 다시 학교에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요?"
아마 잠시 웃다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직접 가보니 알겠더라고요. 무엇을 배우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배우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요."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나는 서강대 S-META 최고위과정 강의실에 앉을 것이다.
서강대학교 S-META '가상융합 AX 대전환 & 디지털자산 최고위과정' 제6기 수료를 앞두고 2026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매주 수요일 밤 서강대에서 만난 사람들과 배움의 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이 글을 남긴다
- 2026년 10월 23일.
▼ 서강대 가상융합전문대학원 S-Meta 최고위 과정에 대한 궁금한 사항은
아래 공지사항 게시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참고로, 2027년 최고위 과정 모집은 2027년 4월에 있을 예정입니다.